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쓰기, 완성이 아니어도 괜찮다

30분 집중해서 글쓰기

by 하루




무기력의 늪에 빠져 있을 때, 나는 다시 글을 쓰기 시작했다. 이불 밖으로 나서고, 옷장을 비우고, 계절을 느끼고, 웃고, 선물을 고르고, 청소를 하면서 조금씩 일상을 되찾아가던 중, 브런치북 연재를 시작하면서 꾸준히 하고 있던 게 하나 있다. 바로 글쓰기.


어렸을 때부터 글쓰기를 좋아하긴 했지만, 성인이 되면서부터는 긴 글을 쓰는 일이 많지 않았다. 쓰더라도 일과 관련된 글이라 내 이야기를 하는 일은 특히 더더욱 없었다. 그래서 글을 쓰는 이유는 물론이고 글쓰기의 맛을 잊고 있었다. 이번 성취 리스트의 목표는 '30분 집중해서 글쓰기'다. 발행하지 않아도, 완성하지 않아도 그저 매일 30분, 나를 위한 글을 쓰는 것이 목표다.




다시 글쓰기를

찾은 순간들



오랜 직장을 그만두고 튀르키예로 여행을 떠났고, 2주간의 시간은 내게 다시 '살아있는' 기분을 느끼게 한 순간들로 가득했다. 감각이 깨어나는 순간들로 가득했던 기억을 남겨두고 싶었고, 그래서 블로그에 여행기를 쓰기 시작했다. 노출, 조회수, 체험단 등등 아무것도 신경 쓰지 않고, 내 추억을 회상하는 너무나 행복한 시간들이었다. 그때의 글쓰기는 진짜 풍미가 진한 커피 맛집의 라떼 첫 모금을 마실 때의 그런 맛이었다.


신나서 마구 써 내려가던 여행기를 다 쓰고 나자, 다시 흥미가 떨어졌다. 간간이 이런저런 글을 쓰긴 했지만, 여행기를 쓸 때처럼 스트레스가 풀리는 순간은 아니었다.


그러다 다시 글을 써야겠다고 싶어진 순간이 있었다. 나와 15년을 함께한 반려견 하루가 아프기 시작했을 무렵인데, 그때에는 글을 쓰고 싶다기보다 써야겠다는 생각이 강했다. 평생 나와 함께할 것만 같았던 하루가 갑자기 떠날 수도 있다는 생각에 하루와의 추억들을 어디에라도 더 남기고 싶었던 마음이었다. 그리고 시간이 더 흘러서 하루의 간병 생활을 시작하면서는, 아파서 내 품에 안긴 채 잠든 하루를 보며 뭐라도 쓰지 않으면 마음이 한없이 약해져 글을 써야만 했다. 하루에 대한 글을 쓸 때에는 슬픔을 쏟아내고 괜찮아질 거라는 희망을 되새기는 위로와 다짐의 시간이었다. 그때의 글쓰기는 쓴 술을 벌컥벌컥 들이켜는 맛이었다.


그리고 최근에는 브런치를 시작하며, 내 안의 생각들을 좀 더 쏟아내기 시작했다. 가장 최근의 내 이야기인데 무기력해질 대로 무기력해진, 굳이 아는 사람에게는 하고 싶지 않은 그런 내가 이불속에서 나오려고 고군분투 중인 소박한 이야기를 써 내려가는 시간은 내게 용기와 확신의 시간이 되었다.




매일 30분,

글쓰기 근육 키우기



30분 글쓰기를 시작하기로 결심한 건 브런치를 시작하고 몇 주가 지난 후였다. 처음엔 쓰고 싶을 때만 썼는데, 며칠 지나면 쓰고 싶은 마음이 사라지곤 했다. 그래서 '매일' '30분'이라는 구체적인 목표를 정했다.


시간은 잠자리에 들기 1시간 전, 샤워를 마치고 나서로 정했다. 내게 가장 고요하고 마음 편한 시간이기도 하고, 매일 하는 일 앞에 끼워두면 시작하기가 쉬워진다는 걸 10분 청소를 하면서 배웠으니까. 노트북을 열고 브런치를 켜면 반짝이는 커서가 나를 기다리고 있다. 그 커서를 딸깍 클릭하는 순간, 글쓰기가 시작된다.


