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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심연 Sep 07. 2023

전지적 참견 시점

아이가 크면서 엄마는 마치 총괄 매니저와도 같은 역할을 합니다. 교육의 카테고리 안으로 진입하면서 새로운 과제들이 생겨났기 때문이죠. 챙겨야 할 준비물도, 챙겨서 할 숙제들도 다양해졌습니다. 가장 중요한 건 시간 체크입니다. 등원 시간은 빡빡해졌고 하원 시간도 미뤄져서는 안 됩니다. 이후 학원들도 마찬가지이고요. 지금이야 제법 익숙해졌지만 여섯 살 때만 해도 갑자기 학원을 펑크 내는 일이 다반사였습니다. 이동 중에 잠이 들어버리거나, 안 가겠다고 마냥 떼를 쓰는 일이 일쑤였기 때문이죠. 둘러업든 꼬셔보든 어떻게든 학원 문턱만 넘으면 되는데, 거기까지가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니었습니다. 모두가 괴로운 상황을 수차례 겪고 난 뒤에야 결국 학원행은 중단하게 되었죠.     


단설유치원에서 사립유치원으로 옮기게 되면서 교육의 범위가 한층 넓어졌습니다. 생전 처음 겪는 학습 분위기에 아이의 당혹감은 불안으로 연결된 듯 보였습니다. 동네도 친구도 생경한 마당에 교실까지 아이를 한계로 몰아붙였던 것일까요. 밤마다 다음날 걱정에 눈물을 훔치는 아이를 달래며 우려가 현실이 되었음을 자각했습니다. 모든 것을 되돌리고 싶다는 후회가 밀려왔지만 이미 벌어진 일이라면 물러서지 않아야겠다는 의지도 불타올랐습니다. 엄마의 불안이 깊어지기 전에 찰떡같이 적응해 준 아들 덕이었지요. 물론 새로운 학습이 시작될 때마다 아이의 기복은 밀물과 썰물을 드나들었습니다. 아이 장단에 북 치고 장구 치는 일이 없도록 엄마는 전지적 자리에서 쉴 틈 없이 마인드컨트롤을 해야 했지만요.      


하반기가 가까워져 오며 예비초등학생의 애간장은 타들어 가기 시작했습니다. 아니, 예비초등학생을 둔 예비 학부모만의 입장입니다. 지출보다 효과는 더디고, 아이의 반항도 거세집니다. 자꾸만 셈이 어긋나니 학원도 선생도 아닌 아이를 쪼아대기 시작했지요. 나름 군말 없이 스케줄을 감당하던 아이도 결국 참았던 눈물을 보입니다. 한없이 작아지는 건 여자의 눈물 앞에서만이 아닙니다. 사슴처럼 맑은 눈망울에서 닭똥같이 떨어지는 눈물을 보고 있노라면, 제 입을 다시 쪼아버리고 싶은 마음이었죠. 아이를 키우며 흠칫 놀랄 때가 있습니다. 약자 앞에서 한없이 강해질 수 있는 인간의 얼굴을 마주하게 될 때입니다. 나는 그런 사람이 아니야,라고 자신하며 살았지만 아이는 그 누구보다 여리고 순한 인간일 뿐이니까요.    

 

육아는 과거를 소환시킬 때가 많습니다. 특히 엄마와의 시간을요. 얄궂게도 좋았던 때보다 반대의 경우가 대부분입니다. 왜 상처가 되는 기억은 생생하게 자리하고 있는 걸까요. 그날의 공기, 표정과 말투, 강도와 아픔까지요. 압축하자면 엄마는 저에게 있어 권력자이자 전지적 위치였던 것 같습니다. 엄마의 말을 잔소리라고 말할 수 있게 된 건 저에게 어느 정도 힘이 생긴 이후였을 테고요. 잔소리는 애교인 셈이지요, 후후. 엄마에게는 미안하지만 그런 엄마가 되지 않겠다고 다짐했었습니다. 믿어 의심치 않는 엄마가 되지는 못할망정 두려워하는 엄마가 되지는 말자고 말입니다. 그런데 자꾸 제 아이의 눈에서 두려움을 발견할 때가 있습니다. 매를 들지 않았을 뿐, 무섭게 쪼아대는 그 입이 망정이겠죠.      


언젠가 한 방송을 보고 뒤통수를 얻어맞은 기분이었습니다. 괴테가 남긴 말이었다고 하는데요. 부모가 아이에게 주어야 할 두 가지는 날개와 뿌리,라고 말입니다. 일차원적으로는 모순이라고 생각했습니다. 뿌리를 단단히 내리고 있는데 어디를 훨훨 날아가느냐 하고 말이죠. 하지만 다시 한번 곱씹어보았습니다. 어디에도 제대로 뿌리내리지 못한다면 도약할 힘이 없어 날아가지 못하겠구나, 그저 맥없이 한 자리에서 이리저리 흔들리고 있겠구나 싶더군요. 마흔이 넘어서도 쉼 없이 흔들리는 제 모습이 떠오르기도 했고요, 쿨럭. 깊고 단단한 뿌리를 발판 삼아 저 멀리 자유롭게 날아가는 아이의 모습을 상상해 보았습니다. 브라보, 저도 몰래 박수가 터져 나옵니다.      

육아의 목표는 아이의 자립이라고도 하죠. 그러고 보니 괴테의 말과도 상통하는 것 같습니다. 신체적 자립은 물론이거니와 온전한 정신적 자립을 위해 힘써야겠죠. 가끔 친구와 농담처럼 주고받는 말이 있습니다. 아직도 원 가정에서 정신적 독립을 하지 못한 것 같다고 말이죠. 가난은 대물림된다는 무거운 말처럼, 육아도 한순간 대물림되는 절차를 밟을 수 있습니다. 그 고리를 끊어내는 건 지금의 저뿐이겠지요. 일순간 과거에 소환되더라도 고통을 가져올지 전환을 가져올지는 제 선택에 달려있습니다. 인생이 고통이라면 육아는 전투 같습니다. 꿈을 싣고 멋지게 항해할 아이의 내일을 그려보며, 전업맘은 전지적 자리를 탈피하기 위해 고군분투할 자신감을 얻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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