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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심연 Oct 10. 2023

운동은 필수

건강에는 자부심이 있었습니다. 큰 탈이 난 적도, 큰 짐이 된 적도 없었지요. 삼십 대 중반이 넘어 첫 아이를 낳고 키우면서도 딱히 무리가 될 정도는 아니었습니다. 어려서부터 나름 운동 신경이 있었고, 웬만한 스포츠는 즐길 만큼의 체력도 겸비했었지요. 운동은 필수가 아닌 취미의 영역일 뿐이었습니다. 뒤통수를 얻어맞은 건 3년 전이었습니다. 건강한 신체는 건강한 정신에서 비롯된다는 얘기를 정면으로 맞닥뜨리는 사건이었지요. 가슴이 타들어 간다는 의미를 여실히 느꼈던 그날부터 제 몸도 조금씩 바스락거리고 있었나 봅니다.  

   

처음 큰 이상을 감지한 건 잦아들지 않는 피로에서였습니다. 침대와 한 몸이 되어버리기 일보 직전 찾은 내과에서 큰 병원으로 가보라고 하더군요. 드라마에서만 보던 장면을 이렇게 일찍 마주하게 될 줄은 몰랐습니다. 덤덤하기는커녕 호들갑에 가까운 의사의 제스처 덕에 주인공처럼 동요되진 않았던 것 같습니다. 솔직히 겁이야 났지요. 네 살밖에 되지 않은 아이 얼굴도, 같은 아픔을 지나고 있는 남편의 뒷모습도 밟혔습니다. 그래도 갑상선암은 한 다리 건너 흔히 보기도, 나름 착한 암이라 불리기도 했으니까요. 물론 저에게 오기 전까지 해당하는 말이었습니다만, 쿨럭.     


조직검사를 하고 수술 날짜가 잡히니 오히려 마음이 차분해졌습니다. 나한테 왜,라고 악을 쓰던 지난날에서 나라고 왜, 라며 한결 독이 빠져나간 모습이었죠. 다행히 수술도 잘 됐고 항암도 비껴갔습니다. 매일 아침 먹어야 할 약이 생겼지만, 어느새 챙겨 먹는 영양제도 늘어나 있던 터였으니까요. 하지만 새로운 각오는 오래가지 않았습니다. 선명했던 수술 자국이 사라져 갈 무렵, 신체 일부를 잃었다는 사실도 잊어버렸던 걸까요. 나태함이 쌓여가면서 크고 작은 증상들이 연이어 몸을 잠식해 오더군요. 그때부터였던 것 같습니다. 살기 위해 운동을 시작한 건 말이죠.     

걷기와 스트레칭 위주의 운동이지만 효과는 상당했습니다. 하는 날과 하지 않는 날의 차이가 극명할 정도였죠. 식은 죽 먹기였던 운동들이 초보자인 양 낯설 때 조금 서럽기는 했습니다. 아들에겐 처음이었던 놀이공원에서 유아용 롤러코스터에도 손발이 덜덜 떨렸던 기억은 난감하기 짝이 없고요. 번지점프도, 스카이다이빙도 무서울 리 만무했던 그 시절의 저는 이제 찾아볼 수 없습니다. 처녀 적 날렵함을 알 리 없는 아들의 놀림에 배짱 있게 대응해야 할 밖에요. 호르몬의 농간도, 세월의 야속함도 매일 해야 할 운동처럼 덤덤하게 받아들여야 할 때가 왔습니다.      

반드시 놓치지 말아야 할 것은 마음 돌봄입니다. 아이를 돌보듯 제 마음도 잘 살펴야 하지요. 스트레스는 불현듯 찾아오는 불청객이니까요. 원형탈모와 두드러기는 암에야 견줄 수 없는 것들이라지만, 오히려 아주 집요하게 사람을 괴롭히더군요. 병원의 반응은 한결같았습니다. 최근 들어 급격하게 스트레스받는 일이 있느냐는 물음이었죠. 그것들이 면역계 질환이라는 것은 나중에서야 안 사실입니다. 갑상선 이상으로 이미 면역체계에 문제가 생긴 저에겐 자연스레 뒤따를 수 있는 증상들이었던 셈이죠. 단순히 스트레스에만 매몰되는 건 또 다른 스트레스를 낳을 수 있는 수순이 될 수도 있었습니다.      


주변을 의식하고 경계하는 태세를 갖추다 보면 어느새 피로가 탑처럼 쌓입니다. 긴장한 근육들이 뭉치고 뭉쳐 돌처럼 단단해지는 느낌이랄까요. 타고난 기질은 바꿀 수 없으니, 피할 수 없다면 받아들여야 했습니다. 먼저 군중 속을 탈피해 산책을 나섰지요. 생기를 내뿜는 자연은 함께이면서도 혼자인 듯 곁에 머물렀습니다. 아무 말도 하지 않았지만 살아있음을 온전히 증명해 내며 제게도 살아있으라 소리치는 것만 같았죠. 그렇게 회복은 고요히 시작되었습니다. 땀을 흘리고 생각을 흘리면서 오랜만에 평안함을 느꼈습니다. 어느새 행복보다 평안을 위한 인사가 더 기다려지는 나이가 되었나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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