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시간 동안 예능 보며 깔깔 웃기
이불 밖으로 나서기 위해, 조금씩 옷장을 비우고, 대전까지 가서 계절의 변화를 누리는 쉼의 시간을 가져보며 하나씩 나의 작은 성취 리스트를 지워나가는 중이다. 첫술에 배부를 리 없듯, 머릿속의 복잡한 생각과 감정적 피로는 여전히 남아 잠깐의 명상으로 쉽게 사라지진 않았다. 그래서 이번 목표는 뇌에게 가장 쉽고 빠른 휴가를 주는 것이었다.
언제부터인지 이상한 습관이 하나 생겼는데, 한 가지에 집중하지 못하고 동시에 여러 가지를 하려고 한다는 거다. 예를 들어 티비를 틀어놓고 노트북을 켠 채 글을 쓰거나 일을 하곤 한다. 그러면 어느 한 가지에도 온전히 집중하지 못하고 신경이 왔다 갔다 해서 시간이 배로 걸리곤 한다. 그럼에도 습관적으로 티비를 트는 이유를 가만히 생각해 보니, 고민할 것도 없이 딱 한 가지 '불안' 때문이었다. 쉬고는 싶고 해야 할 일은 많은 내 뇌가 선택한 중립적 행동이었을 테다.
이 불안을 씻어내고 온전히 휴식을 취하고 집중을 되찾기 위해, '1시간 동안 예능 보며 깔깔 웃기'를 목표로 삼았다.
재미있는 걸 보고 싶고 쉬고 싶은 마음이 들 때, 나는 가만히 앉아서 보는 대신 뭔가를 하는 척 손으로는 열심히 마우스를 움직였다. 눈은 티비로 힐끔힐끔, 귀의 신경도 티비 소리를 향해 있었다. 문제는 그럴 때마다 배경으로 틀어두는 프로그램이 집중이 필요하지 않을 만큼 자극적이어야 했다는 것이다. 그래서 점점 더 자극적인 소재를 다루는 프로그램만 찾게 되었다.
그런 프로그램은 내게 현실과의 괴리에서 오는 흥미와 경악으로 도파민을 선사해 주었지만, 즐거움과 휴식, 그리고 깔깔거리는 웃음을 주지는 못했다.
정말 아무 생각 없이 웃으면서 본 프로그램이 뭐였나 떠올려봤다. 점점 더 화려해지고 자극적인 수위의 예능을 보며 스트레스가 풀린다고 느끼지 못한 이유는 뭘까. 아마도 너무 완벽한 일상에서 오는 상대적 박탈감과, 이슈를 만들기 위해 짜인 듯한 인위성에 오는 현실과의 괴리 때문이었던 것 같다. 그중 끝나서 아쉽다 싶을 정도로 순수하게 즐거워하며 본 예능이 있다면, 나의 경우엔 '태어난 김에 세계일주'였다.
평소와 달리 할 일을 먼저 마치고, 이번에는 정말 온전히 예능만 보기로 했다. 노트북은 덮고, 예능을 틀고 화면만 바라봤다.
처음 10분은 불안했다. 뭔가 손이 심심했고, 핸드폰을 집고 싶은 충동이 몇 번씩 일었다. 그런데 20분쯤 지나자 화면 속 상황에 빠져들기 시작했다. 기껏 빨래를 해놓고는 사람들이 다니는 숙소 복도 바닥에 빨래를 너는 황당한 장면에 풉! 하고 웃음이 터졌다. 그리고는 비를 맞았다고 다시 빨래를 하는데, 복도의 먼지보다도 '비로 인한 냄새'가 그의 확고한 빨래의 기준이라는 사실에 정말 저 단전으로부터 웃음이 터져 나왔다. 그다음부터는 나는 자연스럽게 깔깔거리고 있었다.
뭔가를 하면서 티비를 볼 때와 온전히 예능만 집중해서 볼 때의 차이점은 분명했다. 할 일을 마친 후에 예능을 봤을 때는 맘껏 웃으면서 보고 '재밌다!'라고 느꼈다는 거다. 말 그대로 온전히 예능을 보고 깔깔거리고 웃은 시간이 배경 소음이 아닌 진짜 휴식이 된 셈이다.
