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류진의 신작 장편소설 '달까지 가자'를 읽었다. 한 마디로 별로였다.
나는 오랜 기간 동안 한국소설에 대한 편견을 가지고 있었다. '대체로 어둡고 우울하고, 뭔가 특이한 소재가 없으면 얘기가 안 된다'는 것이었다. 잘 기억나지는 않지만, 학창 시절 때부터 틈틈이 접한 소설들은, 아주 탁월하다고 생각하는 몇몇 작품(그런 작품은 엄청 빨려 들어가듯 읽었다)을 제외하고는 읽을 때마다 그런 기분이 들었다.
그래서 나는 주로 추리소설 같은 장르문학을 보거나, 일상적인 소설은 일본 소설을 보았다. 무라카미 하루키를 제외하고는 오쿠다 히데오의 '오 해피 데이'처럼 잔잔한 일상을 포착해서 재치 있게 엮은 것들이 취향에 맞았다. 가끔 한국소설이 읽고 싶어 져서 시도해 보면 여전히 우중충하거나, 현실에서 접하기 어려운 희한한 얘기들이 대부분이었다.
비교적 얼마 전에 추천받아서 읽은 권여선의 '레몬'만 해도, 비현실적으로 예쁘지만 속옷 안 입는 버릇이 있는 여자애를 중심으로 한 이야기이다. 이런 얘기는 왜 쓰는 걸까? 이런 소재가 없이는 소설이 안 되나? 솔직히 재미 하나도 없었다.
그런데 장류진의 '일의 기쁨과 슬픔'을 읽고서는 신선한 충격을 받았다. 아주 일상적인, 우리들 중 누구라도 겪을 법한 소재를 가지고 맛깔나게 이야기로 엮어 내었다. 특별히 통찰력 있는 메시지를 주는 것도 아닌데 읽는 재미가 있었다.
이런 소설도 우리나라에서 가능하구나. 마치 한국의 오쿠다 히데오를 만난 기분이었다. 혹시 내가 한국문학을 등한시한 사이에 시류의 변모라도 있었던 것일까?
더불어 '나도 이런 글을 쓰고 싶다'는 생각이 들게 했다. 내가 일상에서 직, 간접적으로 경험한 일들에 문장을 통해 생생한 생명력을 불어넣어 이야기의 형태로 만들고 싶다는 욕구가 생겼다. 아마도 장류진의 책을 읽지 않았더라면 소설 따위 쓸 생각을 하지 못했을 것이다.
그런데 이번 신작은 기대에 미치지 못했다. 그저 '흙수저 20대 여성 직장인 3인방이 이더리움으로 대박 난 이야기'로 한 마디로 요약할 수 있을 정도로 별 내용이 없었다.
물론 소설에 심오한 내용을 담을 필요는 없지. 그런데 그것 치고는 너무 길었다. 전작도 별 메시지 없기는 마찬가지지만, 매 에피소드마다 적당한 분량에 속도감 있는 전개로 이야기를 읽는 맛이 느껴졌다면 이번 건 너무 늘어지더라.
마치 작가가 '난 장편소설을 쓸 거야. 그러니까 길게 써야 해.'라고 결심하고 작정해서 분량을 늘린 것 같은 느낌마저 들었다. 양을 늘이려니까 불필요한 묘사가 사방에 넘쳤다. 처음에는 묘사를 통해 상상하는 즐거움이 있었지만 뒤로 갈수록 피로해져서 그저 책장을 휙휙 넘기게 되었다.
장류진은 잘 쓰는 작가라기보다는 영리한 작가구나. 일단 본인이 잘 아는 것을 집중 공략한다. 전작과 이번 작품을 모아서 판단하건대 아마도 오랜 기간 직장생활 경험이 있거나, 절친한 사람의 직장생활을 지켜본 것 같다. 직장인과 직장생활에 대한 묘사가 세밀하고 사실적이다.
그리고 시류를 잘 탄다. 지금 가장 핫한 암호화폐를 소재로 이야기를 썼으니 소설에 관심 없는 사람이라도 한 번쯤 돌아볼 법하다. 그중 어떤 사람은 재미있게 읽을 것이고, 또 어떤 사람은 코인을 사겠지.
위 두 가지 점을 두고 보니 자기계발의 모델로서는 매우 훌륭한 작가라고 할 수 있겠네. 거기에 작가 본인의 마음에 드는 작품이라면 더할나위 없이 좋을 것이고. 내 취향과 상관 없이, 이런 스타일의 소설을 좋아하는 독자들도 많이 있을 테니 말이다. 잘 팔릴 것은 물론이고. 히트친 작가는 역시 다른 걸까나.
암튼 이번 책은 난 별로였다. 다음에 장류진 신간이 나오면 살지는 미지수.
ps. 작가에 대한 부분은 어디까지나 주관적인 추측에 불과하다. 그리고 나의 개인적인 감상평에 불과하다는 것도 밝혀둔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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