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소가 아니어도 괜찮다

장태산 가서 단풍 사진 찍고 오기

by 하루




아무것도 안 하고 하루 이틀을 보내다 보면 시간이 정말 무색하게 흘러감을 느낀다. 창밖에 해가 나던, 비가 오던, 꽃가루가 날리던 내 알 바가 아닌 거다. 어차피 나는 이불속에 누워있으면 되니까. 무기력은 나를 계절로부터 고립시켰다.


그래서 작은 성취 리스트를 적을 때, 밖으로 나를 꺼내어 다시 계절의 변화를 만끽하도록 하는 것을 넣기로 했다. 마지막으로 미룰지언정 다시 계절의 변화를 알아차리는 기쁨을 되찾고 싶었다.


그래서 작성한 목표가 '장태산 가서 단풍 사진 찍고 오기'다.




무의지(無意志)의 여행




가을이 한창이던 11월, 아직 마음의 준비는 되지 않았지만 아무 준비 없이 그저 떠나보기로 했다. 3시간을 달려 도착한 장태산엔 칼바람이 불었다. 여행 전에는 늘 사전 준비부터 여행하는 기분을 만끽하던 나였는데, 이번엔 잠에 취해, 오늘 길 내내 차에서 숙면을 취하다가 깬 탓인지 한층 더 으슬으슬하게 느껴졌다. 겉옷도 얇아 차에 있던 옷을 전부 주워 입고 약간 부끄러운 차림새로 걷기 시작했다. 주차장에서부터 마주한 풍경은 사진에서 보던 붉게 물든 메타세콰이어 나무 행렬이었다.


'오, 주차장부터 멋지구나.'


어디로 가야 유명한 포토 스폿인지 찾아볼 여유나 의지가 조금 부족했던 이번 여행길. 그냥 발길 닿는 대로 걸어보다 지도가 나오면 여기다 싶은 곳으로 향했다. 입구에 들어서자 숲 속 어드벤처와 출렁다리가 보였는데, 차가운 메탈 금속이 괜히 더 춥게 느껴져 출렁다리를 건너보기로 했다. 다리를 건넌 후, 우리는 높은 곳으로 올라보기로 하고 지도에서 유일하게 보이는 높은 스폿 '형제바위'로 향했다. 분명 포토 스폿에 오르는 길은 그리 힘들지 않다고 들었는데, 우리가 선택한 길은 초입부터 심상치 않았다.


'뭔가가 잘못됐다. 오늘은 등산할 기분도 에너지도 아닌데.'


고민하던 중 사진 전문가의 기운을 풍기며 내려오던 분을 만나 물었다. 그분은 저 멀리 고개 들어 보이는 곳이 형제바위이며 가는 길이 조금 힘들다고 했다. 참고로 SNS에 많이 보이는 포토 스폿은 그 반대편 봉우리인데, 오르는 데는 10분 정도밖에 안 걸린단다.


'이런, 뭔가 이상하다 싶었지.'



우리가 선택한 형제바위로 오르는 길




뜻밖의 등산,

작은 기쁨의 발견




잠시 고민을 하다 우리는 그냥 우리의 길을 가기로 했다. 본능적으로 인파가 붐비는 곳은 피하는 우리이기도 했지만, 오늘은 인증샷을 찍는 게 목표도 아니었다. 그저 '단풍 사진 찍기'면 되었고, 이미 출렁다리 위에서 내려다본 메타세콰이어 행렬과 아래 연못에서 예쁜 단풍 사진을 찍은 뒤였다. 나의 목표는 이미 클리어!


그럼에도 불구하고 눈앞에 고지가 보이니 올라가 보자는 짝꿍을 따라 올라보기로 했다. 가는 길엔 딱 세 팀 만났을 정도로 인파가 없어 힘들면 계단에 앉아 쉬면서 쉬엄쉬엄 올랐다. 오르는 길에 숨이 차오를 때쯤 마시는 생수는 어찌나 맛있는지, 역시 등산 중에 마시는 물은 꿀맛 오브 꿀맛이다.


30분 정도를 올라 마주한 형제바위. 오르는 내내 발밑에 쌓인 낙엽이 바스락거렸다. 땀이 나면서도 코끝은 차가웠고, 그제야 가을 공기가 폐 깊숙이 들어오는 게 느껴졌다. 형제바위는 등산 인증샷으로 자주 보이는 구도에, 햇빛도 역광이라 사진을 건지기는 글렀다 싶었지만, 한 발 더 뒤로 물러가서 보니 나만의 구도를 발견했다. 소나무 사이로 보이는 형제바위의 풍경은 동양화 같기도 한 것이, 멋이 넘쳐흘렀다. 오르는 길에 만난 친절한 포토 분과, 의외의 구도 발견에 기분이 좋아졌다.




