내 생각에도 폐기된 시리즈가 아닐까 싶었지만, 죽지 않고 살아 돌아왔다. 그런데 이 시리즈 제목은 아무래도 곧 수정되어야 할 것 같긴 하다. 이제 24학년도 2학기가 끝났기 때문인데... 그 말인즉 내 휴학 기간도 엄밀히 말하면 끝났다는 것이다. 이제부터는 복학을 앞두고 방학을 영위하는 셈이다. 돌아보면 시간은 항상 너무 빨리 달린다는 생각이 든다.
그렇다면 시리즈 제목, 그러니까 (4)편 부터는 이 명칭을 어떻게 적어야 할까? 철학과 늙다리는 무엇을 할까, 아니면 철학과 화석은 무엇을 할까... 뭐 이런 제목으로 적어야 하지 않을까. 스무 살에 바로 입학한 신입생 학우분들과는 어느새 나이 차이가 여섯이나 나게 된다. 내가 소주나 마시러 다닐 때 그분들은 생애 처음으로 교복 사이즈를 맞춰보고 있었을지도 모른다.아무튼, 다음 제목은 다음 글을 쓰며 고민해 보도록 하겠다.
원래 이번 글에서는 휴학기간(8~12월)에 읽은 책들을 정리해 보는 시간을 가지려고 했다. 좋은 책을 많이 구했고, 읽었고, 읽고 있다. 그런데 12월에 펼쳐진 복잡한 사건들과 한없이 슬픈 사고 때문에 다른 이야기를 해보려고 한다. 책 소개는 언제든 다시 할 수 있다. 그렇게 된 김에 책 소개는 각 잡고 서평처럼 쓰는 것으로 계획을 바꾸자.
나는 모임을 만드는 것에 정말이지 애증의 감정을 갖는다. 1년에 딱 며칠만 나갔으면 좋겠다고 찡얼거리는 내게 모임은 항상 피로한 일이다. 문제는 그만큼 또 즐겁다는 것이다. 삼성라이온즈 백정현 선수가 그런 말을 했었다. 자신은 야구가 싫었지만 장래를 위해 어쩔 수 없이 한 측면이 있다. 그런데 여행(사실 백선수의 여행은 '모험'에 가깝다)을 다니며 느낀 것이, 자발적으로 떠난 여행도 매 순간 힘들고 지치는 순간이 온다는 것이다. 좋아서 한 일도 힘든데, 당연히 직업인 야구도 힘든 것 아닌가. 그런 경험들이 본업에 집중하는 데에 도움을 주었다고 한다. 그렇다면 내게 '모임'은 따지자면 백선수의 여행 같은 것이다.
내 모임들은 대체로 '재생산'을 목적에 두었다. 스무 살에 했던 데카르트 강독, 그리스 비극 읽기. 스물한 살에 했던 힐쉬베르거 서양철학사 읽기, 『선악의 저편』 강독, 『국가』 읽기 동아리. 군대 고참이 된 후에는 아주 가벼운 철학사를 보며 철학 이야기를 나누는 소모임도 했다. 대체로 내가 어디서 주워들은 썰을 푸는 데 그친 것이긴 했지만. 복학을 한 이후에는 『이 사람을 보라』를 함께 읽었고 『차이와 반복』은 실패했다. 방학에는 『도덕 원리에 관한 탐구』의 내용을 공유해 볼 수 있었고, 같은 해 2학기에는 『에티카』를 읽었지만 실패했다고 해야 할 것 같다. 그 후 사이사이 키르케고르 세미나, 실존주의 문학 세미나와 칸트 강독, 『지각의 현상학』 강독 모임도 있었다. 그나마 내 역량이 받쳐주는 키르케고르 세미나와 실존주의 문학 세미나만 완주했다. 그 이후로 내 역량을 벗어난 모임은 만들지 않기로 했다. 여전히 미안한 감정이 남아있다. 끝으로 『해석의 갈등』 강독도 참여했던 기억이 난다. 그 외에는 친우의 <아세팔> 학회를 아주 재밌게 참여했다. 미처 언급하지 못한(혹은 '않은') 모임들도 있을 텐데, 나는 이 모든 모임들에 애정을 갖고 참여했다고 자부하기에 떠오른다면 여러 일화들을 읊어낼 자신이 있다. 그 속에서 만난 그 많은 인연들을 어찌 잊을 수 있을까.
'공통분모'를 가진채 만나 자신의 분모(혹은 지평)를 넓혀나가는 것, 이것이 내가 생각하는 재생산이다. 조금 더 낭만적으로 말하면 자신의 세상을 넓히는 것이다. 이 과정은 내 몸을 강제로 잡아 늘리고 찢어내는 것과 같아서, 머리도 몸도 지치고 힘들다. 그럼에도 내 시선이 견고해지고 넓어지는 경험이란 끔찍할 정도로 끈적이고 달콤하다. 배움의 기쁨에 중독되어 수십 년을 살아간 이들이 우리 역사에 얼마나 많았던가.
휴학 기간에는 <아세팔>의 잔여일정을 참여한 것 외에는 어떤 모임에도 몸담지 않았다. 군복무 기간을 제외한다면 스무 살 이후 처음 있는 일이 아닐까? 나는 홀로 현상학을 공부했다. 아직 멀었지만 지난 몇 걸음을 돌아보면, 현상학은 아주 테크니컬한 개념들이 많아서 혼자 공부하는 시간이 꼭 필요했던 것 같긴 하다. 생각보다 늦어지긴 했지만 휴학 때 꼭 공부하고 싶던 목록에서는 이제 두 권만을 남겨두고 있으니, 이제 재미로 읽는 책들도 생겼을 정도로 여유를 찾았다.
그런 와중에 2024년 12월에 일어난 일련의 사건들은 다시 내게 말을 거는 듯했다. "재생산이 되지 않는 방구석 지식이 무슨 쓸모인가?" 아무렴. 나는 당연히 '아무 쓸모도 없다'고 답한다. 재생산의 시간을 되찾아야 한다. 애도도 비판도 기쁨도 슬픔도 사랑도 나누어야 한다. 기억과 기억이 모여 역사가 된다. 그렇게 다시 하나의 모임(계속 '모임'이라는 말을 쓰는데, 나는 '집단'이나 '단체'라는 말이 싫어서 그렇다)을 만들었다. 이렇게까지 무엇 하나 정해지지 않은 것은 처음이다. 그리고 무슨 2년씩을 끌고 가겠다고 호언장담하는 일도 처음이다. 뭐든 뱉어놔야 지킬 것 같았다. 또 누군가 등을 살짝만 밀어줬으면 했는데, 딱 그런 응원의 말을 듣기도 했다.
연말의 내 머릿속은 기대보단 걱정이 크게 자리 잡고 있다. 시간이 지나면 이 마음이 또 어떻게 변해갈지.
아무튼 이렇게 휴학일기는 고작 세편으로 끝을 맺는다. 물론 제목을 바꾸어 이어갈 생각이다. 그리고 이 중구난방의 글은 지금의 내 심리상태를 아주 잘 반영하는 듯해서 이상하게 마음에 든다.
슬픔과 별도로 나는 눈을 뜨고 아무렇지 않은 일상을 영위해야 한다. 그렇게 애도의 마음은 이런 내 일상과 충돌해 버린다. 이게 맞는 걸까. 그 물음에 차근차근 답해보는 2025년을 보내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