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언제나 글쓰기가 재미있었다. 머릿속에서 말이 넘쳐흘러서 손으로 자판을 두드리기 급급했다. 나는 그것을 '글내림'이라고 불렀는데, 그런 상태에서는 아무리 길고 정성 들인 글 한 편도 쓰는 데 삼십 분이 채 걸리지 않았다.
물론 쓰고 싶지 않을 땐 굳이 쓸 필요가 없었으니 더욱 재미있었겠지. 사람들이 글이 안 써진다고 할 때, '안 써지는데 왜 쓰려고 하지?'라는 소박한(?) 의문을 가지기도 했다.
나는 요새 글이 잘 써지지 않는다. 정확히 말하면, 말이 흘러넘치지 않는다. 기껏 브런치 작가가 되었는데, 갑자기 왜? 글쓰기는 유사 욕망이었나?
그런데 쓰고 싶기는 하다. 손가락으로 자판을 두드려 내 생각을 적확하게 표현하는 단어나 문장을 문자로 형상화할 때 느껴지는 쾌감, 흡사 과녁을 맞히는 것 같은 그 짜릿함을 느끼고 싶다. 그러니 종종 똥 마려운 강아지 같은 느낌이 든다. 변비가 이런 건가?(과민성 대장이라 일평생 변비 경험을 해본 적이 없다. ㅎㅎ)
고민하던 차에 문득 처음 피아노 학원에 갈 때의 일이 생각났다.
초등학교 2학년 때, 한 동네에서 같이 나고 자란 친구가 어느 날 '얼마 전부터 피아노 학원에 다닌다'라고 말했다. 그런가 보다 했는데, 곧이어 나도 엄마 손에 이끌려 같은 학원에 가게 되었다. 주택가의 어느 담장 너머로 딩동 딩동 소리가 들려오고 있었다. 가정집을 개조한 곳이었는데, 좁은 방마다 피아노가 한 대씩 들어차 있고, 사람 두엇 들어갈만한 공간만 있었다. 나는 그 좁은 공간이 숨 막힌다기보다는 아늑하다는 느낌을 받았다.
피아노 앞에 처음 앉아 손가락으로 건반을 하나하나 누르자 소리가 났다. 신기했다. 선생님은 '손가락이 길어서 피아니스트를 해도 되겠다'며 칭찬했다. 으쓱했다. 서투르지만 처음 내 손으로 '학교종이 땡땡땡'을 완주하면서 느꼈던 성취감.
바이엘 상, 하권이 끝나고 체르니 100번으로 들어가자 상황이 조금 달라졌다. 선생님은 매일같이 체르니와 하농 연습을 끝낸 다음에는 '엘리제를 위하여'만 반복해서 치게 했다. 처음에 아름답게 들렸던 도입부의 '띠리리리 띠리리리리~' 하는 선율은 이내 지겨워졌다. 같은 구간을 끝없이 되풀이하면서 손에 익히도록 연습하던 순간들. 왜 그렇게 한 곡만 죽어라 쳐야 하는지, 하농같이 재미도 없는 음들을 왜 계속 만들어내야 하는지 의문이었다. 처음에 칭찬만 하던 선생님도 이제는 엄한 얼굴을 하고 몇 번씩 '다시!'를 외치며 매섭게 훈련시켰다. 내가 과연 재능이 있는 걸까, 지금 왜 이러고 있나, 회의가 들었다.
그럼에도 나는 그저 묵묵히 손을 놀렸다. 얼마 뒤 '엘리제를 위하여'로 대회에 나갔고, 상을 탄 순간 그 모든 순간들의 의미를 알 수 있었다.
아하 알겠다. 지금은 그때와 같구나. 나는 지금 단순한 '흥미'를 넘어서서 '훈련'의 영역에 들어가고 있나 보구나. 머릿속에서 글이 폭포수처럼 터지지 않아도, 똥 마려운 강아지 같은 기분을 견디며 그저 쓰다 보면, 예전에는 엄두도 못 낸 고난도의 곡을 연주할 수 있게 되는 것처럼 새로운 글쓰기 세상이 열릴지도 모르겠구나.
그러니 쓰자. 피아노는 결국 이사를 핑계로 그만두었지만, 성인이 된 다음에 얼마나 후회했던가. 글쓰기는 그러지 말자. 무엇보다도, 쓰고 싶은 마음은 여전하니까.
ps. 글쓰기에 관한 글들을 여럿보다 보면 공통적으로 하는 조언들이 '매일 써라'였다. 열정은 중요하지 않으니, 그저 매일 쓰라고.
나는 고민되었다. 브런치는 독자를 전제로 한 매체이다. 누군가 읽어주기를 바란다면, 읽어줄 만한 글을 써야 한다. 객관적으로 잘 쓴 건 아니라도, 내가 정성을 들이고 만족스러운 글. 내 일기장에나 어울릴 법한 것 말고, 적어도 남이 읽는 시간과 에너지를 들일 만한 가치가 있는 글.
그러나 매일 쓰면 그런 퀄리티의 글을 매번 뽑아낼 수는 없다. 어쩌지? 하다가 갑자기 무릎을 쳤다.
그래. 매일 쓰라고 했지, 매일 발행하라고는 안 했다. ㅋ 쓰다가 내 맘에 드는 것만 발행하면 되지 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