KakaoTalk_20251203_022656105_06.jpg
KakaoTalk_20251203_022656105_03.jpg
KakaoTalk_20251203_022656105_11.jpg
주차장 베스트샷 & 나만의 포토스팟 형제바위 & 출렁다리에서 바라본 메타세콰이어 나무




명소가 아닌

일상에서 만나는

계절의 변화




천천히 내려와 주차장으로 향했다. 차에 타서 몸이 녹자 허기가 찾아왔고, 밥집을 찾으며 이런 생각이 들었다.

멀리 명소를 꼭 가야 제철 행복을 만끽하는 걸까? 멀리까지 달려가 인파 속에서 느낀 건 '나만의 행복'은 꼭 어딘가에 있지 않다는 거였다. 나의 행복은 아주 가까이에서 자주 나를 찾아오곤 했다.



계절의 변화를 가장 살갗으로 느끼며 내 감정이 살아났던 순간들을 떠올려보면, 하루와 동네 공원을 산책하다 우연히 떨어지는 벚꽃비를 마주했을 때였다. 그날따라 봄바람이 따뜻해서, 우리는 한참을 서로 마주보며 눈빛으로 이야기를 나눴다. 그리고 공원에 떨어진 낙엽을 보며 스산함을 느끼다가, 하루의 미소로 순식간에 주변이 따뜻해졌을 때 우리가 좋아하는 가을이구나 싶었다.



계절의 변화를 가장 살갗으로 느끼며 내 감정이 살아났게 한 것들은, 큰 맘먹고 다녀온 명소가 아니라 어느 날 집 밖으로 나갔을 때 느껴진 공기의 변화이고, 길 위의 인연인 우리 순둥이, 천둥이, 흰둥이(지금은 전부 집냥이가 된, 내가 붙여준 우리 동네 길냥이 이름이다)랑 놀다가 문득 주차장의 단풍나무가 붉게 물든 걸 보았을 때다. 계절의 변화는 꼭 명소가 아니더라도 내 집 앞마당, 자주 가는 공원 어디든 '내 마음의 여유'가 있는 곳 어디서나 느낄 수 있는 것임을 대전까지 가서 등산을 한 후에야 알았다.


대단한 버킷리스트가 아니라 나를 꺼내기 위한 작은 성취 리스트를 작성 중이라면, 계절의 변화는 명소가 아니라 가까운 곳에서 느껴보기로 하는 것도 좋은 방법이다.



내가 있는 곳에서

찾아온 변화에 눈길을 돌려보는 여유.

그것이 바로 작은 행복으로

스스로를 채우는 법이 아닐까.






나의 작은 성취 리스트 5/22


[ 매일 하는 것들 ]

1. 기상 직후 이부자리 정리하기

2. 물 한 잔, 약 먹기, 다시 눕지 않기

☐ 3. 자기 전 5분 폼롤러 마사지


[ 하루에 한 개씩 ]

☐ 4. 화장실 줄눈 곰팡이 청소하기

5. 안 입는 옷 5개 버리기

☐ 6. 옷장 청소하고 제습제 교체하기

☐ 7. 살 빼면 입고 싶은 옷 걸어두기

☐ 8. 콩이 건강검진 하기

☐ 9. 콩이랑 5분간 사냥놀이하고 사진 찍기

☐ 10. 콩이 새 숨숨집 만들어주기

☐ 11. 조카들 크리스마스 선물 고르기

☐ 12. 몸 일으켜 헬스장 가기

☐ 13. 한강 따라 30분간 자전거 타기

14. 5분 멍 때리기

☐ 15. 1시간 예능 보며 깔깔거리기

☐ 16. 조조영화 1편 보기

☐ 17. 맛있는 커피집에서 커피 마시기

18. 장태산에서 단풍 사진 찍기

☐ 19. 사피엔스 한 챕터 읽기

☐ 20. 30분 집중해서 글쓰기


[ 도전 과제 ]

☐ 21. 8시 이후 금식 3일 연속 성공하기

☐ 22. 1시 반 이전 취침 3일 연속 성공하기




keywor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