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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심연 Jul 14. 2023

전업맘

저는 전업주부임과 동시에 전업맘입니다. 아침에 아이를 깨워 등원시키기까지, 또 아이가 하원하고 난 이후부터는 전업맘 모드가 되지요. 아이가 어린이집에 가기 전까진 전업맘으로서 해야 할 일이 훨씬 더 많았습니다. 아이가 눈뜰 때부터 잠들 때까지 살을 맞대고 있는 시간이 대부분이었으니까요. 그에 비하면 지금은 아주 여유로운 전업맘 생활을 영위하고 있습니다. 단지 정신적 노동이 좀 더 추가되었다는 차이는 있겠습니다, 쿨럭.

     

워킹맘이라는 단어의 등장은 근사했습니다. 일과 가정, 두 마리 토끼를 잡아내는 프로페셔널한 여자가 바로 초기 워킹맘의 모습이었으니까요. 사회로 일찍 나왔던 만큼 저 역시 워킹맘이 되지 않을까 짐작했었습니다. 평생 전업주부로 살아온 엄마도 “너는 네 일을 하고 살라”며 부지런히 주문을 걸곤 했죠. 한 우물은 아니었어도 10년 넘게 일을 해왔기에 일찍이 사회로부터 튕겨 나올지는 예상치 못했습니다. 시간이 지나고야 알았지요. 결혼 전까지 자신의 커리어를 돈독히 다녀온 여자가 워킹맘이 될 확률이 크다는 것을요.     


태어나 처음 아이를 낳고 키우면서 여태까지 겪은 난제는 난제도 아니었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눈물은 마를 날이 없는데, 힘들어서 울고 기뻐서도 우니 이런 감정 기복은 생경했죠. 딱 하나 확실한 건 아이를 사랑하는 마음이었습니다. 내 모든 걸 내어줘도 아깝지 않은 단 하나의 사람이 생긴 기분이었죠. 물론 초라한 몰골을 마주할 때면 오피스룩을 차려입은 워킹맘들이 부러울 때도 있었습니다. 하지만 그녀들도 분 냄새보다 아이의 분유 냄새가 비교할 수 없을 만큼 좋을 거라는 걸 알기에, 그 발걸음이 얼마나 무거울지 짐작할 수 있었습니다.

    

바야흐로 워킹맘의 시대가 열렸지만 언제부턴가 그녀들이 버거워 보이기 시작했습니다. 안팎의 끊임없는 압박이 그녀들의 심기를 건드리고 있었죠. 불똥은 엉뚱한 곳으로 튀었습니다. 워킹맘과 전업맘의 갈등이 고조된 것입니다. 사회로 향하던 날 선 불만이 오히려 아군의 기지로 날카롭게 파고들어 서로를 물어뜯는 기이한 설전이 벌어졌습니다. 어느덧 존중과 배려는 찾아볼 수 없는, 시기와 질투뿐인 아수라장. 여자의 적은 여자라는 수식어가 왜 또 전업맘과 워킹맘 사이에 등장한 것일까요.


아이와의 관계는 함께하는 시간이 절대적으로 중요하다는 것을 경험으로 압니다. 네 살 무렵 아들은 아빠라는 말을 입에 달고 살았으니까요. 피치 못할 부재가 이토록 쉽게 엄마라는 원초적 지위를 넘겨주는 일이 될지는 몰랐습니다. 이후로도 꽤 오랫동안 아이의 일 순위는 변하지 않았습니다. 점차 간극이 줄어든 건 엄마의 노력에 아이의 성장이 한 스푼 더해져서였지요. 용서하고 이해하며 안아준 건 제가 아니라 제 아들이었습니다. 아이가 무럭무럭 자라나는 건 당연한 일인데, 엄마도 아빠도 함께 성장하니 육아란 참 신기한 배움입니다.     

 

전업맘도 워킹맘도 모두 완벽한 엄마가 될 순 없습니다. 아니, 애초에 완벽한 엄마란 존재하지 않지요. 워킹맘이 온전히 아이 곁에 있어 주지 못해 죄책감을 느끼고 있다면, 전업맘은 온전한 마음으로 아이 마음을 살펴주지 못해 같은 마음을 갖습니다. 잠든 아이의 얼굴을 바라보며 감회에 젖어본 기억은 두 엄마 모두 겪어본 일일 것입니다. 하지만 늘 먼저 손을 내미는 건 아이라는 사실 또한 우리는 알고 있지요. 자신을 위해 어디서든 최선을 다하고 있다는 걸 아이는 믿어 의심치 않을 것입니다. 우리가 진심을 다한다면 말이죠. 오늘도 후회하고 망설이는 전업맘이지만, 아들의 온전한 지지에 힘입어 또 한 걸음 내디뎌 보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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