넷째 날 아침.
언제나처럼 산책을 위해 호텔 정문으로 나왔는데 바람이 꽤 세차게 불었다. 항구 근처라 바닷바람이 강한가 보다. 예전 같으면 쌀쌀하다고 느꼈겠지만, 올여름 버지니아에서 극도의 더위를 체험했더니 찬바람이 이렇게 반가울 수가 없다.
구글맵을 보고 바닷가 쪽으로 직진했다. 얼마 안 가서 푸른 하늘과, 똑같이 푸른 바다가 눈앞에 펼쳐졌다. 너른 수평선 혹은 지평선. 내가 가장 좋아하는 풍경 중 하나다.
바다를 눈앞에 두고 어느 쪽으로 걸을지 고민하다가 좌회전해서 펠스 포인트로 방향을 틀었다. 산책로가 널찍하고 깨끗해서 미국 도시 같지가 않다. 마치 캐나다 쪽 나이아가라에 처음 도착했을 때 같은 느낌. 조깅하는 사람들조차 산뜻하게 느껴졌다.
가도 가도 계속 펼쳐지는 바다와 그 사이사이 정박해 있는 요트들을 감탄의 눈으로 바라보다가 펠스 포인트에 도착했다. 모서리마다 닳아 있는 돌길과 그 사이에 깔린 철길이 이 도시가 얼마나 오래되었는지를 말해준다. 멋스럽다. 내가 이 아침 산책을 위해 어제 호텔에서 묵었나 보다.
슬슬 다리도 아프고 커피도 고파서 문이 열려 있는 카페에 찾아들어갔다. 알고 보니 꽤 유명한 Pitango라는 곳이었다. 주문 줄에 서서 눈으로 쇼케이스를 훑으며 라떼에 어울릴 만한 빵을 고르고 있는데, 점원이 주방에서 방금 구운 패스츄리 한 무더기를 쟁반애 담아가지고 나왔다. 과일과 크림이 얹힌 모양새가 꽤나 먹음직스러워 보인다. 갓 구운 빵은 못 참지. 하나 주문해서 라떼와 함께 받아 들고 밖으로 나와 테이블에 앉았다.
한 입 베어 물었는데 세상에... 이렇게 바삭한 패스츄리는 미국에 와서는 처음인 것 같은데! 아이 몫으로 하나 더 사갈까 하다가 줄이 길어서 포기. 절반을 남겨서 종이봉투에 잘 담은 뒤 숙소로 돌아갔다. 마침 일어나 있던 아이에게 한 입 먹였더니 너무 맛있다며 금방 다 먹어치웠다. 아침에는 영 입맛이 없는 아이인데 이게 웬일이야.
슬슬 체크아웃을 하고 아이에게 바닷가 쪽을 잠시 산책한 뒤 점심을 먹고 가자고 말했다. 미술관도 도서관도 오늘 모두 휴관임을 알고 있는 아이는 이 정도는 순순히 협조하겠다는 자세로 나선다. ㅎㅎ 다시 아까처럼 호텔 정문으로부터 바닷가 쪽으로 직진한 뒤, 이번에는 반대 방향으로 걸었다.
가능하면 걸어서 Federal Hill 파크까지 가고 싶었지만 아무래도 무리. 하지만 괜찮다. 나는 오늘 아침 산책을 하면서 본 풍경들에 반해서, 미국을 떠나기 전에 꼭 다시 한번 볼티모어 이너 하버에 오기로 이미 결심한 터다. 다음에 보면 되지 뭐.
슬슬 걸을 수 있는 만큼만 걷다가 잠시 앉았다. 조금만 쉬다가 점심을 먹으러 가려고 했는데 아이는 물 위에 떠 있는 오리를 관찰하느라 정신이 팔려 있다. 역시 동물을 좋아하는구나. 새삼 다시 한번 깨달았다. 아이의 관찰을 방해하지 않으려고 한동안 기다리다가, 주차장 사용 시간이 얼마 안 남았는데 추가 요금이 또 엄청 비싸다는 걸 확인하고 화들짝 놀라 아이의 손을 잡아끌었다.
