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런데 사실 우리 반에는 피아노를 나보다 훨씬 잘 치는, 거의 피아노 신동이라고 해도 좋을만한 남자아이가 있었다. 풍금 반주는 여자애가 해야 한다는 고정적인 성역할 때문에 선생님은 내게 맡겼다.
나는 음악시간마다 풍금을 치면서 좌불안석이었다. 내가 여자라는 이유로 정당하지 못하게 그 애의 자리를 빼앗은 기분이었다. 그 애가, 다른 친구들이 내 연주를 들을 때마다 '너는 나(걔) 보다 훨씬 못해. 그 자리에 있을 자격이 없어.'라고 비난할 것만 같았다. 그래서 음악시간이 점점 고통스러워졌고, 학년이 바뀌면서 더 이상 연주를 하지 않게 되자 안도했다.
사실 그 애는 신경도 안 썼을 텐데. 풍금 반주자로 뽑히는 일 같은 거, 나나 명예롭다고 생각하지 사실은 귀찮은 일이었을 수도 있는데. 어쩌면 선생님은 (내가 여자라서가 아니라) 그런 점까지 고려해서 나를 지명한 것이었을 수도 있는데. 나도 나름대로 피아노를 배워서 대회에 나가 상까지 받았는데. 나보다 그 애가 더 잘한다고 해서 내가 자격이 없는 것도 아니었는데. 음악시간의 반주 정도는 특별한 재능이 없어도 피아노를 칠 줄 아는 누구든 할 수 있는 일이었는데.
나는 괜한 자격지심으로, 즐길 수 있는 순간들을 놓쳐버렸다. 처음 풍금 반주자로 지명되었을 때 뿌듯함으로 가슴이 벅찼던 기억이 분명 있는데. 그저 그런, 별 존재감 없는 아이였다가 학교에 들어가면서부터 '전교 1등'라는 타이틀을 획득하고 안정감을 찾았던 내가, 그래서 '나는 공부를 잘해야만 존재가치가 있다'고 무의식 중에 생각하면서 살았던 어린 내가 처음으로 공부 외의 가치를 인정받았던 것 같은 순간이었는데. '너는 그 자리에 있을 자격이 없어.'라는 뿌리 깊은 내면의 목소리, 자기 비난. 남이 나를 어떻게 볼지, 타인의 시선에 전전긍긍하던 기억.
그러고 보면 희한한 일이다. 초등학교 4학년 때 담임선생님은 지금까지 내게 별다른 기억으로 남아있지 않았다. 초2, 3 때 나를 편애하던, 공부를 빡세게 시키던 선생님과 헤어진 후 초4 담임선생님은 나를 특별취급 하지도, 공부를 달리게 해서 내가 유능함을 뽐낼 기회를 주지도 않았고, 나는 늘 그게 아쉬웠다.
그런데 가만히 돌아보니, 이 선생님은 내게 다른 것을 경험할 기회를 많이 주었다. 운동회 치어리더를 하게 한 것도, 풍금 반주자로 뽑은 것도 이 선생님이었다. 내게 강렬한 인상을 주었던 장면이 하나 있는데, 내가 쉬는 시간에 혼자 엉터리로, 가사랑 음정을 막 바꿔서 아무렇게나 콧노래를 부르고 있었는데, 정신을 차리고 보니 그 선생님이 나를 매우 사랑스럽다는 눈으로 쳐다보고 계셨다. 나는 그게 매우 당황스럽고 이상한 기분이 들었으나, 그 시선이 마음속에 따스하게 스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