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 냉동실 안에는 하겐다즈 초코바가 있다. 달콤하고 시원한 바닐라 크림을 고급진 초콜릿 코팅으로 감싸고 있는 그것. 입 안에 넣으면 먼저 초콜릿이 혓바닥에 닿아 조금씩 녹아내리겠지. 그리고 한 입 깨물면 바사삭 초콜릿 코팅이 부서지면서 차가운 크림이 입 안에 꽉 들어차겠지. 나는 하루 종일 그 생각을 하는 중이다.
대체 습관으로 차를 마시고 체리를 먹는 것을 설계한 다음부터는 그런 욕구가 줄었는데, 오늘따라 왜일까? 곰곰이 살펴보니 코로나가 심해지는 바람에 꼼짝없이 집에 갇혀서 바깥바람을 하나도 못 쐬었기 때문이다. 평소보다 스트레스가 심해지니까 더욱 자극적이고 익숙한 음식을 먹음으로써 즉각적으로 기분이 좋아지고 싶었다.
그런데 초코바를 먹으면 과연 기분이 좋아질까? 나는 안다. 초코바의 맛을 상상하면서 저벅저벅 냉장고 앞에 걸어가 초코바를 꺼내어 포장을 벗기고 한 입 깨물 때까지만 즐겁고, 그 이후에는 무미건조한 저작 활동에 그치리라는 것을. 그 일분 정도의 쾌락 뒤에는 뱃살과, 또 먹을 걸로 스트레스를 풀었다는 자괴감이 남아 나의 기분을 오히려 나쁘게 전환하게 될 것을.
그래서 온종일 먹을까, 말까를 머릿속에서 반복했다. 예전 같으면 이런 고민을 하다가 '아이스크림 하나 가지고 이게 무슨 시간낭비야!'라고 생각했을 텐데, 이제는 이 과정이 나의 뇌의 보상체계를 즉각적인 것에서 비즉각적인 것으로 바꾸는 과정이라고 믿으니 의미가 있다.
이게 무슨 말일까? 우리 뇌는 변화를 싫어한다. 그래서 익숙한 것, 늘 하던 것을 찾게 된다. 이것이 자동반응으로 이어진다. 이것을 바꾸려고 하면 뇌는 저항하는 것이다. 다이어트나 흡연 같이 이미 습관으로 굳어진 것을 바꾸는 것이 그렇게 힘이 드는 이유이기도 하다.
나쁜 습관을 교정하는 것은 한 번에 되는 것이 아니다. '자극 -> 반응 -> 보상'으로 이어지는 자동반응의 고리를 깨야 한다. 자극과 반응 사이의 간격을 벌릴수록 이 고리는 깨어지기 쉽다.
'밍이야, 너 진짜 이거 먹으면 기분이 좋아질 거 같아?'
'아니.'
'그런데 왜 먹고 싶어?'
'심심하고 지루해. 뭔가 자극이 필요하다구.'
나는 계속 뇌와 이런 대화를 나눔으로써 결국 자기 전까지 안 먹는 것에 성공했다. 이만하면 되었네. 내일은 먹고 싶으면 그냥 먹을까? 그런데 밤사이 남편이 홀랑 먹어버림으로써 더 고민할 필요가 없게 되었다. 고마워, 남편.
다음 날 저녁, 아이가 컵라면을 먹다가 반쯤 남겼는데, 그것을 보고 바로 미련 없이 개수대에 부어버렸다. 보통 때에는 컵라면의 자극적인 냄새와 음식을 버리는 것은 낭비라는 생각이 겹쳐서 한참 먹을까 말까 고민했을 텐데. 내가 하겐다즈도 포기했는데 이런 정크를 내 몸에 집어넣는 게 아까운 일이라는 생각이 들면서 고민이 안 되더라. 자극과 반응 사이가 한 뼘 더 멀어진 느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