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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마이브랜드유 Apr 14. 2024

집안 물건들의 비밀스러운 회동

이제 막 방 한쪽 구석에서 무언가가 속삭인다. “기억나? “ 지난번에 나를 꼭 필요하다며 집어 들었잖아. “ 그런데, 정말 필요했던 걸까? 방 안 가득한 물건들이 저마다의 이야기를 하고 있다. 어떻게 그 많은 물건들이 내 쇼핑 카트를 통과했는지, 심지어 그때 내가 정신이 있었는지도 의심스럽다.


냉장고 위에 놓은 믹서기는 몇 년째 먼지만 쌓여가고, 서랍 속에 숨겨진 그 무수한 USB 케이블들은 아직 어떤 것에도 맞지 않는다. 이 모든 것이 내가 한때는 이 모든 것이 필요하다고 믿었다는 증거일까? 아니면 그저 순간의 충동구매가 낳은 결과일까? 집 안 곳곳에 숨겨진 이 물건들이 밤이면 살아 움직이며 나의 얼굴을 보고 비웃는다.


그렇다. 나는 고백한다. 할인 표시만 보면 제정신을 잃는다. ”세일 중“이라는 말에 자석에 이끌리듯 끌려간다. 그러고 나서 집에 돌아와서야 깨닫는다. 왜 이런 것까지 샀을까 싶은 그 후회의 순간. 그런데 이 모든 게 나만의 문제는 아니라는 것을 알아차리면, 조금은 위안이 된다. 정말 정말 정말 나만 그런 것이 아니니까. 절대 아닐 것이다.


그래, 가끔은 그 불필요하게 산 물건들이 나를 둘러싸고 있는 이 집을 더욱 ’ 내 것‘으로 만들어 준다고 생각해 보자. 어쩌면 이 모든 쓸데없어 보이는 물건들이 내 삶에 자그마한 즐거움을 더해주는지도 모른다. 믹서기가 언젠간 쓰일 날을 기다리며, 서랍 속 USB 케이블이 마침내 그의 짝을 만나길 바라며, 나는 오늘도 불필요한 물건 앞에 잠시 멈춘다. 그리고 속삭인다. ”네가 여기 있어서 참 다행이야 “


이렇게 우리의 집안은 쓸모없어 보이는 물건들로 가득하지만, 그것들 각각이 우리의 인생과 추억의 일부가 되어준다. 그러니, 이제 그만 자책하고, 우리 모두가 가끔은 실수를 한다고 웃으며 받아들이자. 아마도, 그 실수들이 모여 우리의 삶을 더 풍요롭게 만드는 것일 테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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