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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심연 Jul 03. 2023

집은 주부를 닮아 있다

집은 저마다 특유의 냄새가 있습니다. 집의 첫인상을 좌우하는 것도 어찌 보면 냄새가 아닐까 싶습니다. 할머니 냄새는 잘 기억이 안 나도 할머니 집 냄새는 알아차릴 것 같습니다. 낯선 곳에서 마주한 익숙한 냄새만으로도 그 공간이 한결 편안하게 느껴지기도 하지요. 가끔 우리 집에선 어떤 냄새가 날지 궁금합니다. 이미 이 집에 익숙해져 버린 저는 우리 집의 고유한 냄새를 집어내기가 도통 어렵기 때문입니다. 들어서자마자 기분 좋은 냄새가 나는 집은 보기에 좋기까지 한 경우가 많았습니다. 아무래도 청결함은 기본이요, 적절한 향기를 공들여 배합한 주부의 센스 덕이겠지요.      


얼굴엔 그 사람이 살아온 인생이 투영돼 있다고 하는데, 집도 비슷한 면면이 있는 것 같습니다. 직접 드러나는 얼굴과 달리 집은 선택에 따라 감출 수 있다는 게 차이라면 차이랄까요. 마음먹은 대로 치장할 수 있는 겉모습과 달리 집은 그 사람의 민낯을 담고 있을 수도 있겠지요. 주부들은 어느 정도 사이가 가까워졌다 싶을 때 자신의 집을 오픈하기도 합니다. 좀 더 개인적인 공간을 노출함으로써 자연스럽게 서로의 영역에 발을 들이게 되는 순간이죠. 제 경험에 의하면 집도 그녀를 닮아있는 경우가 많았습니다. 꼭 주부라기보다는 아마도 그 집에 오래 머무르는 사람을 닮아있다고 볼 수 있겠지요.      


제가 생각하는 우리 집의 키워드는 ‘단순함’입니다. 기능적으로 있어야 할 것들만 제 자리에, 색상이나 모양도 눈에 띄지 않습니다. 잦은 이사에도 그 집이 그 집인 양 익숙할 수 있었던 이유이기도 하죠. 간혹 너무 단조롭다는 생각이 들 땐 꽃 한 송이를 들여놓거나 자그마한 소품을 곳곳에 놓아둡니다. 남편 옷장은 물론 제 옷장도 우리 집처럼 신기하리만큼 단순합니다. 개수 자체도 많지 않을뿐더러 무채색이 주를 이뤄 일단 눈이 편안합니다. 디자인도 어찌나 무난한지 두 옷이 같은 옷인가 싶은 적이 한두 번이 아니었죠. 실제로 색상만 다를 뿐 똑같은 옷도 가방도 있습니다.


엄마 집도 비슷했습니다. 아니, 훨씬 더 단순하고 단조로웠지요. 그 흔한 소품이나 액자도 없었습니다. 그러고 보면 엄마는 집 가꾸기엔 관심이 없었던 것 같습니다. 애초에 집에 대한 애정이 없었을 수도 있겠고요. 집 자체보단 집이 있는 동네가 엄마에겐 집을 의미하는 듯 느껴졌으니까요. 늘 동네가 성에 차지 않던 엄마에게 집은 그저 머무는 곳,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었지 않았나 싶습니다. 사춘기 무렵 우울증을 앓았던 엄마는 작은 방에 숨어 도통 나오질 않았습니다. 엄마의 얼굴처럼 우리 집도 회색빛이 완연한 날들이었죠.  

   

신혼 때부터 간접조명을 달았습니다. 은은한 전구색 조명이 무척이나 마음에 들었기 때문입니다. 집을 더욱 예쁘게 비춰주는 효과도 있지만, 무엇보다 따뜻한 느낌을 주는 게 참 좋았습니다. 가끔 꽃집에 들러 한두 송이의 꽃을 데려오는 것은 생기를 더하기 위함입니다. 큰 실의에 빠졌던 어느 날, 우연히 데려온 꽃 한 송이가 건넨 담담한 위로가 잊히지 않기 때문입니다. 여행길에서 만난 앙증맞은 소품을 주머니에 채워오는 건 우리 삶에 미소도 잊지 않고 채워지길 바라는 마음에서 입니다. 특히나 세상에 하나뿐인 우리의 애교쟁이가 말이죠.     


똑같은 마음으로 아기자기한 것들을 주변에 선물하곤 합니다. 어린아이처럼 환하게 웃어주는 그들의 얼굴이 다시금 제 마음에 기쁨을 가져다주지요. 만약 그 시절 홀로 있던 엄마의 방에 작은 생기라도 가져다 놓았다면 무언가 달라졌을까요. 나비효과가 일어나 우리 집도 간접조명을 달아놓은 듯 따뜻해졌을까요. 후회하는 것은 아닙니다. 저는 너무 작았을 때이니까요. 단지 그 집도 엄마만의 집이 아닌 우리 집이었을 텐데, 왜 나는 우리 집에 그토록 관심이 없었을까 하는 아쉬움은 있습니다. 이제라도 엄마의 집이 무지갯빛을 띠는 안식처가 되길 소망하며, 손주가 그린 알록달록한 그림 하나 가만히 놓아두고 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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