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물 고르는 시간 자체가 선물

조카의 크리스마스 선물 고르기

by 하루





일상이 무기력의 늪에 빠지면서 기념일도 내겐 그저 매년 돌아오는 날일 뿐이었고, 조카들의 선물은커녕 가족들의 기념일 날짜도 그냥 흘려보내기 일쑤였다. 어쩌면 그 의미 자체를 잊은 채 굳이 챙겨야 할 의욕조차 없었는지도 모르겠다.


그래서 내게 성취감을 주는 리스트를 만들 때, '즐거움을 주는 일'을 넣어야 겠다는 기준이 있었다. 머릿속에 퍼뜩 떠오른 것 중 하나는 다가오는 연말 때문인지 '조카의 크리스마스 선물 고르기'였다. 하나씩 일상을 찾아가는 요즘인 만큼, 이번 크리스마스엔 '조카들의 선물을 고르는 기쁨'을 놓치지 않기로 했다.


이전 에피소드들이 나를 위한 성취였다면, 이번 목표는 타인에게 기쁨을 주는 행위를 통해 나도 행복해지는 것이었다.




내겐 너무

사랑스러운

두 조카들




내게는 아주 아주 사랑스러운 두 명의 조카가 있다. 아직 학교에 들어가지 않아 마냥 귀엽기만 할 때다.


첫째 조카가 아기였을 때 함께 지낸 적이 있다. 언니네 부부는 가족 외출을 하라고 하고, 나 혼자 조카를 돌본 날이 있었다. 침대에 누워서 나와 눈을 맞추며 옹알옹알하는 모습을 보고 있자니 이 세상에 나와 조카 둘만 있는 것처럼 행복했다. 녀석은 웃을 때마다 소리 없이 씨익씨익 웃곤 했다. 그 모습이 너무 귀여워서 나 혼자 신이 나서 깔깔깔깔 웃었더니, 그걸 보며 처음으로 소리 내어 따라 웃던 조카. 그 순간은 평생 잊을 수가 없을 것 같다.


언니네가 멀리 이사를 가면서 둘째 조카도 태어났지만, 전만큼 자주 보지는 못했다. 그래도 명절이나 크리스마스만 다가오면 조카들에게 뭘 선물해 줄까 고민하느라 꽤 오랜 시간을 보내곤 했다. 내 일상이 무기력의 늪에 빠지면서 조카들을 챙기는 것조차 잊고 있었지만, 이번엔 다시 그 기쁨을 되찾고 싶었다.




완벽주의 이모의

크리스마스 선물 작전




매번 크리스마스 선물 준비 과정은 꽤나 다이내믹했다. 자주 보는 것도 아닌데 '선물 한 개는 서운할까, 포장은 어떻게 할까, 녀석들이 잠든 밤에 트리 아래에 몰래 둘까...' 하며, 또다시 나의 완벽주의가 나를 피곤하게 했다.


인터넷을 뒤져 아이들이 입은 옷이나 신발 중 예쁜 것을 저장하기 시작했다. 노르딕 패턴의 빨간색, 하늘색 니트, 자그마한 꽃 패턴이 들어간 코듀로이 소재의 바지 등 내가 마음에 드는 것들을 가득 저장하고 장바구니에 담았다. 사주고 싶은 것은 한가득인데, 이모의 현재 재정 상황은 그다지 넉넉하지 못해 속상할 뿐이었다. 욕심만 점점 커져가다 이번에도 결국 언니에게 SOS를 청하기로 했다.


매번 조카들의 선물을 고를 때면 언니에게 먼저 물어보곤 한다. 여자 아이들은 한 살 한 살 커갈수록 얼마나 빠르게 크고 취향이 얼마나 확고해지는지 신기할 노릇이다.


"언니, 애들 요즘 뭐 좋아해?"

"흠, 글쎄? 요즘 첫째는 시큰둥해. 갖고 싶은 것도 없대. 둘째는 강아지 인형?"

"흠.......... 알겠어ㅠㅠ 고민해 봐야겠다"


사실 좀 더 취향이 흐릿할 무렵에는 내 취향대로 사줘도 좋아했는데, 제법 취향이 확고해진 첫째의 마음에 드는 선물을 찾기란 쉬운 일이 아니다. 마음에 안 드는 선물을 받아도 선물준 사람이 상처받을까 '마음에 든다'라고 말하는 녀석의 표정은 그렇지 않은 게 짠해서 더더욱 욕심이 나는 이모다.


그런데 며칠 뒤, 언니에게 다시 내 고민을 잠재울 반가운 전화가 걸려왔다.