어느 날은 제목도 쓰기 전에 문득 떠오른 문장을 필터 없이 써 내려가다 보면 어느새 1000자를 넘어가고 있는 걸 발견할 때도 있다. 비유하자면 오랜만에 대화가 잘 통하는 친구를 만나서 잔뜩 흥분해서 이야기하다 시계를 보면 서너 시간이 훌쩍 지나서 '야, 우리 시간이 부족하다'라고 말할 때의 그런 기분이다.


하지만 어느 날은 도무지 어떻게 운을 띄워야 할지 생각이 나지 않거나 꾸역꾸역 쓴 문장이 도통 와닿지 않아 전부 지워버릴 때도 있다. 그때는 글쓰기가 퍽퍽한 크래커를 물 없이 와작와작 씹어먹을 때의 그런 맛이다.


그래도 괜찮다. 30분 동안 세 줄밖에 못 썼어도, 쓴 걸 전부 지웠어도, 그 시간만큼은 나를 위한 시간이었으니까. 보이지 않는 것들을 글자로 담아내는 것, 내 생각을 유연하게 글로 풀어내는 건 약간의 훈련이 필요하다. 운동해서 근육을 키우듯, 글쓰기 근육도 키워야 한다는 말이 이런 뜻일 테다.




글쓰기가 가져온

작은 변화들



30분 글쓰기를 시작하고 한 달쯤 지났을 때, 느껴진 작은 변화들이 있다. 일상의 작은 순간들이 다르게 보이기 시작했다는 것. 화장실 곰팡이를 닦으면서도, 조카 선물을 고르면서도, '아, 이거 글감이 되겠는데' 하는 생각이 들었다. 또, 주체하기 힘든 감정이 올라올 때, '글쓰기'라는 안식처를 찾기 시작했다. 무기력했던 일상이 글감이 되고, 글이 되고, 누군가에게 작은 위로가 될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자 일상이 조금 더 의미 있게 느껴졌다.


글을 쓴다는 것은 나 혼자만의 일방적인 대화 같지만 꼭 그렇지만도 않다. 나만 보는 일기장에 일기를 쓸 때에도 나 자신에게 혹은 인격을 가진 일기장에게 말하는 기분이라, 속마음을 털어놓거나 다짐을 하거나 혹은 반성을 하게 되기도 하는 것처럼 말이다.


쓴다는 것 하나로 즐거움은 물론 자가 치료(?) 효과까지 누릴 수 있으니 이보다 더 좋은 게 있을까 싶다. 매일 30분, 나를 위한 글을 쓰는 시간. 지금까지 다른 그 어떤 것보다도 내게 가장 큰 위로가 되어주었다.


아주 유려한 글을 쓰지 못하면 어떻고, 독창적인 아이디어가 없으면 어떻고, 대단한 통찰이 없으면 어떤가. 무기력할 때, 매일 30분만 나를 위한 글을 써보는 것. 발행하지 않아도, 완성하지 않아도 괜찮다. 그 시간 자체가 나를 위로해 줄 테니까.






나의 작은 성취 리스트 9/22


[ 매일 하는 것들 ]

1. 기상 직후 이부자리 정리하기

2. 물 한 잔, 약 먹기, 다시 눕지 않기

☐ 3. 자기 전 5분 폼롤러 마사지


[ 하루에 한 개씩 ]

4. 화장실 줄눈 곰팡이 청소하기

5. 안 입는 옷 5개 버리기

☐ 6. 옷장 청소하고 제습제 교체하기

☐ 7. 살 빼면 입고 싶은 옷 걸어두기

☐ 8. 콩이 건강검진 하기

☐ 9. 콩이랑 5분간 사냥놀이하고 사진 찍기

☐ 10. 콩이 새 숨숨집 만들어주기

11. 조카들 크리스마스 선물 고르기

☐ 12. 몸 일으켜 헬스장 가기

☐ 13. 한강 따라 30분간 자전거 타기

14. 5분 멍 때리기

15. 1시간 예능 보며 깔깔거리기

☐ 16. 조조영화 1편 보기

☐ 17. 맛있는 커피집에서 커피 마시기

18. 장태산에서 단풍 사진 찍기

☐ 19. 사피엔스 한 챕터 읽기

20. 30분 집중해서 글쓰기


[ 도전 과제 ]

☐ 21. 8시 이후 금식 3일 연속 성공하기

☐ 22. 1시 반 이전 취침 3일 연속 성공하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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