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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밍이 Jan 12. 2021

로고테라피가 별거냐

책과 삶을 잇다 - '죽음의 수용소에서'를 읽고

죽음의 수용소에서.

이 책은 20세기의 대표적인 정신 의학자인 빅터 프랭클 박사가 나치 강제 수용소에서 겪은 경험과, 이를 바탕으로 정립한 로고테라피에 관한 책이다. 


나는 솔직히 이 책을 읽고 싶지 않았다. 생존의 위협과 인간의 존엄성이 지켜지지 않은 상태에 내몰린 인간이 어떻게 변해가는지 알고 싶지 않았다. 알게 되면 그런 상황에 처하게 될 것만 같아서 불안했다. 마치 '여권을 만들면 해외여행 갈 일이 생긴다'는 믿음처럼. 초등학교 4학년 때 안네의 일기를 읽고 한동안 두려워서 잠을 잘 자지 못했던 기억도 있다. 


게다가 나는 인류의 역사는 되풀이된다는 것을 믿기에, 영화 '설국열차'나 '인 타임'에서 본 미래가 현실화될 수 있다는 느낌이 나의 불안을 더욱 부추겼다. 시련 속에서도 고결한 선택으로 내 삶을 빛나게 할 수 있더라도, 할 수만 있다면 그런 시련 자체를 없는 것으로 만들고 소소한 갑남을녀로 살아가고 싶었다.


하지만 내 삶의 시련은 내가 선택할 수 있는 것이 아니라는 것, 아우슈비츠에 끌려가는 것만큼은 아니더라도 현재 이 곳에서도 얼마든지 생존과 인간의 존엄성이 위협받는 상황은 일어날 수 있다는 것, 그러므로 이 책이 지금 대한민국을 살아가는 나에게도 의미가 있을 거라는 생각으로 읽기 시작했다. 그리고 비록 끔찍한 기록들이지만, 생각보다 담담하게 기술되어 있어 많이 고통스럽지 않았다. 이렇게 쓸 수 있게 되기까지 그는 얼마나 많은 마음의 격랑을 헤쳐 나온 것일까.

  


정말 중요한 것은 우리가 삶으로부터 무엇을 기대하는가가 아니라
삶이 우리로부터 무엇을 기대하는가 하는 것이라는 사실을.
<죽음의 수용소에서 中> 


인생이란 궁극적으로 이런 질문에 대한 올바른 해답을 찾고, 개개인 앞에 놓인 과제를 수행해 나가기 위한 책임을 떠맡는 것을 의미한다. 
<죽음의 수용소에서 中>



로고테라피는 '삶의 가치를 깨닫고 목표를 설정하도록 하는 것에 목적을 둔 실존적 심리치료 기법'으로 풀이된다. 쉽게 말하면 고통 속에서도 그 의미를 찾을 수 있으면 견딜 수 있다는 것이겠지. 


처음에는 고통이나 삶의 의미 같은 말들이 매우 거창하게 다가왔으나, 이내 그렇지 않다는 것을 깨달았다.

 

내가 어릴 적 엄마가 자주 하시던 말씀이 있다. '선한 일을 하면 자식이 복을 받는다.' 엄마는 그것을 신념처럼 붙들고 살았다. 남에게 늘 베풀었고, 힘든 일이 있어도 참고 견뎠다. 삶이 엄마에게 질문을 던질 때, 엄마는 대체로 '선한 일'로 대답했고, 그것은 '자식이 복을 받는다'는 의미가 있기에 가능한 것이었다. 엄마의 로고테라피는 그것이었다. 


나는 어떤가. 꽤 조숙했던 나는 어릴 때부터 삶의 의미에 대해 생각했던 것 같다. 내가 찾았던 답은 '삶이란 고통을 참으며 옳은 일을 하는 것'이었다(지금은 그렇게 생각하지 않지만). 그 답이 맞든 틀리든, 나는 그 의미가 있기에 청소년기와 청년기의 많은 격랑을 잘 헤쳐 나올 수 있었다. 


현재 나의 삶의 의미는 이것이다.


우리가 알거니와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 곧 그의 뜻대로 부르심을 입은 자들에게는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루느니라
<로마서 8:28>  


나에게 주어진, 일견 삶의 고통으로 보이는 일들도, 그것이 내가 믿는 절대자 안에서 결국 나와 다른 사람들을 위해 선한 방향으로 사용될 것이라는 믿음, 그리고 실제로 그것을 목도하였던 경험. 이것이 나의 로고테라피이다. 





photo by cristian-escobar on unsplas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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