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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심연 Jul 19. 2023

등하원도우미

등하원도우미라는 말이 등장했습니다. 돌봄 선생님이라고도 하고요. 말 그대로 부모 대신 등원을 시켜주고 하원 후에는 부모가 올 때까지 간식이나 저녁을 챙겨주는 것이 그들의 일과입니다. 어린이집은 아침 일찍부터 저녁까지 아이를 돌봐주지만, 유치원부터는 제약이 생기기 때문입니다. 사실상 어린이집도 피치 못할 사정이 아니고서야 마지막까지 남는 아이들이 거의 없는 경우가 많고요. 그럼에도 선택지는 어린이집뿐이니, 학교 가기 전까지 다닐 수 있는 어린이집을 찾는 워킹맘들도 많습니다. 여의치 않다면 학원으로 소위 뺑뺑이를 돌리는 방법을 선택하기도 합니다. 그래서 태권도 관장님들이 인기가 많습니다. 대신 그 일들을 관장해 주기 때문이죠. 한 건물에 태권도 학원과 미술, 피아노 등 여러 학원이 함께 상주하는 덕분입니다.   

   

전업맘의 역할 중 하나가 등하원도우미입니다. 어린이집에서 유치원으로 한 단계 업그레이드되니 등원 시간도 앞당겨졌습니다. 그간 단잠을 잤던 아이에게 규칙적인 취침과 기상 시간이 생겨난 셈이죠. 안 자려는 아이와 씨름하고 더 자려는 아이와 또 씨름하는 나날이 시작되었습니다. “빨리빨리”를 입에 달고 살던 시절, 뜻 모를 아이는 엄마의 감정 기복에 눈물 콧물을 달고 살았더랍니다. 아이가 떠난 거실에 홀로 앉아 엄마 역시 머리카락을 쥐어뜯으며 자책하곤 했고요. 덕분인지 하원할 때면 그렇게 다정한 모자 상봉이 따로 없었습니다. 잠시나마 휴식의 시간을 가진 모든 엄마의 눈에서 하트가 쏟아져 나오는 광경을 목격할 수 있는 순간이죠.     


하원 후 첫 스케줄은 놀이터 투어입니다. 약속이라도 한 듯 아이들이 쪼르르 유치원 근처 놀이터로 집합합니다. 엄마들은 별수 없이 그 뒤를 유유히 쫓아가지요. 삼삼오오 자연스레 엄마 무리가 형성됩니다. 그리 친하지도, 안 친하지도 않은 애매한 관계, 아이가 맺어준 인연입니다. 가장 각별한 관계는 조리원 동기들이라고 합니다. 보통 수유실에서 만나 친해진다고들 하는데, 일면식도 없는 사이 귀중한 몸 한구석을 턱 하고 들어냈으니 일반적인 인연은 아니겠지요. 게다가 아이에게 젖을 물리는 성스러운 행위로 결의가 다져졌다면 정이 쌓일 만도 하겠습니다. 또래보다 작게 태어나 엄마 젖 대신 고무젖꼭지를 물어야 했던 아들 덕에 제겐 조리원 동기가 없었지만요, 쿨럭.     


아이가 한 살 한 살 커가며 놀이터 투어도 절반으로 줄어들었습니다. 대신 학원이라는 스케줄이 그 사이를 비집고 들어왔습니다. 처음에는 접근하기 쉬운 놀이 미술에서부터 체육, 음악 등 예체능으로 학습이란 게 시작됩니다. 공부 자체에 재능이나 욕심이 있다면 국영수로 바로 돌입할 수도 있죠. 엄마들은 학원 등하원도우미로 다시 변신합니다. 요즘은 학원 대부분이 차량을 운행하니 어찌 보면 해야 할 일을 덜었습니다. 아이만 이 차 저 차에 실려 일찍이 대한민국의 교육 현실을 마주하게 된 셈이죠. 한 번은 놀이터에서 초등학생 누나를 만난 적이 있습니다. 친구들이 다 학원에 가서 놀 친구가 없다는 아이의 말이 참 씁쓸하게 느껴졌더랍니다. 내년이면 입학을 앞둔 아들이 똑같은 얘기를 하네요. “친구들은 다 어디 갔어?”     


교육에 정답은 없겠지요, 선택만 있을 뿐. 아이를 위해 결정한 이 선택이 옳은지 아닌지, 부모라면 끊임없이 고민하고 있을 겁니다. 어찌 보면 비극일 수도 있습니다. 아직 학교라는 문턱을 넘지도 않은 아이에게 공부며 학습을 운운한다는 게 말이죠. “다들 하니까 해야지”라는 회피형 핑계만 대고 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돌봐줄 사람이 없으니 학원으로 돌릴 수밖에 없다는 워킹맘들의 입장이 괜스레 속 편하게 보일 때도 있습니다. 일곱 살 아들은 얼마 전부터 한글 공부를 시작했습니다. 작년엔 그 재밌다던 놀이 미술도 석 달을 버터지 못했던 아이가 싫다면서도 앞장서 공부방으로 향합니다.      


엄마의 딸 자랑에서 빠지지 않는 레퍼토리는 “얘는 참 키우기 편했어”라는 말이었습니다. 가끔은 이게 칭찬인지 아닌지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긴 했지만 말이죠. 엄마 기억이 맞다면 엄마는 등하원도우미 역할을 해본 적이 없었더군요. 일곱 살부터 유치원 등원도 알아서 척척, 하원해서 저녁밥 먹기 전까지 또래들과 동네를 돌고 또 돌았으니까요. 친구들도 똑같은 기억이 있는 걸 보면 그 시절 엄마들의 육아는 지금보다 덜 골치 아팠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사회는 지금보다 믿음직했고, 덕분인지 아이들은 일찍이 홀로서기의 힘을 길렀으니까요. 혹시나 하는 마음에 전전긍긍하며 밀착 케어를 하는 동안, 아이도 엄마도 자립의 에너지를 잃어가고 있는 요즘은 아닌가 싶은 의문이 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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