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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Be in Mar 14. 2021

아빠의 봉투

 “내 이쁜 양념딸 생일을 진심으로 축하한다."

  -사랑하는 아빠가 -


 실로 오랜만에 만나는 아빠의 반가운 메모다. 사랑 많은 아빠는 2남 1녀의 외딸인 나를 무척 아끼셨다.

 내가 중학생이 되고부터 취업 전까지 10년 동안 아빠는 매달 양념딸에게 주는 용돈 봉투에 짧은 메모를 써주셨다.

 “학생의 본분을 잊지 말아라."

 "항시 최선을 다하라”

 다소 고리타분한 내용에 심드렁하긴 했지만 항상 ‘내 이쁜 양념딸로 시작하여 사랑하는 아빠가’로 끝맺음을 했던 아빠의 메모는 한 달에 한 번씩 나를 뭉클하게 했고 사춘기 딸의 뾰족한 마음을 어루만져 주었다.


 고3 중간고사 시험기간 때였다. 부모님께 3일 동안 학교 근처 독서실에서 밤샘을 하겠다고 선포를 했다. 처음으로 외박을 한 딸이 너무나 걱정이 되셨던 아빠는 다음날 학교에 몰래 찾아오셨다. 야간 자율학습을 하고 있던 나는 갑자기 뒤통수가 너무 뜨거운 느낌이 들어 교실 뒷문을 돌아보니 유리창에 아빠의 얼굴이 보였다.  아빠는 주름이 가득한 하회탈의 미소를 한 채 나를 보고 계셨다. 친구들이 볼 새라 조용히 뒷문을 열고 아빠에게 갔다. 겨우 하루 떨어졌을 뿐인데 몇 년 만에 상봉한 듯 아빠는 나의 볼을 잡고 내 양념딸이 보고 싶어 왔다며 코뽀뽀를 해주셨다. 이 시간에 왜 오신 건지 물으니 독서실에서 공부 그만하고 집에 오면 좋겠다고 하셨다. 성적을 올리기 위하여 벼락치기 밤샘을 할 작정이었는데 아빠의 방해공작 때문에 그때 중간고사 성적은 과히 좋지도 딱히 나쁘지도 않았지만 지금도 아빠를 생각하면 주름 가득한 하회탈의 미소가 가장 먼저 떠오른다.


 직장으로, 결혼으로 이제는 아빠와 멀리 떨어져 살아 얼굴을 자주 뵙지 못하고 전화로만 서로의 안부를 묻는다. 내 생일이 되면 여전히 챙겨주시는 용돈은 계좌이체로 대신하고 설날이 되면 아빠가 주시는 세뱃돈 봉투에는 빳빳한 신권만 들어있을 뿐 아빠의 메모는 더 이상 보이지 않았다. 이번 내 생일에는 아빠의 목 디스크 수술로 양념딸 집에서 일주일 넘게 머무시는 특별한 상황 덕에 오랜만에 아빠의 메모가 적힌 용돈 봉투를 받을 수 있었다. 아빠는 내가 만든 음식에 연신 감탄하며 최고다 칭찬을 해주셨다. 아빠는 딸이 편하게 쉬지 못하고 종종거리는 모습이 안타까워 내 양념딸 고생이 많다고 미안하다고 연신 고맙다는 말만 하셨다.

 

 신문을 읽다가도 딸이 관심이 있거나 딸에게 도움이 될 것 같은 내용을 보면 복사를 해서 집으로 가져와 나에게 읽어주셨던 아빠, 책을 많이 읽으면 좋다는 이야기를 들으시고 집안에 전집 책을 가득 들여놓아 셜록 홈즈와 괴도 루팡, 이솝, 세계 명작 이야기 속 친구들을 만나게 해 주어 나의 겨울을 행복하게 해 주셨던 아빠...

 자식을 위하여 아낌없이 모든 것을 해주시려 했던 아빠의 커다란 사랑을 내가 부모가 되어 두 아이를 키우면서야 뒤늦게 깨닫는다.  


 한편 아빠처럼 사랑 많은 자상한 부모가 되는 것이 여간 쉽지 않음을 느낀다. 아빠의 따뜻한 사랑 뒤에는 아빠의 부단한 인내와 기다림, 무수한 노력의 날들이 있었을 것이다.  

 아빠의 사랑은 커다란 바람막이 우산 같다. 아빠의 양념딸이 행여나 거친 비바람 맞고 다칠 새라 온몸으로 막아주시려 했던 아빠. 지나친 관심과 기대가 때론 부담스러워 반항도 했지만 어른이 되어 혼자 씩씩하게 헤쳐 나가야 했을 때는 아빠의 안전한 온실로 다시 돌아가 어린 화초가 되고 싶었다.


 아빠의 철부지 사춘기 딸은  갱년기가 다가올 만큼 주름 가득한 모습이 되었지만 아빠에게는 여전히 최고로 이쁜  양념딸이다.   


 아빠! 양념딸은 잘 살고 있으니 걱정하지 마세요.

 이제는 제가 아빠의 커다란 바람막이 우산이 되어드릴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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