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른 봄날 아침 산골 주변 밭을 산책하다 보면 다른 농부들이 다 심고 난 뒤 부실한 모종을 밭 주변에 버려두는 것을 보곤 했다. 어느 날 문득 그게 아까워 보여 주워다가 땅만 대충 일구어 심어보았다. 햇볕에 노출되어 시들시들 비틀어진 모종은 그대로 말라죽거나 병들어 죽었고 또 어찌어찌 겨우 구사일생으로 자란 것도 결국은 온전한 열매를 맺지 못하였다. 반면에 건강한 모종을 심은 농부들의 밭에는 감자, 토마토, 고추, 옥수수, 고구마들이 계절과 시간에 맞추어 탐스럽게 주렁주렁 맺혀 보기만 해도 부러웠다.
도서관에서 책을 빌려 밤늦게까지 여러 작물에 대해 공부도 하고 실전 연습도 해보았지만 책의 설명을 실제 상황에 적용하기가 여간 힘든 것이 아니었다. 결국 꿈소의 밭은 농사가 아니라 유빈이와 휘성이 그리고 꿈소의 놀이 텃밭이 되었다.
산골축사의 낮과 밤이 쉼 없이 흐른 뒤에 알게 된 것은, 내가 부러워하던 옆집 농부처럼 제대로 된 수확을 하려면 씨앗을 심기 전부터 밭에 충분히 영양분을 주어야 한다는 사실이었다. 씨앗에 따라 심는 시기와 발육을 위한 영양관리도 제때 해주어야 하고 자주 순도 따주어야 했다. 그리고 처음부터 모종의 떡잎을 잘 지켜보다가 부실한 떡잎의 모종이 올라오면 가차 없이 뽑아내고 빈자리에 다시 튼실한 모종으로 바꾸어 심어주기도 해야 했다. 한마디로 농작물을 자식처럼 잘 알고 지극정성으로 돌봐야 하는 것이었다.
농사비법을 전수받기 위해 얼굴에 주름이 훈장처럼 많은 농부에게 막걸리 한 사발 대접하면, 그 작물에 대한 풍부한 경험을 뽐내면서 그의 농사 영웅담을 쉴 새 없이 꿈소에게 풀어놓았다. 그때 장단을 잘 맞추어 주면 신이 나서 그가 재배한 작물들을 나누어 주기도 하고 친히 꿈소의 농사 현장에까지 찾아와 개인 지도도 해 주었다. 그렇게 현장 실습까지 몇 번을 받은 다음 매일 모종들이 성장하는 것을 정성스럽게 돌봐주었더니 그제야 열매들이 주렁주렁 탐스럽게 열리는 경험을 할 수 있게 되었다.
하지만 사람은 부실한 모종처럼 그렇게 쉽게 뽑아낼 수는 없다. 우리 소중한 자녀에게 평생 단 한 번뿐인 부모 노릇을 꿈소가 초보 농사꾼일 때의 농사놀이처럼 결코 쉽게 생각해선 안될 것이다. 일 년 농사를 망치는 것이 아니라 자녀를 비롯한 가족 모두의 100년이 불행의 구렁텅이로 빠져 버리게 되기 때문이다.
꿈소가 특히 어린 영유아들에게 신경을 많이 쓰는 이유는 유빈이와 휘성이가 자라는 동안 또래 친구들이 영유아 시절 잘못된 습관과 과도한 사교육으로 인한 스트레스로 학업에 대한 의욕이 사라져 가는 것을 자주 목격했기 때문이다. 마치 고삐에 매여 억지로 끌려가는 소처럼 스스로 해결할 수 있는 학습능력은 사라지고 주위 어른들이 지시해야만 어쩔 수 없이 움직이는 점점 희망을 찾기가 어려운 아이들이 되어 참으로 안타까웠다.
