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스터트롯에 참가해서 경연을 펼쳤던 강태관이 준결승을 마지막으로 무대를 떠났다. 기대했던 것과 달리 강대관의 퇴장은 쓸쓸한 여운을 가득 남기고 말았는데, 그것은 아마도 심사에 참여한 레전드와 마스터의 심사평 때문이 아닌가 싶다.
강태관은 국악의 판소리꾼으로서 판소리대회에서 장원을 수상함으로 군대 면제 혜택까지 받은 재원이다. 그런 그가 미스터트롯에 출연해 자기만의 색채와 창법으로 강태관이라는 존재를 각인시켰다.
네 명이 팀을 이뤄 부른 ‘2대8’을 통해서는 강태관의 소리가 충분히 섞일 수 있을 뿐만 아니라 그 자체로 경쟁력 있는 소리라는 것도 보여주었다. 특히 후반부에 판소리 창법의 선율로 화음을 넣은 것은 가히 백미라고 해도 될 만큼 수려한 소리의 어우러짐이었다.
또한 팀미션 도중에 엎드려 혼자서 부른 ‘한오백년’은 가히 절창이었다고 해도 될 만큼 예술적인 무대였다. 이 곡 하나만으로도 강태관만이 보여줄 수 있고 해낼 수 있는 절대적 개성의 필요성을 충분히 공감하게 해주었다.
비슷한 소리, 비슷한 느낌의 가창자가 아닌 자기만의 확실한 무기를 지닌 강태관은 준결승 후에 안타까운 판단에 직면해야 했다. 강태관이 부른 주현미의 ‘정말 좋았네’는 취향에 따라서, 그리고 강태관이 미스터트롯에 참가해서 부른 노래의 흐름에 입각해서 보면 나름 인상적인 평가를 받을 수도 있는 가창이었다.
마치 수채화 같은 느낌이라고 예를 들 수 있겠다. 그런데 이 수채화는 수채화 자체로만 보면 아주 산뜻하면서 투명하고 맑지만, 유화와 비교해서 보면 너무 가볍거나 묽게 보일 수밖에 없다. 그래서 수채화를 볼 때는 수채화라는 틀 안에서 수채화로만 보아야 한다. 유화를 그리던 사람이 수채화를 그렸을 때는 그 수채화를 유화와 비교해서 말해서는 안 된다. ‘왜 유화를 그리지 않고 수채화를 그렸느냐’고 말해서는 더더욱 안 된다.
수채화를 언급하는 이유는 강태관의 가창과 노래가 수채화 같은 긍정적인 측면이 있었기 때문이다. 보기에 따라서는 강태관의 색다른 색채감이 매력적일 수도 있었는데, 레전드 심사평부터 그 기준점의 출발이 강태관에게서 나오지 않고 자신의 느낌에만 강하게 꽂혀 있었다.
그 레전드가 ‘국악적인 소리, 판소리 같은 노래를 왜 하지 않느냐’고 했을 때 강태관은 물론 보는 시청자도 당혹스러웠다. 그래서 한 마스터는 그 레전드의 심사평을 무마하는 동시에 강태관을 위로해주는 차원에서, ‘국악 느낌이 나면 그것을 빼라 하고, 국악 느낌이 빠지면 왜 뺐느냐고 해서 강태관 씨가 힘들었을 것’이라고 말해주었다.
여기서 짚고 넘어가야 할 문제는 심사의 일관성이다. 일관성 문제는 레전드는 물론 마스터에게도 그대로 적용된다. 먼저는 중간에 참여한 레전드 심사위원이라면 꼭 점검해야 할 문제다. 경연 도중에 들어갔다면 이전의 과정을 미리 살펴보고 들어가서 심사해야 한다. 처음부터 지금까지의 맥락이나, 또는 이슈가 되었던 내용을 참고하고 참작하는 것은 심사에서 반드시 필요하다.
마스터 심사위원도 마찬가지다. 처음부터 심사에 참여했다면 일관된 판단과 조언을 했어야 했다. 또한 참가자의 특징을 이해하면서 그 특징을 살리거나 그 특징을 조화롭고 알맞게 버무리는 쪽으로 이끌었어야 했다. 그런데 자기 입장에서 그리고 단순하게만 ‘그 색깔을 빼라’는 식으로만 말한다면 이 역시 일관성이 없는 것과 같다.
판단을 하고 점수를 줬을지라도 심사평은 좋게 할 수도 있었다. 점수와 가치는 별개이기 때문에 그 시도를 긍정적으로 보면서 아름답게 퇴장하는 뒷모습을 연출해줄 수도 있었다. 그것은 수고한 참가자에게 베푸는 일종의 매너이기도 하다.
그러나 심사평 자체가 우왕좌왕하는 느낌이어서 강태관은 정서적으로 쓸쓸한 뒷맛을 남기는 퇴장을 할 수밖에 없었다. 시청자로서 진한 아쉬움이 남는 대목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