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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고래 Jan 20. 2022

우리, 커피 한잔 할래요?

권영민, 커피 한잔

자, 여기 입사한 지 얼마 되지 않은 신입이 있다고 생각하자.


“시연 씨. 내가 커피 살게. 뭐 마실래?”


사수에게 이런 질문을 받았을 때, 모범 답안은 무엇일까. 정답은 바로 ‘아메리카노’이다. 아메리카노는 가장 적당한 가격대의 무난한 음료이기에 많은 사람들이 고르는 음료이다. 하지만 필자는 모범 답안을 내놓을 수 없는 사람이다. 커피를 잘 마시지 못해서 언제나 아메리카노와 비슷한 가격대의 음료를 주문하곤 한다. 그럼 또 돌아오는 질문 하나.


“시연 씨 커피 못 마셔? 아기 입맛이네~”


그렇다. 닭발에 해장국을 좋아하는 나는 커피 하나 마시지 못한다고 단번에 아기 입맛이 된다. 커피를 좋아하지 않는 사람의 고충은 또 하나 있다. 카페인 탓에 잠이 오는 걸 막아준다는 말에 시험 기간이 되어 쓴 맛을 참고 아메리카노를 들이켜 봐도 밤만 되면 잠이 쏟아지는 게 그것이다. 이쯤 되면 나 역시 궁금하다. 도대체 이렇게 쓴 음료를 뭐가 좋다고 마시는 건데?


커피를 정말 좋아하는 필자의 친구는 카페마다 원두의 맛이 달라 커피 마시는 재미가 있다고 한다. 나로서는 공감하기 어려운 말이다. 카페에서 아메리카노를 시키는 일이 드물기 때문이다. 그 친구는 내가 맛있다고 한 커피를 마셔보고는 이렇게 밍밍한 커피가 뭐가 맛있냐고 되묻기도 했다. 그때 난 느꼈다. 하, 커피랑 나는 안 맞아도 무진장 안 맞는구나.


사실 카페인이 안 받아서 커피를 안 마시는 건 아니다. 나는 커피의 쓴 맛과 신 맛이 싫다. 신 맛이 나지 않는다는 커피를 마셔봤더니 떫은맛이 났다. 향만 느낄 수 있을 정도로 아주 연하게 탄 커피 정도만 즐길 수 있다.


그런 나도 커피를 좋아할 때가 있다. 정확히 말하면 커피의 향과 분위기를 좋아하는 거지만, 나도 모르게 커피를 주문하고 싶어질 때가 있다. 커피만이 가지는 분위기가 있다. 나는 카페에서 열심히 공부하는 이미지를 갖고 싶을 때, 외국의 인기 카페에 방문했을 때 꼭 커피를 시키고 싶어진다.


권영민 작가의 에세이 [커피 한잔] 역시 그렇다. 이 에세이는 권영민 작가의 커피 사랑을 한눈에 볼 수 있는 에세이다. 그는 커피가 우리나라에 들어오기 시작했을 때부터 거리에 카페가 넘쳐나게 된 지금에 이르기까지 커피가 우리와 함께해 온 이야기를 풀어내고 있다. 한국뿐 아니라 다른 나라에 있는 카페에서 맛본 커피의 추억을 이야기하기도 하고, 문학 작품에 등장하는 카페에서 커피를 마시며 느낀 감상을 이야기해주기도 한다.


이 책을 읽으며 작가가 방문했다는 카페에 들러 커피 한잔 시키고 싶은 마음이 들었으니, [커피 한잔]의 향은 진한 커파와 같은 향이었던 것 같다.  


  

쌉쌀하면서도 달콤한


권영민 작가의 이야기를 듣다 보면, 커피를 정말 좋아하다 못해 사랑한다는 걸 어렵지 않게 느낄 수 있다. 그는 카페에 가기 위해 커피를 마시는 것이 아니다. 커피를 마시기 위해 카페에 가는 거다. 이 미묘한 차이를 현대인이라면 모두 느낄 것이다. 적어도 나는 그렇다. 나에겐 카페에 있을 시간을 사기 위해 음료를 마신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식사 후 친구와 조금 더 이야기를 나눌 공간이 필요해서 카페에 가거나, 과제나 공부를 하기 위한 공간이 필요해서 카페에 가거나, 영화 보기 전 시간을 보내기 위해 카페에 가거나, 인테리어나 디저트가 예쁘다고 소문난 카페에 가거나. 의외로 음료를 먹기 위해 카페를 찾는 경우는 거의 없었던 것 같다.


