망고를 선물 받았다. 부드러운 껍질을 과도로 살살 벗기자 새콤달콤한 향이 퍼지며 샛노란 과육이 모습을 드러냈다.
한 입 깨물자 꿀물 같은 즙이 입 안에 가득 찼다. 몇 년 전 갔던 괌 여행, 그전에 갔던 사이판과 보라카이 여행들이 한꺼번에 떠오르면서 자못 그리운 느낌마저 들었다. 여행 못 간 지 한참 되었는데.
이틀 동안 네 알의 망고를 다 해치우고도 여전히 아쉬움이 남았다. 남국의 태양 같은 과일을 입 안에서 오물거리고 있으면 마치 그곳으로 날아가는 기분이 들 것만 같았다. 그래서 사러 가기로 했다.
망고는 비싼 과일이다. 잘못해서 설익은 것을 사고 싶지 않았다. 그래서 '총각네 야채가게'로 갔다. 동네 상점들 중 거기 과일이 제일 때깔이 좋다.
"망고 얼마예요?"
네 개가 들어있는 한 팩을 집어 들며 물었다.
"이만 원입니다."
역시 비싸구나. 우리 동네 총각네 야채가게는 물건들의 때깔이 좋은 대신 비싸다. 같은 건물 한 충아래에 있는 슈퍼에서 양상추 한 개를 2,980원에 팔 때 여기는 4,500원에 팔더라. 그래서 평소에는 잘 오지 않지만 가끔 망고 정도야 뭐.
망고 팩을 내밀며 계산해 달라고 하자 총각이 바코드를 찍으며 말한다.
"오늘 체리가 기가 막혀요."
또 시작이다. 이 집 총각들은 매번 뭘 하나 사려고 하면 다른 것도 같이 권한다. 단 한 번의 예외도 없이. 그때마다 웃으면서 "괜찮아요. 필요 없어요."라고 대답하는 것도 한두 번이지, 자꾸 그러니까 피곤하다. 사소한 거절에도 에너지가 드는 것이다.
대꾸를 안 하기도 뭣해서 잠깐 고민하다가 "아, 네."라고 말했더니 "어휴, 아주 단호박이시네."라고 말이 들어왔다. 순간적으로 짜증이 치밀었다. 저런 말이 재치 있다고 생각하는 걸까?
지난 김장철에 알이 굵은 굴을 선물 받아서 김치 속과 같이 먹으려고 알배기 배추를 사러 왔다. 역시나 총각이 배추를 계산해 주면서 "굴이 아주 싱싱한 게 들어왔어요."라고 말하길래, 나름대로 한껏 우호적인 표정을 지으며 "집에 있어요. ^^"라고 말했더니만 대번 "아, 그러시구나. 집에 있으시구나." 이런다.
내가 내 돈 내고 물건 하나 살 때마다 이렇게 스무고개 놀이를 해야 되나? 그리고 매번 저렇게 추가로 물건을 권하면 다른 손님들은 "어익후! 이런. 체리가 싱싱한 걸 깜빡 못 보고 놓칠 뻔했네. 고마워요, 총각!" 이러면서 사 가지고 가기라도 하는 걸까? 저런 마케팅은 왜 하는 건지 모르겠다.
그리고 말이 나온 김에 말이야, 당신들 전혀 잘생기지 않았어. 그러니까 자꾸만 '잘생긴 총각들이 오늘도 여러분을 위해 새벽부터 받아온 물건이에요'라는 마케팅 문자 같은 것도 보내지 말아 줄래? 내가 먹을 건 내가 알아서 살 테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