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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Be in Mar 20. 2021

여행은 사람을 남긴다

몬세라트 수도원에서

 “남편이 아파요. 암이에요. 병원에서는 희망이 없다고 하는데......”

 그녀의 눈가에 눈물이 촉촉하게 번졌다.


 스페인의 천재 건축가 안토니오 가우디의 흔적을 찾아 바르셀로나에 갔다. 가우디의 건축물, 미세먼지 걱정 없는 파랗고 높은 가을 하늘, 매력적인 현지 사람들, 스페인에 도착하면 꼭 먹고 싶었던 츄러스와 레몬 맥주 클라라, 빠에야 , 타파스 등 감탄이 절로 나오는 맛있는 음식들, 바르셀로나에서의 모든 것은 나의 시선을 사로잡았다.


 일정 중 하루는 바르셀로나 시내를 벗어나 가우디가 영감을 많이 받은 몬세라트 수도원에 도착했다.    

 몬세라트 수녀원은 수많은 사람들이 그들의 걱정거리를 가지고 검은 마리아상에 소원을 빌러 오는 순례지여서인지 젊은 사람들보다는 나이 든 사람들이 많이 찾는 그곳의 분위기는 조용하고 엄숙했다.


 현지 투어에 참여한 우리 가족은 어린아이들을 데리고 수도원의 가장 높은 곳에 있는 미카엘 십자가를 보러 갈 수가 없어 일행들이 돌아올 때까지 아래에서 기다리고 있었다. 아이들은 돌멩이와 나뭇잎을 가지고 놀고 있었고 연세가 있어 보이는 한 여자분이 그 모습을 한참을 흐뭇하게 바라보았다.


  우리에게 어디서 왔냐며 묻고는 열네 시간의 장시간 비행을 잘 견딘 아이들이 대단하다고 감탄했다. 자신은 비행기로 두 시간 걸리는 독일에서 왔고 초등학교에서 아이들을 가르치는 선생님이었으며 지금은 은퇴를 했다고 소개했다. 아이들이 참 귀엽다며 어릴 때 추억을 많이 만들라고 하며 아이들에 대한 그녀의 경험을 들려주었다.


 “여기에 왜 왔나요?”

 그녀의 이야기를 즐겁게 듣다 나도 그녀에 대한 질문을 했다. 그녀가 당황한 듯 잠시 침묵이 이어졌다.

 "남편이 많이 아파요"라고 그녀는 힘겹게 입을 뗐다. 사랑하는 사람이 아파하는 모습을 곁에서 지켜보는 것만큼 서글프고 잔인한 것은 없을 것이다.

 "나이가 있는 분들은 암이 더디 진행되니 너무 염려하지 마세요. 금방 무슨 일이 생기진 않을 거예요”

 어떤 말로도 그녀에게 위로가 될 수 없음을 느끼며 그저 그녀의 두 손을 잡았다.

 '걱정 말아요'

 '아무 일 없겠죠? 제발 그랬으면 좋겠어요'

 그녀와 나는 눈빛으로 서로의 마음을 나눴다.

 우리의 일행이 오자 그녀는 나에게 가벼운 포옹을 하며 작별인사를 했다.

“즐거운 여행하고, 앞으로의 날들에 행운이 함께 하기를 바라요”

 일행들에 합류한 우리 가족은 검은 마리아상에 소원을 빌기 위해 순례자들의 긴 줄에 섰다. 2시간의 기다림 끝에 드디어 검은 마리아상의 손을 잡고 내 마음속의 간절한 소원을 빌었다.

 ‘잦은 병치레를 하는 우리 첫째 아이 건강하게 해 주세요.’  다시 한번 온 가족의 건강과 신의 축복을 빌었고 마지막으로 조금 전에 만났던 독일 아주머니의 남편의 건강을 빌었다.


 여행을 하다 보면 많은 것들을 경험하게 된다. 여행지에서만 먹을 수 있는 음식을 맛보기도 하고, 그곳에서만 볼 수 있는 특색 있는 건축물과 아름다운 자연환경 등을 보면서 감동을 받는다. 그중에 시간이 흘러도 내 마음속에 오래도록 기억에 남는 것은 사람과의 추억이다.


 나는 사람 속에 있을 때 힘을 얻는다. 그러나 때론 크게 작게 사람에 실망하고 인간관계에 대한 회의감마저 들 때가 있다. 그럴 때 훌쩍 여행을 떠나곤 했는데 아이러니하게도 새로운 사람과의 만남을 통해 내 상처는 금세 말랑말랑 부드러워진다.


몬세라트에서 사 온 검은 마리아상 열쇠고리를 볼 때 면 금방이라도 눈물이 뚝뚝 떨어질 것 만 같았던 그녀의 푸른 눈동자가 생각난다. 그리고 그녀의 남편의 건강은 어떠신지 많이 궁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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