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학교는 처음이야 (1)
수학 수업이 끝나고 ELA 교실로 바쁘게 이동하는데 복도에서 갑자기 한 친구가 내 앞에 멈춰 서서 두 손을 모으고 합장을 한다. 점심시간이 되니 급식을 먹는 카페테리아 입구에서는 8학년 형이 내가 오기를 기다렸다는 듯이 나에게 손 찌르기 동작을 보여주며 씩 웃는다.
왜 나에게 두 손을 모으고 기도를 하거나 무술 시범을 보여주는 것일까? 학교 친구들은 내가 아시안인 것은 알지만 아시아의 어느 나라 사람인지는 잘 모르는 것 같다. 그래도 나에게 칭챙총이라고 한다거나 두 눈을 찢으며 놀리는 아이들은 아니니깐 다음에 만나면 나는 한국인이고, 한국 사람은 친구를 만날 때는 안녕? 하거나 어른을 만날 때는 안녕하세요? 하며 살짝 머리를 숙여 인사하면 된다고 알려줘야겠다.
2교시 홈룸 선생님 과목인 Social Study 수업 시간이다. 새 학년을 시작하여 석기시대, 문명의 시작, 대 이주, 메소포타미아, 유대교, 이집트, 그리스 (정치 : 아테네/스파르타, 알렉산드로 대왕, 고대 그리스, 그리스 신), 로마( 로마 제국, 고대 로마, 로마의 멸망), 이슬람(이슬람 제국), 아프리카(반투족 이주, 에티오피아 Aksum, Swahili, 가나, 송하이족, 그레이트 짐바브웨), 마야, 아즈텍, 인도 문명(힌두교, 불교), 중국(중국 철학, 중국 왕조, 중국 지리, 진시황, 몽골 제국)을 거쳐 이번 주부터 일본 역사에 대해서 배우고 있다.
오늘 공부할 내용은 신토이즘(Shintoism)이다. 선생님은 신토이즘에 대해서 준비해 온 슬라이드 자료를 학생들에게 보여주셨다. 양쪽 나무 기둥에 두 개의 나무가 가로로 얹어져 있고 가장 윗부분은 한국 전통 가옥에서 흔히 봤던 지붕 모양에 끝이 올라가 있다. 슬라이드 화면에 다시 시선을 고정시켰다. 분명 한국에서 역사 수업 시간에, 역사책에서, 한국 뉴스에서 많이 봤던 일본 ‘신사’ 건물이다.
선생님은 칠판에 영어로 Shinto ‘신토’라고 쓰고, 신토는 일본의 토속신앙이자 오래된 전통문화이고, 오늘은 신토 문화에 대해서 배운다고 하셨다. 입구에 들어갈 때는 목례를 하고 들어가야 하고, 신에게 소원을 빌기 전에 지켜야 할 규칙을 알려주셨다. 먼저 오른손으로 바가지에 물을 떠서 그 물을 왼손에 뿌려서 씻고, 똑같은 방법으로 왼손으로 바가지를 떠서 오른손에 물을 뿌리고 씻는다. 그다음으로 입 주변도 깨끗하게 씻어야 하고 입안을 물로 헹궈 뱉는다. 마지막으로 손을 한 번 더 씻고 바가지를 제자리에 놓는다. 설명을 들은 반 친구들 모두 한 명씩 앞으로 나와 소원을 빌어보는 체험을 하도록 했다.
한국에서 과거 일본이 한국인에게 행한 잔혹행위에 대해서 많이 배우고 들어서인지 일본의 신사 사진을 보는 순간 본능적으로 거부감이 들었다. 선생님은 한국과 일본의 과거 역사를 모르시는 것 같다. 알고 계시다면 한국인인 나에게 신사 참배를 해보라고 권하지 않으셨을 것이다. 일본 역사 대신 한국 역사를 가르쳐주시지 하는 원망이 들었다. 내 영어 실력으로 지금 복잡한 심정을 어떻게 설명해야 할지 모르겠고, 그저 선생님께 인사를 하고 싶지 않다고 했더니 선생님도 내 의사를 존중해 주셨다.
