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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심연 Jul 24. 2023

오늘은 뭐 하지

아이가 앉기 시작하면서부터 문화센터에 다니기 시작했습니다. 여러 가지 베이비 프로그램이 마련돼 있다지만, 사실 엄마의 바깥나들이가 우선이었습니다. 백일은 거의 집에서, 또 백일은 집 앞 공원 산책 정도가 유일한 외출이었으니까요. 처음으로 많은 또래를 만났으니 아이 또한 신세계를 마주했습니다. 아이라는 공통분모 덕분인지 엄마들끼리도 쉽사리 대화의 물꼬가 트이고요. 아이가 어린이집을 다니기 전까지 장장 2년여의 시간 동안 나들이는 계속되었습니다. 장소는 종종 바뀌었지만 분위기는 언제나 화기애애, 오전시간을 풍요롭게 보낼 수 있었습니다.    

 

아이가 어린이집에 다니게 되면서 대부분의 시간을 놀이터에서 보내게 되었습니다. 문화센터를 대신하게 된 것은 키즈카페였지요. 엄마와 단둘이 다니던 데에서 벗어나 아빠랑도, 친구들과도 무리 지어 가는 곳이니 아이로선 또 다른 신세계가 펼쳐진 셈이었습니다. 공간은 또 어떻고요. 처음 보는 장난감과 놀이기구가 즐비하니 기준시간만 채우고 나가는 건 매우 희박한 확률입니다. 물론 이런 일상이 아니더라도 아이가 걷기도 전부터 참 많이 끼고 다녔습니다. 부모의 여행 욕구가 첫 번째였지만 그 투명한 눈에 이 세상 저세상 비춰주고픈 욕심도 컸습니다. 눈에 담은 장면들이 아이 마음속에 잔잔히 자리하리라 믿으면서요.     


코로나로 인해 바깥 문턱이 턱 하고 막힌 순간, 그동안의 즐거웠던 추억은 괴로움을 몇 배나 더 강하게 끌어올렸습니다. 나들이에 이미 익숙해진 아이가 감당하기에는 벅찬 인내의 시간이었죠. 바이러스의 기세가 들끓을 때쯤, 우리 가족은 짐을 싸 남쪽으로 향했습니다. 확진자가 최소한으로 나오는 지역으로요. 아이를 위해 선택할 수 있는 최선의 방법이었습니다. 사람들을 마주칠 일도 마주할 수도 없으니 가족 간 정이 끈끈해졌습니다. 온종일 붙어있으니 미운 정도 두터워졌지만요. 유치원에 안 가도 된다는 사실에 아이는 그저 신이 났지만, 확진자가 나왔다는 유치원 알림 문자는 여행 내내 끊이지 않았습니다. 무엇이 올바른 방법인지, 찝찝한 마음을 안은 채 우리의 길고도 짧은 여행은 마무리되었습니다.     


아이가 일곱 살이 되면서 오늘은 무얼 하고 보내야 할지 고민이 깊어졌습니다. 단순한 놀이를 뛰어넘어 좀 더 교육적인 걸 찾아야 한다는 의문의 압박이 작용했달까요. 아마도 주변의 시선을 의식하면서부터였던 것 같습니다. 일곱 살보다는 예비 초등학생이라는 딱지가 자꾸만 제 마음을 옥죄입니다. 아이는 아이답게 양껏 즐기고 있을 뿐인데, 어느새 훼방꾼이 되어 아이다움을 해치고 있는 건 아닌지 모르겠습니다. 사실 아이에게 있어 놀이는 일상의 전부였습니다. 먹는 것은 물론 옷을 입고 화장실을 가고 잠자리에 들기까지 아이 삶의 모든 것이 놀이로 시작되었으니까요. 재미가 없으면 시도할 수조차 없고, 몇 번의 시도로 그친다면 익숙해질 수 없겠죠. 아이가 스스로 해내기까지 셀 수 없이 많은 놀이를 반복했던 것 같습니다. 까르르 나자빠지는 웃음소리에 꼴까닥 나자빠지길 두려워 않던 시절이었죠.     

 

아이가 혼자 할 수 있는 영역이 늘어가면서 놀이는 현저히 줄어들었습니다. 굳이 뽀로로 목소리를 따라 할 필요도, 슬랩스틱을 할 이유도 사라졌습니다. 대신 무미건조한 잔소리가 그 자리를 대신하게 되었죠. 오히려 아이가 나서서 이상한 목소리를 내고 몸 개그를 시전 하기 시작했습니다. 반응이 시원찮다 싶으면 강도가 더 세지는 기이한 현상도 일어나고요. 물론 아이가 만족할 만한 리액션이 나올 때도 있습니다. 엄마가 갑자기 왜 이러나 하는 표정을 지으면서도 결코 싫지 않은 모양새입니다. 아이가 아빠와 함께하는 시간을 고대하는 이유입니다. 엄마에 비해 망가지기를 서슴지 않는 그이니까요.     


그러고 보면 저의 일곱 살은 놀이의 연속이었습니다. 분필과 돌멩이 하나만 있으면 종일이고 뛰어놀 수 있었지요. 그뿐인가요. 달콤한 꿀 한 방울 얻을 수 있는 꽃망울도, 우직하게 서 있는 한 그루의 나무도, 놀이터의 흙과 모래까지 자연 모두가 놀이의 동반자였습니다. 삼삼오오 모여드는 친구들까지 덧붙여지면 그날의 놀이는 완벽, 그 자체였고요. 저녁밥이 다 지어지고 나서야 엄마들이 하나둘 아이들 이름을 부릅니다. 우리가 서로 함께, 또 자연과 함께이기 때문이었을까요. 안심구역처럼 여겨지던 동네 놀이터전이 종종 그리울 때가 있습니다. 스마트폰을 벗 삼아 노는 아이를 보고 있노라면 내일은 무얼 해야 좋을지 생각이 많아지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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