슬픔이 생각으로 바뀌는 그 순간

_ 슬픔을 극복하는 과정

‘행복’은 몸에 좋지만, 정신의 강인함을 발달시켜주는 것은 바로 ‘슬픔’이다.

이 ‘슬픔’은 우리가 더 행복한 시절이라면 회피했을

일종의 정신적 체육활동을 거치도록 해준다.

연인이 충성을 맹세한다면 우리가 왜 굳이

인간의 배신행위의 역할에 관해서 숙고해야할까?

오직 슬픔 속에 빠졌을 때만이,

비로소 우리는 어려운 진실에 맞서고자 하는 프루스트적인 자극을 받게 된다.

_알랭드보통, '프루스트가 우리의 삶을 바꾸는 방법들' p.9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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휴가철, 폭염속에 사람들을 쓸어다 모아놓은 백화점.

음식을 주문하고도 앉아 먹을 자리가 없어 배회한다.

서점에도 곳곳마다 바닥에 앉아 독서하는지 쉬는지 퍼져있는 사람들.

가족들, 연인들, 친구들, 혹은 혼자서

‘대중속의 고독’이 느껴지는 자리다.

시끄러운 음악소리, 사람들이 부데끼는 소리.

여름휴가철 피크, 토요일 한나절.

이 낯선 경험들이 불편하다. (2012년 9월 4일 일기)




아무리 상식적이고 아무리 튼튼한 사람도
생의 어느 봄날 한번쯤
5·6월의 훈풍에 아파서 울 때가 있는 것
마치 혼자만 세상 밖으로 내동댕이쳐진 것 같이
외로울 때도 있는 것.
그럴 때 ‘너만 그러는 것이 아내야’하고 다가서는 그런 존재들이
바로 ‘예술가들’
_공지영은 ‘사랑은 상처를 허락하는 것이다’p.2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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슬픔생각으로 바뀌는 바로 그 순간, 슬픔은 우리의 가슴에 상처를 입히는 그 능력가운데 ‘일부’를 잃어버린다고 알랭 드 보통은 말했다. 슬픔을 생각으로 바꾸기가 책읽기(남의 고통듣기), 글적기(내 고통을 객관하기), 대화하기(상호아픔을 인식하고 소통하기)로 나는 정의해 보았다. 그래서, 책을 읽고 글을 적고 대화하는 것이다.

그 중심에는 상실의 아픔, 말하지 못하고 끙끙 앓아 둔 외로움,

삶에 대한 진솔한 대면이 있는 것이다.


우리로 하여금 행복하다고 느끼게 한다고 해서
모두가 유익한 것은 아니다.
그리고, 우리를 아프게 만드는 것들이라고 해서
모두가 나쁜 것은 아닐 것이다.
-알랭드보통 '젊은 베르테르의 기쁨' p.386.


항해자 김광영 브런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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