"첫째는 그거 사주면 좋아할 거 같아! 요즘 쿠로미를 좋아해. 집안에서 신발 신고 돌아다니기를 그렇게 좋아하니까 쿠로미 실내화 같은 거? 둘째도 신발 신는 거 좋아해"

"쿠르미? 쿠로미? 쿠로미가 뭔데?"

"그 산리오 캐릭터 중에 하나야."

"아, 알았어, 찾아볼게!"




쿠로미를 몰랐던

이모의 분투기




열심히 쿠로미 실내화를 검색했다. 내가 모르는 쿠로미의 세계는 무궁무진했고, 내가 골랐던 노르딕 패턴의 니트와는 꽤나 큰 갭이 있었다. 물어보길 참 잘했다 싶었다. 디자인도 다양하고 사이즈도 제각각이었지만, 결국 첫째에게는 딱 맞는 사이즈의 쿠로미 덧신을, 둘째에게는 강아지 모양의 털실내화를 골랐다.


둘 다 고르고 나서 주문 버튼을 누르자 묵힌 체증이 내려가듯 아주 개운함이 밀려왔다. 아직 선물은 주지도 않았고, 조카를 보러 가기까지 약 2주가 남았는데, 미리 준비하고 나니 마음이 이렇게 편할 수가 없다. 남은 시간 동안은 조카가 신어보는 모습을 상상하며 카운트다운을 해야겠다. 이번엔 더 욕심내지 않고, 언니의 주문대로 선물은 '딱 한 개만' '비싸지 않은 걸로' 준비했다.




선물 고르는 시간

자체가 내겐 선물




어렸을 때 내게도 이모들과의 추억은 꽤나 특별했다. 이모들이 놀러 왔다가 돌아갈 때면 아쉬워서 울고불고 바짓가랑이를 잡고 늘어졌고, 이모들이 사준 텔레토비 인형을 정말 오랫동안 애지중지하느라 커서도 버리지 못했다. 어린 날의 추억이 얼마나 오래 진한 기억으로 남는지 아는 나로서, 가족과 함께하는 시간들이 조카들에게도 '따뜻한 느낌'으로 기억됐으면 하는 작은 바람이다.


꼬마들이 뭘 좋아할까 상상하며 선물을 고르는 동안은 몇 날 며칠 시간이 가는 줄 모르고 신이 났다. 결국 주문한 것은 만 원대의 선물 두 개인데, 마음은 이미 여러 개의 선물을 한 보따리 산 것 같은 기분이랄까. 선물을 받고 조카들이 좋아하는 모습을 보며 기쁨을 얻는 건 덤이고, 고르는 동안 나는 이미 다시 소중한 사람에게 선물하는 기쁨을 누렸다.


다시 일상을 찾고 무기력의 늪에서 벗어나는 또 하나의 방법이 내가 아니라 '타인'을 통해서도 가능하다는 걸 알게 된 기분이다. 예전엔 주변 지인들을 떠올리며 고르고 선물하는 걸 참 좋아했었는데, 아마 그 무렵의 나는 지금보다 스스로 즐거움을 얻는 방법을 잘 알고 있었던 모양이다.


무기력에서 벗어나는 방법은 거창하지 않아도 된다. 가족들에게, 소중한 누군가에게 작은 선물을 고르는 시간만으로도 충분하다. 그 시간 자체가 이미 나에게 주는 선물이 되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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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조카가 신은 귀여운 모습을 상상하며!





나의 작은 성취 리스트 7/22


[ 매일 하는 것들 ]

1. 기상 직후 이부자리 정리하기

2. 물 한 잔, 약 먹기, 다시 눕지 않기

☐ 3. 자기 전 5분 폼롤러 마사지


[ 하루에 한 개씩 ]

☐ 4. 화장실 줄눈 곰팡이 청소하기

5. 안 입는 옷 5개 버리기

☐ 6. 옷장 청소하고 제습제 교체하기

☐ 7. 살 빼면 입고 싶은 옷 걸어두기

☐ 8. 콩이 건강검진 하기

☐ 9. 콩이랑 5분간 사냥놀이하고 사진 찍기

☐ 10. 콩이 새 숨숨집 만들어주기

11. 조카들 크리스마스 선물 고르기

☐ 12. 몸 일으켜 헬스장 가기

☐ 13. 한강 따라 30분간 자전거 타기

14. 5분 멍 때리기

15. 1시간 예능 보며 깔깔거리기

☐ 16. 조조영화 1편 보기

☐ 17. 맛있는 커피집에서 커피 마시기

18. 장태산에서 단풍 사진 찍기

☐ 19. 사피엔스 한 챕터 읽기

☐ 20. 30분 집중해서 글쓰기


[ 도전 과제 ]

☐ 21. 8시 이후 금식 3일 연속 성공하기

☐ 22. 1시 반 이전 취침 3일 연속 성공하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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