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 신발을 빌려줄래?
나는 내 아이의 유일한 엄마 코치입니다
코칭을 배운 첫 번째 이유는 아이 때문이었다.
아이를 나 보기에 좋을 대로 이리저리 끌고 다니다가 지치게 한 경험이 있었기에(시키는 엄마 vs. 놀리는 엄마), 아이의 마음을 이해하고, 보조를 맞추어 함께 걷고, 도움이 필요할 때 가르치거나 훈계하는 대신 스스로 깨닫게 해주고 싶다는 마음이 있었고, 그를 위한 수단으로 코칭을 택한 것이었다.
두 번째 이유는 주변 사람들과의 관계. 사람들을 좋아하지만 만나면 늘 소통하지 못하고 각자의 입장에서 각자의 생각을 독백처럼 교류하는 느낌에 지쳐 있었다. 셀프코칭을 통해 받았던, '존재 자체로 받아들여지는 느낌'을 사람들에게 선물로 주고 싶기도 했다.
마지막 이유는, 이것이 언젠가 직장에서 만나는 사람들에게 선한 영향력을 미치는데 쓰이지 않을까 하는 기대였고.
마지막 코칭수업이 끝나고 본격적으로 실습을 시작한 첫날, 나는 아이를 상대로 코칭을 해보기로 했다. 너무 어려서 대화가 될까, 아이가 제대로 응하려고 할까, 프로세스대로 진행이 될까, 여러 고민이 있었지만 내 맘 속 영원한 일순위 코치이로 삼고 싶은 상대는 아이였기에, 되든 안 되든 시작해보고 싶었다.
편안한 대화를 위해 잠자기 전 시간을 활용하여 조명을 따뜻한 주광색으로 바꾼 뒤 푹신한 침대에 나란히 누웠다. 그리고는 질문 시작. 오늘 하루는 어땠는지, 요새 기분이 어떤지 등을 물어도 아이는 영 시큰둥하다.
그러다 '최근에 가장 속상했던 일'을 물으니 갑자기 얼굴이 살짝 굳어지더니 내뱉듯이 말했다.
"엄마가 며칠 전에 나 혼냈잖아."
아이가 밥 먹으면서 장난치다가 입에 든 음식물을 바닥에 떨어뜨렸길래 야단을 친 기억이 났다. 평소에도 아이가 잘 먹지 않는 것 때문에 스트레스가 쌓여있었던 데다, 그날따라 몸이 피곤해서 참지 못했다.
그래, 속상했구나. 하지만 살짝 짜증을 낸 정도인데? 그게 그렇게 속상했나? 부모가 자식 야단도 좀 칠 수 있는 거지.
이어서 계속 질문을 했는데, 결국 아이 입에서 나온 말은 나를 아연실색하게 했다. 엄마는 자주 화를 내서 무서워. 엄마가 언제 화를 낼지 몰라서 같이 있으면 불안해. 엄마가 사과를 해도 풀리지 않아. 실수했는데 화내면 너무 억울해. 그러고서는 이불을 뒤집어쓰고 울먹인다.
가만히 지난 시간을 돌이켜보았다. 작년에 코로나로 아이와 집에 갇히고, 점점 늘어가는 화를 참을 수 없어, 화를 내고 나면 아이에게 너무 미안하고 자괴감이 들어서 온라인 코칭 프로그램에 등록했다. 그러면서 나 자신을 돌보고, 감정을 다스릴 수 있게 되었고, 그 결과 아이에게 화내는 일이 점차 줄어들었다.
그 이후에는 어쩌다 한 번씩 버럭! 한 날에도 크게 죄책감을 느끼지 않았다. 이 정도는 괜찮아. 작년보다 훨씬 낫잖아. 나는 달라졌다구. 그래서 아이가 최근까지도 숱하게 "엄마 무서워. 화내지 마."라고 말했는데 그 말을 흘려들었던 것이다. 이 정도 가지고 뭘 그래.
코칭에서는 경청을 '무시하기 - 경청을 가장하기 - 선택적 경청 - 주의 깊은 경청 - 공감적 경청'의 다섯 단계로 나눈다. 그중 가장 마지막 단계인 '공감적 경청'만이 내가 아닌 상대의 패러다임 속으로 들어가는 코칭적 경청에 해당하고, 이를 다음과 같이 표현한다.
상대의 신발을 신는다
그동안 나는 아이의 말을 내 패러다임 속에서 해석하면서, 경청 중 최하위 단계인 '무시하기'를 해왔다. 코치의 관점에서 아이를 바라보니, 이불속에서 울먹이는 아이의 두려움이 비로소 보이기 시작한다.
나는 어떻게 해야 하나. 마음이 무겁지만 한 가지는 확실히 알겠다. 나는 당분간 '아이의 신발을 신어야겠다'.
photo by julian-hochgesang on unsplash