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김연의 Oct 18. 2021

좀 더 고민해보세요

초보 팀장의 다짐

선배라고 해서, 팀장이라고 해서 항상 정답을 말할 수는 없다. 특히 후배가 '어떻게 하면 더 잘 할 수 있는지'와 같은 어려운 질문을 할 때, 그럴 땐 이렇게 한 번 해보라고 술술 얘기해 줄 만큼 준비되어 있기란 쉽지 않은 일이다. 그럴 때 딱 피해가기 좋은 대답이 이거다. 

"음.. 좀 더 고민해봐요." 

뭔가 나도 모르겠다고 하기엔 민망하고, 그렇다고 아주 잘 하고 있다고 하기에는 뭔가 부족하게 느껴질 때 적당히 되돌려보낼 수 있는 대답으로 종종 써먹곤 했다. 

근데 나는 팀원들에게 수시로 던졌던 이 말을, 막상 내가 선배 팀장에게 들으니 그렇게 기분이 나쁠 수가 없는 거다. 

연말에 팀원들 평가를 잘 주려면 먼저 팀의 성과를 인정받아야 하는데, 그럴려면 평가 지표가 명확해야 한다. 가능하면 매출 얼마, 조회수 몇만뷰, 손익 몇프로처럼 숫자로 딱 떨어지는 게 평가받기는 좋다. 하지만 기업문화같이 애매모호함의 끝장인 일은 좀처럼 숫자로 평가받기가 어렵고, 열심히 일한다고 해서 드라마틱하게 기업문화가 좋아질리도 없으며, 그 와중에 성과를 어필하려면 어쩔 수 없이 구구절절해진다. 초보 팀장으로서 다가오는 평가 시즌이 부담스러워 넋두리를 했더니 선배들이 하는 말, "아직 고민을 덜 해서 그래."

...

듣자마자 짜증이 팍 났다. 아닌데요, 나 고민 충분히 했는데요? 반발심부터 들었다. 우리 팀의 성과에 대해서는 당신들보다는 고민 많이 하거든, 자기들이 뭘 안다고 고민 운운이야. 한 편으로는 정답을 달라는 것도 아니고, 선배 붙잡고 하소연 좀 한 걸 가지고 면박을 주나 서운함이 밀려왔다. 그저, '맞아, 어렵지.' 한마디면 될 것을.. 

이런저런 생각을 하다보니 문득 깨달았다. 나 역시 답을 잘 모를 때, 딱히 뭐라고 할지 모르겠을 때 하는 말이 '더 고민해봐라'가 아니었던가. 그들은 딱히 해줄 말을 찾지 못한 것이다. 내가 팀원들에게 그랬던 것처럼.

나름대로 있어보이는 척 던졌던 '고민해보라는 말'이, '네가 뭘 안다고' 하는 반발심 내지는 '너도 잘 모르는구나' 티가 마구 나는 성의없는 말이었다는 걸 알게 되니 새삼 부끄러웠다. 나 역시 팀원이 고민거리를 들고 찾아왔을 때, 최선을 다해 귀를 기울이고, 지금 이 친구가 어떤 심정일지를 먼저 헤아리고, 내가 해 줄 수 있는 부분을 찾는 노력을 기울였던가 되돌아보게 된다.  

정말 1도 고민하지 않고 그냥 들고와서 답을 달라고 하는 후배들도 물론 있다. 그런 건 대번에 티가 난다. 그럴 때는 네가 할 고민을 왜 나한테 들고 오냐고 나무라도 좋다. 하지만 나름대로 자기 선에서 최선을 다해 고민하다가 벽에 부딪혀 찾아오는 친구에게 '고민을 덜 해서 그래. 좀 더 고민해봐.'라고 받아치는 건 너무 가혹한 처사다. 오히려 반발심을 부추겨 더 잘 해보려던 의지만 꺾을 수도 있다. 

후배가 SOS를 청했을 때 선배로서, 팀장으로서 해야 할 일은 다 아는 척 허세를 부리는 게 아니라, 그 순간 그 고민에 함께 적극 동참하는 것이다. 내 경험과 지식을 살려 조언을 건네도 좋지만, 여력이 된다면 같이 머리를 맞대고 고민하며 이런 각도, 저런 시각에서 다시 생각할 수 있게 도와주어야 한다. 만약 지금 다른 일을 하고 있거나 머릿속이 복잡하다면, 지금은 좀 어려우니 잠시 후에 얘기하자고 말하는 게 차라리 낫다. 명확한 답을 주지는 못하더라도, 같이 고민하고 좀 더 나은 결과를 만들어낼 수 있게 돕는 것이, 선배의 지혜를 구하려는 후배에게 해 줄 수 있는  가장 선배다운 모습이 아닐까 싶다. 

작가의 이전글 목표와 계획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