그런데 권영민 작가는 그게 아닌 것 같았다. 카페마다 커피의 특성을 파악하고 있고, 어떤 커피가 맛있는지 꿰고 있다. 그 역시 카페가 제공하는 시간과 공간을 사용하겠지만, 목적은 그게 아니라 커피 그 자체였던 것이다. 문득 난 그런 적이 있었나 싶었다. 카페마다 사용하는 원두부터 로스팅하는 방법까지 전부 다를 텐데, 커피라는 본질엔 한 번도 집중해본 적이 없었다.


그리고 그는 커피의 값에 대해서도 이야기한다. 비싼 커피의 값에는 다 이유가 있다고 하면서, 커피 한잔이 주는 행복에 대한 값으로 적당하다고 했다. 아직 커피를 즐기진 못하기에 마음 깊이 공감할 수는 없는 말이지만, 어렴풋이 커피 한잔에 담긴 바리스타의 애정과 정성은 짐작할 수 있었다. 저렴한 가격과 빠른 완성 속도로 한국의 새로운 패스트푸드로 등극한 아메리카노에 익숙해진 현대인들에게 꼭 들려주고 싶은 이야기였다.


권영민 작가가 좋아한다는 하와이 커피를 맛보고 싶고, 로마의 명소라는 카페 그레타에 가보고 싶어지면서 내 기억 속에도 커피와 관련된 추억이 생각보다 많다는 걸 떠올렸다.


그러니까 언제였더라. 아주 추웠던 1월 떠났던 베트남에서였다. 1월의 베트남은 더웠고, 거리를 걷다가 잠시 쉴 카페를 찾게 됐다. 베트남은 커피가 아주 유명한 국가 중 하나이다. 코코넛 커피와 함께 에그 커피가 유명하다. 커피에 계란을 넣는다는 게 생소한데도 뭐에 꽂혔는지 그게 그렇게 먹어보고 싶더랬다. 그래서 에그 커피를 판다는 카페를 찾아갔다.


세상에나. 목욕탕에서나 볼 법했던 의자들만 있는 카페였다. 심지어 실내에는 앉을 자리도 마땅치 않았다. 오토바이의 무법지나 다름없던 인도 한쪽에 작은 좌식 의자를 두고 앉아서야 난 에그 커피가 담긴 잔을 들었다. 문득 웃음이 났다. 이게 뭐라고 지금 이러고 있는지. 반쯤 체념한 채로 에그 커피 한 모금을 마셨다.


아직도 그 맛이 어렴풋이 기억난다. 은은한 커피 향이 고소한 계란 크림이 만들어내던 조화에 의자의 불편함 따위는 금세 잊어버렸다. 그리고 내게 남은 건 부드러운 바람과 커피의 향이었다. [커피 한잔] 덕분에 소중한 추억 한 자락을 다시 꺼내 불 수 있었다.   



구수하면서도 깔끔한 



[커피 한잔]은 구수하면서도 깔끔한 고즈넉한 카페, 아니 다방 같은 느낌을 준다. 원두의 원산지가 어떻고, 로스팅 방법이 어떻고, 산미가 어떻고 하는 어려운 말들이 가득한 커피 이야기였으면 난 필히 끝까지 읽지 못했을 게 분명하다. 그런 어렵고 전문적인 이야기보다, 재밌고 쉽게 읽히는 일화들을 배치한 구성은 설령 커피를 좋아하지 않는 사람들에게도 쉽게 커피에 대한 즐거운 인식을 심어준다. 우리가 자주 가는 카페 어느 곳에나 커피 향이 배어있기에 우리는 커피를 마시지 않아도 커피에 대한 기억을 만들어낼 수 있다. 커피의 향이 함께 한다면 그 어떤 것도 커피의 기억이 된다.


커피 향이 나는 카페에서 읽었던 책 한 권, 연하게 탄 아메리카노와 함께 밤새웠던 시험 기간, 고마운 사람에게 슬쩍 보냈던 커피 기프티콘, 동생이 직접 내려줬던 커피 한잔.


이렇게 내 일상 곳곳에 물들어 있는 커피 한잔을 권영민의 [커피 한잔]과 함께 찾아보자.







https://www.artinsight.co.kr/news/view.php?no=5789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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