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이 내게 무언가를 깨닫게 하시거나 말씀하시는 경험을 여러 번 하면서, 나는 언젠가부터 ‘하나님의 메신저가 되고 싶다’는 소원을 품게 되었다. ‘하나님이 내게 말씀하시는 것을 사람들에게 전하고, 많은 사람들을 옳은 길로 돌아오게 하고 싶다’고 생각하면서, 마치 그것이 나의 소명인 양 책임감을 가지기도 하고, 성경에 나오는 여러 메신저들의 삶을 유심히 살펴보면서 ‘이런 삶을 살 수 있을까’ 짐짓 무게감에 눌리기도 했다.
아마도 그것은 온전히 거룩한 소원은 아니었을 것이다.
사람들에게 하나님을 알리고 선한 영향력을 끼치고 싶다는 열망과, 남들보다 크고 특별한 사람이 되고 싶다는 교만이 교묘하게 씨실과 날실처럼 엮여 있는 마음. 아마도 어릴 적부터 가지고 있던 반장기질도 한 몫 했을지도 모른다.
그러던 와중에 하나님께서 어떤 문제에 관하여 며칠 동안 기도하라는 마음을 주셨다. 그것은 내가 잘 알지도 못하고 개인적으로 전혀 상관이 없다고 봐도 무방한 것이었지만, 하나님 나라와 관련이 있고 많은 사람들에게 영향을 미치는 매우 예민한 문제였다. 나는 하나님께서 나에게 하나님 나라에 관한 중보를 시키신 것을 기쁘게 여기며 순종하였고, 기도하는 와중에 하나님은 내게 무언가를 보여주셨다.
그러다 우연히 한 기도모임에서 하나님께서 내게 보여주신 것을 나누게 되었다. 원래는 계획에 없던 일이었다. 그 자리에는 그 문제와 관련된 자매가 있었는데 그 자매는 놀라워하며 자신이 품고 있던 생각과 정확히 반대되는 것이라고 말했다.
그 말을 들은 순간 나는 갑자기 자신이 없어졌다. 내가 본 것이 맞나? 나는 그 문제에 대해 잘 알지도 못하면서 정 반대로 기도하고 있는 게 아닐까? 덜컥 겁이 났다. 그래서 하나님께 여쭤보았다. 하나님, 제가 지금 제대로 메시지를 전하고 있는 게 맞나요? 하나님께서는 대답하셨다.
“너는 그저 내가 너에게 행한 일을 '증언'하기만 하면 된다. 나머지는 듣는 사람들과 나 사이의 문제다. 그들이 각자 판단할 것이다.”
그 말씀을 듣는 순간 마음이 평안해졌다. 그러면서 말씀이 떠올랐다.
“오직 성령이 너희에게 임하시면 너희가 권능을 받고 예루살렘과 온 유대와 사마리아와 땅 끝까지 이르러 내 증인이 되리라 하시니라(사도행전 1:8)”
하나님은 우리에게 메신저가 되라고 하시지 않았다. 증인이 되라고 하셨다. 나는 이 말씀을 이미 머리로는 알고 있으면서도 그간 증인이 어떤 사람인지는 생각해 보지 않았다.
법정에서 선 증인의 특징들을 생각해 본다.
- 증인은 자신이 겪은 일만을 말한다. 직접 보고 들은 것 이상을 말하지 않는다.
- 증인은 사실만을 말한다. 의견을 말하지 않는다. 의견을 말하면 재판장은 이를 저지하면서 그 증언을 녹취록에서 삭제하기도 한다.
- 증인은 질문받았을 때, 즉 말하라고 명 받았을 때에만 말한다. 아무 때나 말하지 않는다.
- 증인은 증언이 끝나고 증언석에서 내려오는 순간 책임을 다하고 편안하게 쉴 수 있다. 판단은 다른 사람들의 몫이다.
나는 그저 하나님께서 내게 말하라고 명하셨을 때에만, 내게 일어난 사실만을 말하면 되는 것이었구나. 그 뒤는 내 책임이 아니었구나.
보통 전도와 선교를 이야기할 때 사용되는 ‘땅 끝까지 이르러 증인 되라’는 말씀도 오해하고 있었다. 분명히 ‘증인’되라고 하셨음에도 나는 은연중에 마치 이것을, ‘까다로운 고객인 불신자들을 설득해 그들에게 하나님 나라를 판매해야 하는 세일즈맨이 되라’는 말씀으로 느끼고 있었다. 그래서 그렇게 전도와 선교가 어려웠나보다.
새삼 마음이 가벼워진다. 그리고 아마 내가 충성된 증인으로서의 자세를 가질 때, 하나님은 나를 통해 사람들에게 하고 싶은 메시지를 전달하실 것이다. 증인의 삶과 메신저의 삶은 결국 하나이다.
그리고 이것은 비단 나에게만 해당되는 얘기는 아니다. 법정에서 증인으로 서는 데에는 어떠한 자격도 필요치 않다. 그저 그 일을 경험한 사람이면 충분하다. 당신이 어떤 사람이든, 당신의 신앙이 어떠하든 당신도 할 수 있다.
그리고 ‘땅 끝까지 이르러 증인 되라’는 말씀은 우리 모두에게 주신 명령이다. 심지어 세상 법정에서도 누구나 증언을 할 의무가 있다고 정해놓았는데(민사소송법 제303조, 311조), 하나님 나라에서는 오죽할까.
당신과 나의 증인된 삶, 그리고 그 삶을 통해 구원받을 영혼들을 기대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