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림렌즈를 낀 지 3년 반이 넘어간다.
처음에 맞출 때 렌즈 수명이 2, 3년이라고 들어서, 3년이 넘어갈 때부터 신경이 쓰였다. 이제 바꿔야 되는 거 아닐까?
그럼 병원에 가서 렌즈 상태를 점검하면 되는데, 좀처럼 갈 마음이 나지 않았다. 귀찮은 것도 있었지만, 더 큰 이유는 속을까 봐서였다. 내가 드림렌즈를 구매한 곳은 소위 말해 공장제 병원이었다. 환자 개개인의 상태를 면밀히 살피기보다는 돈 되는 수술을 최대한 많이 끌어모은다는. 거기서 렌즈를 산 이유는 당시 할인을 많이 해 주었기 때문이다.
'이번에 병원에 가면 렌즈 팔아먹으려고 멀쩡한 것도 바꿀 때가 되었다고 말하지 않을까?' 사람들은 나를 이용하고 속이려고 한다는, 그러니까 나는 매사 똑똑하게 잘 알아보고 처신해야 한다는 믿음.
그런데도 계속 렌즈의 상태가 신경 쓰였다. 상태가 안 좋아서 내 각막이 상하면 어쩌지? 불안했다.
그래서 내 무의식이 어떻게 했냐면, 병원에 가지 않을 수 없는 이유를 만들었다. 렌즈를 끼고 뺄 때 자꾸만 부주의하게 행동해서 결국 그제 아침에 렌즈 한쪽을 잃어버렸다. 잃어버리고 나서야 내가 은연중에 병원에 갈 핑계를 만들려고 애를 썼다는 것을 깨달았다.
병원에 가면서 '어차피 바꿀 때가 되었을 거야. 병원에서도 그렇게 말할걸. 렌즈 팔아먹어야 되니까.'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검사 결과 렌즈 상태가 괜찮아서 앞으로 일 년 이상은 더 쓸 수 있다고, 각막도 아주 깨끗하다고, 잃어버린 한쪽만 맞추면 된다고 하더라. 당황스럽네. 분명 한쪽 잃어버린 김에 다른 쪽도 같이 바꾸라고 강권할 줄 알았는데.
얼마 전에 온라인 코칭 모임에서 제프리 영의 '심리도식' 검사를 할 기회가 있었다. 우리가 살면서 자주 빠지는 생각의 패턴이라는 그것.
버림받음의 덫, "제발 나를 떠나지 마세요."
불신과 학대의 덫, "당신을 믿을 수 없어."
정서적 박탈감의 덫, "나는 결코 사랑받을 수 없을 거야."
사회적 소외의 덫, "나는 적합하지가 않아."
의존의 덫, "나 혼자서는 해낼 수 없어."
취약성의 덫, "언제 재난이 닥칠지 몰라."
결함의 덫, "나는 쓸모없는 사람이야."
실패의 덫, "난 실패자인 것 같아."
종속의 덫, "당신이 원하는 대로 할게요."
가혹한 기준의 덫, "아직 많이 부족해."
특권의식의 덫, "내가 원하는 건 뭐든지 다 가질 수 있어."
검사 결과는 문제 없는 수준이었지만, 어떤 것들은 내가 자주 빠지는 사고의 함정과 매우 유사했다. 또 기존의 심리도식에 해당되지는 않아도 내게는 몇 가지 고정된 생각의 패턴이 있다. 그 생각들은 내가 타인과 건전하게 관계 맺는 것을 방해한다.
이번에도 결국 나는 '사람들은 나를 속이고 이용하려고 해'라는 심리도식에 빠져서 병원을 가지도 못하고, 안 가지도 못하다가 한쪽 렌즈를 거의 일부러 잃어버리는 사태를 맞이했고, 애꿎게 50만 원만 날렸다. 두려움의 대가가 참 크구나.
photo by barthelemy-de-mazenod on unsplash
photo by lensabl on unsplash