밤이 긴 산 중턱 잠자기 전 책 읽는 다섯 살 휘성
7세 이전에 좋은 습관을 갖춘 아이가 평생 칭찬과 격려를 받으며 나머지 인생을 산다는 것은 공공연한 비밀이다. 그렇다면 우리는 자녀의 일생 중 특히 유아기에 부모의 역할에 정말 신경 써야 하지 않을까?
유아기에 좋은 습관을 잡아주는 것이 가장 좋지만 그래도 그 시기를 놓쳤다고 실망할 시간이 없다. 우리 자녀는 하늘의 축복으로 태어난 세상에 단 하나뿐인 소중한 선물이기에 어떠한 경우에도 포기할 수 없기 때문이다.
인생은 약 100년간의 기나긴 마라톤이다. 처음에 빨리 출발했다고 마지막 결승 지점에 빨리 도착하지 않는다는 것을 우리는 이미 수많은 경험을 통해 잘 알고 있다. 그 100년이라는 시간 속에 우리가 포기하지 않는 한 우리에게는 언제나 새롭게 시작할 기회가 계속 주어지게 된다. 그래서 만약 유아기에 미처 만들어 주지 못한 습관이 있다면 지금이라도 만들어 주어야 한다.
어떤 부모님은 이미 늦었다고 포기하려는 분도 있을 수 있다. 하지만 늦었다고 생각했을 때가 가장 빠르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사랑하는 우리 자녀를 장차 “큰 나무가 될 될성부른 떡잎”으로 만드는 방법에 대해 주름 많은 농부처럼 꿈소의 지난 경험담을 잠시 이야기하고자 한다.
꿈소는 달동네에서 자랐다. 달동네의 밤은 늘 칠흑처럼 어두웠고 술 취한 주정뱅이 어른들의 고성방가와 아이들의 울음소리로 단 하루도 조용한 날이 없었다. 달동네에 사는 아이들의 삶은 거칠었고 그 속에서 살아남기 위한 생존본능만 발달하였다. 대부분의 부모에게 자녀교육은 사치였고 하루 벌어 하루 먹고 살기에도 급급한 가정이 대부분이었다. 꿈소의 부모 역시 힘든 육체노동을 하며 생활하는 분들이었기에 사정은 비슷했다.
꿈소의 집은 5남매 대가족으로 학교를 다닐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감사해야 했다. 어려서 좋은 습관은 고사하고 양질의 책은 접할 수 없었고 그런 것을 알려 주는 사람도 없었다. 그나마 만화책이라도 많이 읽은 것은 불행 중 다행이었다. 꿈소의 달동네 친구들은 어릴 때 교육을 제대로 받지 못해 성장해서도 그들의 부모처럼 육체노동을 하거나 희망 없이 속절없는 시간만 흘려보내는 삶을 살았다.
꿈소는 다행히 인문계 고등학교에 입학하였다. 입학 이후 서먹서먹하던 시간이 흐르고 서로에 대해 익숙해지기 시작할 무렵, 중학교 재수생 6명이 소위 일진을 만들어 교실에서 본드를 흡입하고 학생들의 돈을 갈취하고 폭력을 행사하기 시작했다. 그들에게 학교는 자신들이 원하는 것은 무엇이라도 쥐락펴락 할 수 있는 그들만의 일그러진 왕국이었다. 그 왕국에서 꿈소는 비록 몸집은 작지만 불의에 절대 굴복하지 않고 저항하다 장렬하게 폭행당하는 캐릭터가 되었다.
담임선생님도 그 일진들을 바로 잡지 못하였다. 선생님은 오히려 '남자라면 이런 학교에서 적응하며 살아남는 것이 세상을 배우는 것'이라고 했다. 그때 선생님으로부터 그 말을 들었을 때는 뒤통수를 한 대 맞은 듯 정말 어처구니가 없었다. 몸집이 작고 힘이 약하다고 해서 일진들의 타깃이 되어 이유 없이 맞고 있는데 세상을 배우기 위해 적응하라니..... 나는 최소한 불의를 거부하고 틀린 것은 틀렸다고 말하는 사람으로 인간답게 살고 싶을 뿐이었다.
