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방에 가는 일은 즐거움 중 하나였습니다. 언젠가 저 수많은 책 속에 나의 이름 석 자도 자리할 날을 꿈꾼 적 있지요. 추종하는 마음과 달리 책을 읽는다는 건, 뭐가 써낸다는 건, 물 흐르듯 자연스럽게 흘러가지 않았습니다. 그보다 중요한 것이, 즐거운 것이, 그땐 많았던 때문이겠죠. 다행인 건 전공과 직업 덕분에라도 끄적이는 일을 손에서 놓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감을 잃지 않는다는 건 원점으로 돌아왔을 때 크나큰 원동력이 되더군요. 별다른 쓸모없이 오래도록 가방 속을 나뒹굴던 볼펜 한 자루도 그랬던 것 같고요.
책에 대해 애정이 생긴 건 얼마 되지 않은 일입니다. 동시에 그간 쏟았던 것은 관심 혹은 허세에 지나지 않았다는 것도 자각하게 되었지요. 자석에 이끌리듯 비슷한 처지에 놓인 이들을 맹목적으로 쫓던 때였던 것 같습니다. 네 마음이 내 마음과 같고, 내 마음이 곧 네 마음 아니겠냐는 절실한 공감을 찾아 헤매던 날들이었죠. 그때 가슴에 날아와 꽂힌 건 ‘한 말씀만 하소서’라는 제목의 책 한 권이었습니다. 박완서 작가가 아들을 잃고 통곡 대신 미친 듯이 끄적거린 것이란 고백이 데자뷔처럼 그날을 관통했지요.
3년 전, 둘째를 임신하고 오랜만에 모니터 앞에 앉았습니다. 시작은 기록을 위함이었습니다. 배 속의 둘째가 아프다는 청천벽력 같은 진단을 받고 난 뒤였죠. 이미 5년 차 경력자인 엄마로서 슬픔은 오래 두지 않기로 했습니다. 의지를 불태우며 희망을 다짐했죠. 그러기 위해 선택한 건 글을 쓰는 일이었습니다. 몇 달 뒤, 우리가 그려낸 오늘의 영광을 추억하리라 믿어 의심치 않으면서요. 우리 이야기라는 생각에 글을 써내는 일이 힘들지 않았습니다. 나날이 기록이 쌓여가면서 위안도, 희망도 깊어졌고요. 피할 수 없는 사고처럼 일순간 모든 게 잿더미가 되기 전까지는 말이었죠.
나름의 소명이었을까요. 끝맺지 못할 줄 알았던 이야기는 투쟁하듯 마침표를 찍었습니다. 스치듯 이승을 거쳐 간 둘째는 그렇게나마 세상에 자신의 궤적을 남겼습니다. 지금은 제 노트 속에 고이 잠들어있지요. 하지만 날 것의 이야기는 그날의 분위기를 오롯이 꺼내오기도 했습니다. 한동안 열어보기 힘들 만큼 봉인된 기록은 한참의 시간을 흘려보내고 나서야 조금씩 느슨해지기 시작했습니다. 결국, 너와 나, 엄마와 딸, 우리 둘의 이야기였기 때문일 테죠. 그날, 다시금 글 곁에 서게 된 건 온전히 둘째 덕이었습니다. 다시 돌아와 어떻게든 매듭을 짓고 마는 과정이 곧 치유의 길이란 것도 알게 되었고요.
사실 단 한 번 가정조차 해보지 못한 극한의 고통은 제가 그것이라 생각했던 그간의 모든 기억을 한순간 초토화해 버렸습니다. 독기라도 품은 듯 모질었던 대상들에 헛웃음을 날렸던 그날, 오래도록 고약했던 감정도 갈 길을 잃어버리더군요. 증오가 사라진 뒤 몰려오는 허무는 또 어찌나 퀴퀴한 냄새를 풍기던지요. 안식을 위해 찾은 건 글이었습니다. 글을 통로 삼아 얽히고설킨 지난 상처의 고리를 끊어내는 대장정이 시작된 셈이지요. 구태여 되짚는 일련의 과정에 의구심이 들 때도 있었지만, 심연을 들여다보게 되면서 조금씩 고요와 평안을 느꼈습니다. 오롯이 나 자신에게 몰두하는 일, 나 자신을 알기 위해 온전히 애를 쓰는 작업은 고된 만큼 값진 보상을 주었지요.
전업주부와 전업맘이 아닌 전적인 나로서 존재하는 시간, 그 어느 때보다 시계는 바삐 움직입니다. 몰입의 쾌감을 오랜만에 느껴봅니다. 발은 붓고 어깨가 뭉치지만 쉴 틈 없는 운동이 백업을 준비하고 있으니까요. 생각이 육체를 집어삼키려 할 땐 무작정 책을 잡아 듭니다. 상비약처럼 곳곳에 자리한 그들은 친구이자, 선배이자, 스승이기도 하지요. 덕분에 맑은 기운 듬뿍 안고 모니터 앞에 앉습니다. 오늘은 무엇을 끄적이게 될까요. 어떤 기억이 소환되어 다시 매듭짓고 치유되길 바라며 마중 나와 있을까요. 이 모든 게 단단한 내일을 위한 몸부림이란 걸, 저 자신은 믿고 있는 거겠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