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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연의 Oct 14. 2021

목표와 계획

초보 팀장의 고민

팀원들과 면담을 하다보면, 항상 목표와 계획 사이에서 줄타기를 한다. 높은 목표를 달성하려면 도전적인 계획을 세워야 하는데, 열정만 가득한 뜬구름 잡는 계획으로는 도무지 실행을 할 수가 없다. '조직문화 진단점수 9점, 글로벌 일하기 좋은 100대 기업 선정'과 같이 기업문화계의 하이엔드를 목표로 한다고 해서, 그걸 위해 리더십을 바꾸고, 제도를 다 뜯어 고치고, 사옥을 이전하고, 급여를 2배 이상 올린다는 계획을 세운다면? 이건 마치 100미터 달리기를 잘하려면 보폭을 넓게 발을 빨리 움직이면 된다는 말처럼, 머리로는 알겠지만 절대 할 수 없는 전략이다. 이렇게 되면 계획을 세두다가 이미 포기한다. 그렇다고 제약조건을 전부 반영해서 '현상 유지' 같이 지극히 현실적인 목표를 세우면, 열심히 일을 해서 목표를 달성한들 별로 기쁘지가 않다. 성과라고 하기엔 뭔가 달라진 것 같지가 않고, 자연히 일이 재미가 없다. 


높은 목표와 현실 사이에서 갈등하는 팀원들을 볼 때, 비슷한 고민을 늘 해왔던 나의 주니어시절을 떠올린다. 신물이 날 정도로 온갖 종류의 보고 자료를 만들면서, 도무지 이 말장난을 언제까지 해야하는가가 늘 의문이었다. 저 높은 곳에 계시는 경영진은 언제나 최고의 목표를 요구하는데, 현실은 늘 '안 되는 이유'들이 난무하는 시궁창이었다. 경영진 보고 자료에는 항상 어떻게든 해보겠다는 '열정'으로 가득한 숫자와 계획들이 깨알같이 들어가야 했다. 이 자료에 현실적인 계획은 거의 들어가지 않았다. 안 되는 이유를 변명처럼 늘어놓는 게 허용되는 문화도 아닐 뿐더러, 실제로 실무단에서 실행이 되는지 안 되는지는 경영진에게 전혀 중요한 사항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당연히 그 보고 자료에 적힌 내용들은 대부분 실행에 옮겨지지 않았고, 다음 달이 되면 어김없이 열정적인 계획을 빼곡히 적는 '말 장난'을 반복해야 했다.


높은 목표를 향해 달려가는 것은 좋다. 하지만 터무니없이 높은 목표와, 무작정 도전적인 계획을 세운다고 반드시 우상향으로 갈 수 있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현실의 벽이 높다고 해서 목표도 같이 낮아질 필요도 없다. 목표는 말 그대로 현재가 아닌 미래의 모습이기 때문이다. 


목표와 계획을 놓고 고민하는 팀원들에게 내가 늘상 해주는 말은 이것이다. 

 "목표는 이상적으로, 계획은 현실적으로"


이 말 자체가 굉장히 이상적이라고 여기실 수도 있다. 하지만 이것은 이상이 아닌 지극히 현실적인 원칙이다. 논리는 다음과 같다. 


첫째, 이상적이지 않은 목표는 목표라고 할 수 없다.

이상적인 목표란, 말 그대로 아무런 제약이 없는, 아주 이상적인 환경에서 내가 도달하고 싶은 목적지의 모습을 그리는 것이다. 이상적이라는 말을 '비현실적'으로 오해하거나, 왠지 '추상적이고 애매모호한' 것으로 잘못 이해하는 경우가 종종 있는데, 이상적이라고 해서 무조건 절대 실현 불가능한, 난데없는 상상의 나래를 펼치라는 게 아니다. 내가 지금 몸 담고 있는 일, 내 삶의 연장선 속에서 생각할 때 이러이러하면 참 좋겠다고 생각하는 이상적인 모습을 떠올리는 것이다. 

우리가 목표를 정하는 이유는 방향성을 가지고 움직이기 위해서다. 움직이려면 지금과는 다른, 뭔가 더 바람직한 방향으로 나아진 곳을 향해 몸을 틀어야 한다. 이 때 목표를 이상적으로 잡아야 하는 이유는, '할 수 없는 이유, 안 되는 이유'들에 매몰되어 정작 내가 추구해야 하는 방향성을 잃지 않기 위해서다. 목표를 정할 때 만큼은 잠시 현재의 조건들을 내려놓고, 아무런 제약이 없다면 나는 무엇을 할 수 있을지, 어떤 것들을 해보고 싶은지를 명확하게 그려보는 것이 좋다. 언제가 될지 모르지만 언젠가는, 반드시 달성하고 싶은 목표점을 정하는 게 방향성을 정하는 첫번째 단계라고 할 수 있다. 


둘째, 목적지가 명확하다면, 다음은 시간 문제다.