이상은 어느 하루 동안 아이가 학교에서 겪은 일이다.
집에 돌아오자마자 아이는 학교에서 있었던 일을 빠짐없이 말해 주며 일본 역사 수업을 하는 동안만 수업을 듣고 싶지 않다고 한다. 사실 아이의 말을 듣고 "미국 학교에서 신사 참배에 대해 배운다고?" 이 무슨 황당한 경우가 있다니 하며 같이 흥분을 하려고 했지만 아이의 의견에 동조하면 수업에 빠질 명분이 생기니, 이내 마음을 가다듬었다.
모든 신사가 무조건 나쁜 건 아니고, 야스쿠니 신사처럼 전범의 위패를 모셔놓고 신이라고 하는 나쁜 신사가 있고, 이웃과 개인의 평안을 비는 마을의 사당 같은 신사도 있으니, 수업 시간에 어떤 목적의 신이 있는 신사에 대해서 배우고 있는지, 무엇에 대해 기도를 드리는지 내일 수업에 꼭 참석해서 정확하게 알아 오라고 미션을 주었다. 더불어 미국인 선생님은 한국과 일본의 과거 역사에 대해서 잘 모르실 수 있는 것이고, 학생들에게 미국과 다른 생소한 일본의 신토 문화 체험을 해주고자 하는 의도였을 것이라고 선생님의 입장을 대신하여 서운한 아이의 마음을 달래주었다.
Meet the teacher’s day에서 소셜 스터디를 가르치시는 홈룸 선생님을 처음 만났던 날이 기억이 난다. 미국은 교사가 직접 자신의 교실을 꾸미는데 선생님의 교실에는 일본 풍등이 걸려있었고, 일본 애니메이션의 주인공 피규어들로 가득 차 있었다. 선생님이 일본 애니메이션을 꽤나 좋아하시니 ‘아시안 보이’에 대해서 낯설지는 않겠구나 하며 긍정적인 기대를 했던 것 같다. 하지만 오늘 아이의 이야기를 듣고 나니 일본 문화를 좋아하는 선생님에게 진작에 아이와 함께 한국 문화에 대한 자료를 만들어 보냈어야 했는데 후회가 들었다.
저녁을 먹고 아이와 함께 인터넷에서 신사에 대해서 검색을 해보았다. 신사란 일본의 오랜 전통문화이자 토속신앙인 신토의 종교시설이다. 일본의 신사에는 건강의 신, 장사의 신, 시험의 신 등등 800개가 넘는 다양한 신들이 존재한다고 하며 시험의 신이 모셔져 있는 한 신사에는 입시철이 다가올 때면 시험을 앞둔 수험생과 학부모들의 줄이 장사진을 이룬다고 한다. 모든 신사가 문제가 되는 것이 아니고 2차 대전 전범들의 위패가 있는 신사가 특히 문제가 되는 것이다. 대표적으로 야스쿠니 신사가 그러하다.
모든 신사에 문제가 되는 것은 아닐지라도 일제 식민 통치 시절에 천황이나 무사들을 받들어야 한다며 우리 민족에게 신사 참배를 강요 한 전적이 있기에 신사라는 단어만 들어도 한국인으로서 몸이 굳어지는 것은 당연한 신체 반응이 아닐까 싶다. Shintoism으로 인스타에서 검색을 해보니 친근해 보이는 동물 그림과 다양한 신사의 사진이 좌르르 쏟아져 나온다. 아무런 지식 없이 자연과 잘 어우러져 있는 풍경 사진으로만 놓고 보자면 매혹적이기까지 하다. 일본의 이국적인 신사 건물을 방문한 외국인들의 여행 사진에는 뷰티풀이라는 찬사가 가득하다.