점심 메뉴는 스시. 어쩐지 항구 도시라서 신선한 생선이 맛있을 것만 같아서 결정했다. 구글평점이 높고 걷기에 너무 멀지 않으며 현재 문이 열려 있는 곳을 찾다가 SUSHIBRUCE YA로 들어갔다.
서빙된 차가운 물을 마시며 메뉴판을 보는데... 값이 꽤 비싸다;;; 게다가 스시세트 메뉴는 보이지도 않고 다 낱개로 주문하는 것밖에 없네. 평점과 거리, 오픈시간을 확인하느라 미처 가격을 보지 못한 내 불찰이다;;; 아이는 이미 좋아하는 연어와 참치를 마음껏 먹을 태세인데.
혹시 런치메뉴판이 있냐고 물어봤더니 따로 갖다주었다. 그럼 그렇지, 에이 이 사람아. 이런 게 있으면 먼저 줘야지. 하지만 그 메뉴판에도 롤 몇 종류만 있을 뿐 스시 세트는 없다.
하아... 고심하다가 런치 세트로 그린 샐러드가 딸려 나오는 새우튀김롤 하나, 스시는 연어와 참치를 각각 두 피스씩 시킨 뒤, 메뉴판에서 제일 싼 seaweed 샐러드도 추가했다. 이 에미는 샐러드를 겁나 좋아하는 사람인 척하면서, 미역줄기나 씹으며 배를 채워야겠다.
그런데 서빙된 스시의 자태가 예사롭지 않다. 광채가 줄줄 흐르는 게 딱 봐도 엄청 신선하고 맛있을 것 같다. 시험 삼아 옆에 딸려 나온, 작은 연어 조각을 입에 넣었다. 크아, 녹는다 녹아! (내가 미국에 온 뒤 미각에 혼선이 생겨서 자신할 수는 없지만) 이 정도 퀄리티면 조선호텔 스시조 급인데?! 그럼 이 가격이 오히려 싼 거 아닐까? 합리화하며 스시를 추가해서 나도 즐겼다. 볼티모어에 다시 와야 하는 이유가 하나 더 생겼다.
즐겁게 식사를 마친 뒤 호텔로 돌아가 차를 몰고 리치몬드로 향했다. 아이와 단둘이 3박 4일의 여행, 이 정도면 성공이다. 다음 연휴에도 도전해야지(그전에 며칠 앓아누워 있은 다음에... ㅋㅋㅋ).
[여행 정보]
https://maps.app.goo.gl/uAudXWuWJJb8syFv9
뷰는 없지만 메리어트 계열 중 저렴한 편이고, 펠스 포인트와 이너 하버 중간에 있어 위치 좋음 (다만 이너 하버 쪽 관광지까지 걸어가기는 다소 멀 수도...)
https://maps.app.goo.gl/UYXgjvGMbdFMyNSH8
https://maps.app.goo.gl/HoHKrYFYsVekdNqE7
피탕고는 젤라또와 베이커리가 따로 있는데, 젤라또는 정오에 오픈, 베이커리는 아침 일찍 오픈한다. 내가 간 곳은 베이커리 (젤라또가 더 유명한 거 같긴 함)
https://maps.app.goo.gl/kEU5tgHaK8S41xb46
그 외 가려다 못 간 곳
https://maps.app.goo.gl/icuhxCSMVidqBbod9
https://maps.app.goo.gl/J9t7GhMxs6Tiwo2y8
https://maps.app.goo.gl/ePmUUegVfwBYtmq99
https://maps.app.goo.gl/bXmyv2Nsz3hy3sXo9
https://maps.app.goo.gl/rtwDUVVidLVck6318
https://maps.app.goo.gl/eLCKgjxJvcmoCa979
https://maps.app.goo.gl/8DGGKR6vRp9RjGLT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