이런 학교를 바꿀 수 있는 힘도 없었고 비굴하게 이러한 불의에 굴복하며 더 이상 학교를 다니고 싶지도 않았다. 가족 모두의 극심한 반대에도 불구하고 고등학교 1학년 때 자퇴를 결심하였다. 등교 마지막 날, 집에 있는 귀한 양주 한 병 손에 들고 담임선생님께 갖다 드리며 꿈소의 다짐을 전하였다.
"선생님은 마지막까지 학교에서 적응하는 것이 성공이라 말씀하셨는데 학교를 그만두고도 학교에 남아 있는 것보다 더 성공해서 꼭 다시 찾아뵙겠습니다. 남은 학생들을 위해서라도 일진들이 더 이상의 희생자들을 만들지 않도록 선생님께서 신경 써주십시오."
선생님께 당당한 목소리로 꿈소의 미래도 말씀드리고 인사도 정중하게 드리고 마지막으로 학교를 한 번 올려다보고는 쓸쓸히 교문을 나섰다. 그렇게 나는 고등학교 1학년 자퇴생이 되었다.
막상 갑작스럽게 학교를 그만두고 나서는 한동안 무엇을 어찌해야 할지 갈피를 잡지 못했다. 이른 새벽 학교에 가서 야간 자율학습을 마치면 한밤중에 돌아오는 매일 다람쥐 쳇바퀴 돌듯 반복되던 일상이 갑자기 멈추자 편해진 것이 아니라 꿈소의 대책 없는 결정이 잘못되지는 않았나 하는 두려움에 잠 못 이루는 날이 많아졌다. 어린 나이에 처음으로 인생에 대한 심각한 고민에 빠져들기 시작했다.
몇 달의 시간을 방황하고 서면의 한 검정고시 학원을 찾았는데 그때 그 학원에는 가정형편이 어려운 타 지역 출신 여학생들이 낮에는 당감동 신발공장에 다니며 밤에 야학을 다니거나 야간 검정고시 학원에서 공부하고 있었다.
어느 날 야간 검정고시 학원 국어시간에 뒷자리에 앉아 수업을 받고 있었는데, 선생님이 어느 한 곳을 뚫어져라 쳐다보더니 갑자기 수업을 멈추는 것이었다. 한참 동안이나 정적이 흘러서 우리도 모두 고개를 들어 선생님이 바라보는 곳을 같이 쳐다보기 시작했다. 잠시 후 선생님은 수업시간 내내 소란스러웠던 꿈소 주변의 뒷자리를 향해 큰소리로 말씀하셨다.
"뒷자리에서 떠들고 있는 이 쓰레기들아! 수업 분위기 망치지 좀 말고 정신 좀 차려라! 여기 있는 이 여학생은 낮에 신발공장에서 열심히 일하고 밤에 공부하려는데 눈이 너무 감겨 눈을 감지 않으려고 성냥개비로 눈꺼풀을 받쳐가며 공부하는데 너희들이 이렇게 뒤에서 시끄럽게 공부 방해하면 되겠냐! 이 한심한 놈들아, 제발 정신 좀 차려라!"
그 순간 그토록 공부에 대한 강렬한 의미가 꿈소 마음속으로 쑥 들어온 적은 단 한 번도 없었다. 그날까지 꿈소는 공부를 하는 것이 남들이 다 하니까 아무런 의미 없이 그냥 좋은 대학에 가기 위해 또는 좋은 직장에 가기 위한 수단이라고만 생각하고 있었다. 그날 국어선생님의 말씀은 비록 꿈소가 천둥 번개를 맞아 본 적은 없었지만 마치 몇 만 볼트 전기에 감전된 것처럼 강렬하게 다가왔고 진실로 인생을 바로 살아야겠다고 다짐한 전환점이 되었다.