하교 후 종종 첫째 아이는 “왜 이곳에 있는 아이들은 일본만 좋아하죠? 중국과 일본에 대해서는 많이 알지만 코리아에 대해서는 북한과 BTS, 우영우, 불고기, 손흥민 정도를 알고 있는 것이 전부인 것 같아요. “ 하면서 속상해하곤 했다. 많은 친구들이 Are u North? Or South? 묻고 장난으로 North라고 하면 친구들의 커다란 눈이 동그래져서 아무 말도 못 한다고 한다. 놀란 아이들을 진정시키기 위해 South라고 정정해 주면 그제야 휴~하면서 안도의 한숨을 내쉰다고 하면서 “ 대한민국에 대해서 널리 알려지고 훌륭한 것들이 얼마나 많은데 제일 유명한 것은 북한이라니……” 아이는 대한민국에 대해서 이 정도로 모를 수가 있냐며 미국 친구들을 이해할 수 없다는 표정이 되어 눈물까지 글썽인다.
다음 날 학교를 다녀온 아이의 표정이 밝다. “ 엄마! 학교에서 배운 신도에는 축제의 신이 모셔있는 곳이었어. 우리 모두 다 같이 댄스를 췄어! “ 이제 일본 역사 수업은 끝났고, 유럽 역사를 배운다고 한다. 선생님이 한국 역사 수업을 단 5분만이라도 해주셨으면 얼마나 얼마나 좋았을까 하는 아쉬움이 가득하다.
미국에 도착해서 어느 정도 자리를 잡고 첫 로드트립으로 뉴욕으로 여행을 갔던 일이 떠오른다. 뉴욕 자연사 박물관을 방문하여 로비에 들어섰을 때 내가 잘못 본 건가 하며 내 눈을 의심했다. 로비에는 건물 위쪽을 가득 채운 대형 사이즈의 벽화의 일부분에 욱일기를 든 일본 군인의 그림이 그려져 있었다. 뉴욕 자연사 박물관이라고 하면 많은 부모님들이 어린아이들을 데리고 꼭 한 번쯤은 방문하고 싶은 유명한 장소이다. 이런 곳에 욱일기가 그려져 있는 벽화가 왜 로비에 걸려있는 것일까? 나는 욱일기를 볼 때면 전범기로 인식이 되어 심장이 얼어붙는 느낌이 든다. 2차 대전의 역사적인 상황을 반영한 의도라고 쿨하게 생각해 보려 하지만 만약 이곳에 나치의 심벌인 하켄크로이츠 문양이 있는 깃발을 보면 사람들은 어떤 생각이 들까 궁금하다.
박물관 내부를 돌아보며 꽤 크고 화려하게 전시해 놓은 일본관과 중국관에 비해 한국관은 지나치게 소박하고 쓸쓸해 보였다. 한눈에 보이는 것이 전시의 전부여서 우리 가족 모두 한국관 앞에서 잠시 정적이 흘렀다. 마음속으로 같은 생각을 하고 있었을 것이다. ‘우리나라의 국력이 더욱 커져야겠구나 ‘
누군가는 미국에 산다면 욱일기에 대하서는 앞으로 계속 충격받을 것이라고 한다. 과거 일본이 하와이 미국 진주만 해군 기지를 폭격한 사실을 알고 있을 지라도 많은 미국인들에게 욱일기는 단순히 태양의 중심으로 모이고 뻗어 나가는 Rising sun 그 자체로, 쿨한 디자인으로 인식한다고 말한다. 매번 욱일기를 발견하고 놀라지만 말고, 새겨듣지 않을지라도 욱일기가 왜 한국인인 나를 얼어붙게 하는지를 영어로 알려줄 수 있도록 영어 문장을 통째로 달달 외우고 있어야겠다.
짧은 시간일지라도, 미국에 머무는 동안, 우리가 만나는 사람들에게 대한민국에 대해 알리고, 잘 못 알고 있는 부분은 정정해 줄 것! 남은 시간 동안의 우리의 새로운 임무가 생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