내가 가장 이상적이라고 생각하는 '모습'을 뚜렷하게 그렸다면, 이제 거기에 '시점'을 덧입혀야 한다. 지금부터 5키로를 뺄 건데, 그게 1년 후가 될지, 5년 후가 될지에 따라 계획이 완전히 달라진다. 이 때는 현실을 약간 고려하지 않을 수 없다. 이상적인 목표라고 해서 반드시, 당장 한 달 후에 비키니를 입겠다고 목표를 세우면, 시작도 하기 전에 좌절하게 될 것이다. 회사 일도 마찬가지다. 당장 다음 달에 2배로 성장한다거나, 1년 내에 모든 걸 바꾼다는 야심찬 목표를 세우면 갑자기 실행 의지가 팍 꺾인다. 이상적인 목표란, 내가 생각하는 아름다운 그림을 현실화할 수 있는 이상적인 시점이 따라와야 비로소 완성된다. 여기서의 '이상적'이란 말은 '최적의' 시점이라는 뜻이다. 쉽게 말하면, 언젠가 이 목표에 도달해야 하는데, 이왕이면 이때쯤이면 가장 좋은 시점을 찾는 것이다. 3년 후가 되든, 5년 후가 되든, 내가 이상적으로 생각하는 그 모습에 이때 즈음에는 반드시 가 있겠다는 다짐을 할 수 있는 수준이면 된다. 


셋째, 목표로부터 시간을 역산하면 현실적인 계획이 된다.

목표지점과 시점을 정했다면, 그 다음 단계는 시간을 역산하여 계획을 세우는 것이다. 3년 후에 목적지에 도달하는 게 목표라면, 2년 후, 1년 후에는 어떤 모습이어야 하는지를 그려보고, 그 모습이 되기 위해 해야 할 일들을 리스트업 하는 것이다. 이 때 중요한 것은 시간을 '역산'해야 한다는 점이다. 지금 시점부터 할 수 있는 일들을 먼저 나열하다보면, 할 수 없는 여러가지 제약조건에 제일 먼저 부딪히게 된다. 지금의 상황 조건에만 집중하다보면 정작 목표 달성을 위해 해야 할 일들을 놓치기 쉽다. 시간을 역산하여 1년 후, 6개월 후, 3개월 후, 한 달 후로 계획을 쪼개다보면 오늘 당장 해야 하는 일이 나온다. 계획을 세울 때 부딪히는 '제약조건'은 대부분 시간과 돈이며, 회사에서 이 제약조건을 해결하는 방법은 윗사람의 의사결정이다. 시간의 부족은 사람을 더 투입하거나 외주를 주는 방법으로 해결할 수 있고, 돈의 부족은 예산을 추가로 확보하는 것으로 의사결정을 받으면 된다. 목표가 명확하고,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지금 그 일을 해야 하는 당위성이 충분하다면, 이러한 제약조건은 얼마든지 극복할 수 있다. 무엇보다 '안 되는 이유'가 아닌, 반드시 해내겠다는 계획을 들고 오는 직원에게 무조건 'NO'라고 말할 상사는 없을 것이기 때문이다. 


이 원칙의 가장 중요한 점은, 계획이 중간에 변경되고 실행 과정에서 약간의 딜레이가 있더라도, 최종 목적지는 변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처음부터 이상적이면서도 명확하게 세워놓은 목표라면 중간에 방해 요소가 생기더라도 흔들리지 않을 수 있다. 3년 후였던 목표가 5년으로 늘어날 수도 있겠지만 그건 시간의 문제이며, '결국 맞게 간다'는 게 이 원칙의 힘이다. 변화가 극심하고 한 치 앞도 알 수 없는 불확실한 시대에, 내가 세워둔 목표를 향해 매일매일의 시간을 유효하게 사용한다는 건 개인에게도, 회사에게도 굉장히 중요한 일이다. 



주니어 시절, 높은 목표와 열정적인 계획이 빼곡했던 보고 자료에 지쳤던 이유는, 그 목표와 계획이 내 것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회사가 정해둔 높은 목표, 그리고 어떻게든 빨리 해내라는 다그침 속에 말 뿐인 계획만 난무한 보고 자료는 글자 그대로 '말 장난'이었다. 회사의 목표는 물론 위에서 정하는 것이고 회사의 큰 방향성 역시 이미 정해져 있는 것이지만, 팀원들이 하고 있는 일 하나하나의 주인은 팀원 자신이다. 팀원들이 자신의 일에 대해 자기만의 이상적인 그림을 그려보고, 언제쯤 그곳에 도달할 것인지 스스로 정하고, 그걸 하기 위해 오늘 당장 무엇을 해야하는지, 어떻게 할 수 있는지, 그리고 장애물이 무엇인지 이야기하는 과정은, 일의 주인으로서 스스로 최선을 다하게끔 하는 가장 효과적인 방법이다. 자기 일에 스스로 최선을 다하게끔 만들어 주는 것이, 팀장으로서 팀원에게 해줄 수 있는 최고의 동기부여가 아닐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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