1시간 동안 깔깔 웃는 시간은 마치 강제 리셋 버튼을 누른 것 같았다. 크게 소리 내 웃었고, 배가 아플 정도로 웃었다. 그리고 놀라운 점은, 그 1시간 동안 내 걱정이나 불안에 대한 생각은 단 1도 끼어들 틈이 없었다는 거다.
평소에는 멍 때리는 5분 동안에도 '해야 할 일'들이 비집고 들어오기도 했는데, 박장대소하는 행위가 뇌의 다른 부분을 완전히 장악해 버렸는지 복잡한 생각들을 강제로 차단시켰다. 웃음이 멈췄을 때 찾아온 것은 느슨해진 긴장감 그리고 개운함이었다. 그렇게 예능 한 시간을 보며 깔깔거린 시간은 내게 온전한 보상이 되었고 기분이 좋아지는 건 덤이었다.
학창 시절에도 대나무같은 성품 때문에 늘 생각이 많던 내게 어느 날 아빠가 해준 말이 있다.
"딸, 웃어봐~"
"응? 근데 아빠, 웃을 일이 없는데?"
"음, 웃을 일이 있어서 웃는 게 아니라, 웃으면 기분 좋은 일이 생긴다?"
"크크, 알았어~!"
뚱한 표정으로 학교로 들어서는 사춘기의 내게 건넨 말이 내겐 인생의 모토와도 같은 삶의 메시지였다. 그런데 어느 순간부터 웃는 걸 단순히 무조건 반사 같은 반응 정도로만 여겼지, 나를 위한 능동적인 행위라는 생각을 잊고 지내왔던 모양이다. 하지만 이번 1시간은 다시 아빠가 내게 남긴 메시지를 떠올리게 한 건 물론이고, '웃음'이야말로 가장 빠르고 확실하게 뇌의 무기력을 해제하는 성취임을 깨닫게 해 줬다.
힘들 때 억지로라도 몸을 움직여야 하듯, 웃을 일이 특별히 없어도 웃어야 하는 이유를 다시 한번 떠올려봤다. 스트레스가 쌓일 때면 불안감과 생각들을 일단 내려놓고, 나만의 웃음 치트키를 찾아볼까 보다! 그럼 '강제 리셋' 버튼처럼, 내 기분을 리셋할 수 있지 않을까?
나의 작은 성취 리스트 6/22
[ 매일 하는 것들 ]
☑ 1. 기상 직후 이부자리 정리하기
☑ 2. 물 한 잔, 약 먹기, 다시 눕지 않기
☐ 3. 자기 전 5분 폼롤러 마사지
[ 하루에 한 개씩 ]
☐ 4. 화장실 줄눈 곰팡이 청소하기
☑ 5. 안 입는 옷 5개 버리기
☐ 6. 옷장 청소하고 제습제 교체하기
☐ 7. 살 빼면 입고 싶은 옷 걸어두기
☐ 8. 콩이 건강검진 하기
☐ 9. 콩이랑 5분간 사냥놀이하고 사진 찍기
☐ 10. 콩이 새 숨숨집 만들어주기
☐ 11. 조카들 크리스마스 선물 고르기
☐ 12. 몸 일으켜 헬스장 가기
☐ 13. 한강 따라 30분간 자전거 타기
☑ 14. 5분 멍 때리기
☑ 15. 1시간 예능 보며 깔깔거리기
☐ 16. 조조영화 1편 보기
☐ 17. 맛있는 커피집에서 커피 마시기
☑ 18. 장태산에서 단풍 사진 찍기
☐ 19. 사피엔스 한 챕터 읽기
☐ 20. 30분 집중해서 글쓰기
[ 도전 과제 ]
☐ 21. 8시 이후 금식 3일 연속 성공하기
☐ 22. 1시 반 이전 취침 3일 연속 성공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