농사는 대개 일 년짜리이지만 인생은 100년이라고 한 이유가 여기에 있다. 꿈소는 부실하기 짝이 없는 떡잎이었고 17년 이상 스스로 공부하는 습관을 깨치지 못했는데 그날 국어선생님의 말씀이 꿈소의 깊이 잠든 영혼을 흔들어 일깨웠다.
비록 늦었지만 그날 이후로 꿈소는 정말 인간으로서 할 수 있는 모든 최선을 다하였다. 어린 시절 채우지 못한 것을 채우기 위해 2년 간을 잠자기 전 화장실 잠시 가는 것과 잠시 밥 먹는 시간 외에는 꼼짝하지 않고 오로지 책상에 앉아 공부만 하였다. 깨어있는 모든 시간을 그동안 채우지 못했던 공부로 채워나갔고 2년 후에는 드디어 꿈소가 그토록 원하던 대학에 들어갈 수 있게 되었다.
세상에서 가장 지혜로운 사람은 자신이 늦었다는 것을 알았을 때 지체 없이 부족한 것을 바로 채우기 시작하는 사람이라 생각한다. 그런 사람이야말로 시간이 지나고 나면 가장 빠른 사람이었음을 꿈소도 경험했고 책과 역사를 통해서도 알 수 있다.
꿈소부부 또한 왕초보 부모로 경제적 어려움에 더해 자녀교육에 대해 꼼꼼한 준비를 하지 못한 상태에서 부모가 되어 유빈이와 휘성이 교육에 부족한 점이 아주 많았다. 어린 시절 채워주지 못한 부면들을 알고도 계속 넘어가면 작은 틈새가 점점 더 커지기 때문에 꿈소부부는 늦더라도 조금씩 채워나가려고 노력했다.
예를 들어 어린 나이에 악기를 배우는 것은 아이의 뇌 발달이나 정서적인 면에서 아주 중요하지만 꿈소의 경제적 능력으로는 도저히 악기교육은 해 줄 수가 없었다. 하고 싶어도 할 수 없었지만 포기하지 않고 때를 기다리다 보니 초등학교에서 무상으로 사물놀이를 배울 수 있는 기회가 생겼다. 다른 친구들은 학원에 가기 바빠 전통악기 교육은 지원자도 별로 없어서 오히려 개인교습 수준으로 배울 수가 있었다. 또한 가야금을 전공한 선생님이 오셔서 가야금도 배우게 되었다. 고학년이 되어서는 바이올린 교육을 받았고 특별한 기회로 교회에서 무상으로 악기를 지원하는 오케스트라 프로그램을 이용하여 클라리넷 교육까지 아이들의 음악에 대한 갈망을 가득 채웠다.
태어날 때부터 부모의 재력으로 배움에 대한 걱정이 없는 친구들과 비교하면 사회적으로 불평등하다고 할 수도 있다. 아이들이 배움에 필요한 적기를 놓칠 수 있고 배울 수 있는 환경의 차이는 존재하지만, 그것을 극복하기 위해 도전하고 노력하는 과정에서 더 큰 기회를 얻게 될 수도 있기에 반드시 불공정하다고만은 할 수 없다고 본다.
부모가 포기하면 우리 자녀에게는 마지막 남은 기회조차도 없다는 것을 꼭 기억하고 형편이 어려울 때는 아이의 좋은 습관 만들기에 공을 들이고 때를 기다리다 보면 조금 늦더라도 반드시 기회가 온다는 사실을 믿어야 할 것이다.
