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분 청소, 도움닫기의 시간

화장실 타일 곰팡이 10분 청소하기

by 하루




화장실 타일 줄눈의 검은곰팡이를 보면서도 못 본 척한 지 벌써 몇 달째다.


씻다가 눈에 띄면 '다음에 약품 사서 청소해야지' 하고 고개를 돌렸다. 다음에, 시간 날 때, 주말에, 락스는 냄새나니까, 제일 효과 좋은 약품을 알아본 후에... 핑계는 끝이 없었다. 보고도 못 본 척하는 일이 반복되다 보니, 어느새 화장실뿐 아니라 내 일상 곳곳에 '미뤄둔 것들'이 쌓여갔고, 타일에 생긴 곰팡이가 꼭 '나, 미뤄둔 일'이라고 외치고 있는 것 같았다.


처음 작성했던 성취 리스트가 1년을 쏟아부어도 부족한 버킷리스트였다가, 나에 맞춘 '실패 불가능한 성취 리스트'로 다시 적으면서 하나의 일을 아주 작게 쪼개기로 했다. 거창한 준비를 하기 전에 사소한 거라도 일단 시작하게 하기 위해서였다. 그래서 이번 성취 리스트의 목표는 '화장실 타일 곰팡이 10분 청소하기'였다.




하기 싫은 일일수록

작게 쪼개기




이번 타겟은 화장실 타일 벽면의 곰팡이다. 화장실은 아무래도 늘 습기가 있고, 밝은 타일로 해두었더니 중간중간 흰색 타일 줄눈과 실리콘 부위에 생긴 거뭇한 곰팡이가 늘 신경 쓰였다. 씻다가 칫솔로 슥슥 문질러 봤지만 지워질 리 없었다. 그러다 보니 '언제 약품을 써서 청소해야지' 하면서 미루기가 시작되었다. 보여도 안 보이는 척, '다음에', '다음에'가 반복되었다.


'실패 불가능한 성취 리스트'를 적을 때 시간이 꽤 걸렸는데, 이유가 여기에 있다. 꼭 하고 싶었던 것을 생각한 후에 작고 구체적으로 쪼개는 작업이 필요했기 때문이다. 그래서 '조카들에게 크리스마스 선물하기'도 '조카들의 크리스마스 선물 고르기'가 되었다. 화장실 곰팡이 청소하기의 첫 단계는 사실 세정제 고르기였지만, 조금 더 나아간 '화장실 타일 곰팡이 10분 청소하기'가 되었다.


생각났을 때 바로 세정제 주문하기 버튼을 눌렀다. 사실 락스로 청소하면 되지만 그 냄새가 싫어서 미루게 된 것도 있어서, 세정제를 따로 구매한 건 잘한 일인 것 같다. 앞으로도 두고두고 쓰면 되니까.




10분은

생각보다 짧다




세정제가 도착한 날 저녁, 샤워 전에 청소를 시도했다. 매일 하는 일 앞에 '해야 할 일'을 끼워두면 시작하기가 쉬워진다. 고무장갑을 손에 끼고 약품을 스펀지에 묻혀 타일에 발랐다. 그리고 3-5분 정도를 기다렸다. 기다리는 동안 '이거 정말 지워질까?' 하는 의구심이 들었다. 몇 달을 방치한 곰팡이인데.


안 쓰는 칫솔로 슥슥 문질렀다. 약품이 액상이라 흘러내려서인지, 생긴 지 오래되어서인지, 생각보다 한 번에 마법처럼 닦이지는 않았다. 약간 실망했지만, 칫솔로 열심히 문지르니 제법 하얘지기 시작했다. 오, 된다! 내 미뤄둔 일들 중 하나가 깨끗이 지워지고 있었다. 다음엔 더 잘 닦이는 솔로 닦아봐야지 하며 욕심이 생겼다.