유빈이와 휘성이는 산골축사에서 최악의 교육, 경제환경 속에서 자랐다. 하지만 오랫동안 노력한 좋은 습관은 학교를 다니며 빛을 발휘하여 단 한 푼의 사교육비를 들이지 않고도 잘 성장해 주었다. 초등학교 입학 전에 이미 한글책과 영어책을 많이 읽어 처음 배우는 것에 대한 즐거움에 더해 특별히 사교육도 필요 없었다. 탐구 능력과 깊이 있는 지도가 필요해져서 초등학교 4학년부터 용문초등학교 영재교육 프로그램을 진행하게 되었는데 유빈이는 혼자서 지하철과 버스를 타고 왕복 4시간이 걸리는 거리를 통학하면서도 마냥 즐거워했다.
초등학교, 중학교, 고등학교에 다니는 동안 유빈이와 휘성이는 기존 교육의 틀에서 벗어나 다른 아이들보다 더 여유롭게 말 그대로 자기 주도적인 공부를 하였다. 그리고 오롯이 공교육만으로도 고등학교까지의 학업을 잘 마칠 수 있었다.
유빈이는 과학고 대신에 무상교육을 제공하는 마이스터고에 지원하였고, 국내 대학 진학 대신 미국 사이버 대학에 진학하여 밤에는 에세이를 쓰며 학점을 받고 낮에는 글로벌 자율주행 AI 회사 팀장으로실무 경험을 쌓는 직장 생활을 선택하였다.유빈이가 받는 대우는 명문대 졸업자들과 다름이 없었다.
과거에는 이런 일을 상상도 할 수 없었지만, 최근 AI 시대에는 기존세대가 전혀 경험하지 못했던 세상을 만들어 내기 시작하고 있다. 유능한 인재 한 사람이 세계를 움직이는 엄청난 파급력을 발휘하는 것을 매일 인터넷을 통해 경험하게 되었기에 점차 이런 일들이 현실 속에서도 재현되고 있다.
유빈이가 기적을 이룬 것이 아니라 우리나라 교육제도가 변해야 한다는 의미이며 학부모들도 미래의 인재상에 대한 인식이 유빈이와 휘성이로 인해 생각을 달리해 보는 계기가 되기를 바래본다.
지금처럼 학벌을 중요시하고 특히 명문대 졸업장을 위한 줄 세우기 공부는 우리 아이들을 지치게 한다. 미래에 닥칠 다양한 문제 해결을 위해서는 지치지 않는 청년이 필요하고 이러한 청년을 키우기 위해서는 1등부터 꼴등까지 똑같이 학습받는 획일화된 교육으로 모두가 실패하는 교육을 이제는 그만 멈추어야 한다. 그리고 아이들의 개성과 창의력을 키워 융합형 인재로 자랄 수 있도록 이끌어 주어야 한다.
길을 전혀 모를 때는 운명이라고 받아들이지만 길을 알고 대비할 수 있다면 최고는 아니더라도 우리 아이가 언제든지 시작할 수 있는 최소한의 기본기는 갖출 수 있도록 도와주어야 하지 않을까 생각한다.
옛말에 “될성부른 나무는 떡잎부터 안다”라는 말이 우리에게 전해 주는 의미를 깨닫기 위해서는 다시 한번 깊이 있게 생각해보아야 할 것이다.
“떡잎부터 알 수 있다”는 말은 어릴 때 부모로부터 좋은 습관을 물려받은 아이는 매사 자신감이 넘치고 어떤 일을 하든지 주도적으로 인생의 주인공이 되어 자신의 삶을 책임질 줄 아는 멋진 성인으로서 당당하게 살아간다는 의미가 아닐까?
꿈소부부도 유빈이 휘성이를 키울 때 경험이 부족해서 부끄러운 시행착오를 수없이 많이 하였다.
그러니 부모님들이 지금은 조금 힘들더라도 우리 아이들이 스스로 어떤 문제든 해결할 능력을 갖출 수 있는 "뿌리 튼튼한 모종"이 될 때까지 아이들에게 도움이 되지 않는 주변 환경을 정리하고 주변의 유혹을 이겨낼 수 있도록 함께 노력하면 좋을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