첫날은 목표했던 한 섹션만 청소를 마쳤다. 쪼개서 하니 너무 힘들기 전에 끝이 났고, 10분이 생각보다 짧게 느껴졌다. 씻기 전 언제든 하면 되겠다 싶었다. 약품 냄새도 오래가지 않아서 만족스러웠다.


곰팡이 청소는 오늘로 네 번 정도 했다. 아직도 눈에 보이는 부분들이 남았지만 제법 개운하다. 씻을 때마다 깨끗해진 타일을 보면 기분이 좋았다. '내가 했네. 나도 하면 되네.' 다음엔 내 책상 정리를 해볼까 싶다.




청소가 되찾아준 것




청소를 하고 주변을 깨끗하게 유지하는 것의 효과는 내 생각보다 컸다. 일, 사업, 진로 등등 이 세상에 많은 일들 중 내 마음대로 컨트롤할 수 있는 일은 생각보다 많지 않다. 그런데 내 방, 내 주변 정도는 조금만 노력하면 내가 통제할 수 있는 영역인 셈이다. 그리고 내 주변을 통제하는 데 성공하다 보면 다른 것도 할 수 있을 것 같은 생각이 들기도 했다.


그렇다면 주변을 어지럽게 두는 건 '난 어떤 것도 통제할 수 없다'는 생각을 나에게 심어주고 있던 행동이 아니었을까?


예전엔 청소 따윈 별로 안 중요하다며 그저 몰아서 해치우기 급급했다. 왜 엄마는 중요하지도 않은 걸 가지고 성인인 딸에게 잔소리를 할까, 도저히 이해할 수 없다며 날을 세우곤 했다. 정작 뭐가 중요한지 몰랐던 건 나였던 건데. 5분 정도 짬을 내어 정리하는 습관이 더 잘 뛰기 위한 도움닫기 역할을 해준다는 걸 엄마는 이미 알고 있었던 거다. 가만 생각해 보면 회사에서도 일을 잘하는 사람의 책상은 늘 잘 정리되어 있다.


이게 청소의 힘인가 보다. 주변 청소 하나가 내가 상황을 통제할 수 있다는 효능감으로 이어진다는 것. 미뤄둔 곰팡이를 닦으며, 무기력 속에서 작은 통제감을 되찾은 기분이다. 10분만 짬을 내서 미뤄둔 청소 한 가지를 해보는 것. 그것만으로도 '나도 할 수 있다'는 작은 확신이 돌아온다.



볼 때마다 개운한, 나름 깨끗해진 벽면!






나의 작은 성취 리스트 8/22


[ 매일 하는 것들 ]

1. 기상 직후 이부자리 정리하기

2. 물 한 잔, 약 먹기, 다시 눕지 않기

☐ 3. 자기 전 5분 폼롤러 마사지


[ 하루에 한 개씩 ]

4. 화장실 줄눈 곰팡이 청소하기

5. 안 입는 옷 5개 버리기

☐ 6. 옷장 청소하고 제습제 교체하기

☐ 7. 살 빼면 입고 싶은 옷 걸어두기

☐ 8. 콩이 건강검진 하기

☐ 9. 콩이랑 5분간 사냥놀이하고 사진 찍기

☐ 10. 콩이 새 숨숨집 만들어주기

11. 조카들 크리스마스 선물 고르기

☐ 12. 몸 일으켜 헬스장 가기

☐ 13. 한강 따라 30분간 자전거 타기

14. 5분 멍 때리기

15. 1시간 예능 보며 깔깔거리기

☐ 16. 조조영화 1편 보기

☐ 17. 맛있는 커피집에서 커피 마시기

18. 장태산에서 단풍 사진 찍기

☐ 19. 사피엔스 한 챕터 읽기

☐ 20. 30분 집중해서 글쓰기


[ 도전 과제 ]

☐ 21. 8시 이후 금식 3일 연속 성공하기

☐ 22. 1시 반 이전 취침 3일 연속 성공하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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