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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밍이 Feb 17. 2021

지인들만 보는 브런치도 소용 있나

글쓰기의 선한 영향력

"진심으로 축하드립니다. 소중한 글 기대하겠습니다."


브런치 작가로 선정되었다는 메일을 받고, 곧바로 떠오른 뇌내 망상이 있다.


실명을 숨기고 주위 사람들 모르게 글을 쓴다 → 브런치에서 인기를 얻고, 수많은 독자가 생긴다 → 출판사로부터 출간 제의를 받는다 → 종이책으로 출판했는데, 서점가를 강타! 누구나 알만한 베스트셀러가 된다 → 지인들이 알게 되어 깜짝 놀란다


물론 망상이 떠오른 지 10분도 되지 않아 나는 여기저기 단톡방과 카페를 들락거리며 "저 브런치 작가 되었어요! 시간 나면 오셔서 구독과 라이킷 좀 눌러주셈." 하고 떠벌이고 다녔다. 쪼까 부끄럽지만 그래도 기쁨을 숨길 수가 없어서. 어쨌든 이런 '한푼줍쇼' 식의 공격적 마케팅(?) 덕분에 작가가 된 첫날, 내 지인들로 이루어진 스물댓 명의 구독자가 모였고, 그들을 상대로 글을 쓰기 시작했다. 


처음 한 두 주 동안은 글 몇 개가 다음 메인에 연달아 걸리면서 수 만 명이 내 글을 읽는 기쁨을 맛보았고, '이러다 나 진짜 대박 나는 거 아니야?' 싶었다. 하지만 곧이어 그 일회성의 조회수가 구독으로 연결되지는 않는 걸 깨달았고, '브런치가 신진 작가를 밀어주기 위해 다음에 걸어준다'는 사실을 알고 나서는 '내 글이 좋아서 그런 게 아니었구나' 하고 묘한 실망감을 맛보기도 했다. 


게다가 브런치와의 허니문 기간이 끝나고 난 뒤로는 그 일회성의 높은 조회수마저 다시 볼 수 없게 되었다. 애써 쓴 글이 저어기 밑바닥에 묻히는 것 같은 느낌이 들 때에는, '어차피 내 지인들만 보는 브런치가 무슨 의미지? 이럴 거면 단톡방이나 자주 가는 카페에 올리는 게 낫겠어.'라는 마음이 들기도. 애초에 내 글은 나 자신에 대한 것, 작가 신청을 할 때에도 '내가 유명 작가나 셀럽도 아닌데, 나에 대한 글을 누가 본다고.' 하며 자신 없어했던 것이었기 때문에. 


photo by sergey-norkov on unsplash


그러던 도중 지인들로부터 한 둘씩 카톡 메시지가 오기 시작했다. 먼저 '선생님, 나한테 왜 그랬어요?'를 본 친한 언니가 공감의 뜻을 전해왔다. 나처럼 모범생의 삶을 살아왔기에 마음에 닿았던 것 같다. '스몰리스트의 삶-다이어트'를 본 다른 언니는 '폭식 습관 나도 있다'며 위로받았다고 말했다. '고구마는 고구마일 뿐인데'를 보고 엄마에 대해 다시 생각해 보게 되었다는 직장선배님, '아이보다 남편 먼저?'를 보고 남편한테 좀 더 잘해주어야겠다고 말한 친구들, '코로나와 방학과 무수리의 기묘한 생활'을 보고 나도 팍팍한 생활의 기쁨을 찾아 꽃배달을 받기 시작했다는 지인들도 글을 잘 보고 있다고 응원해주었다.


그래. 애초에 작가가 되고 싶어서 쓰기 시작한 것도 아닌데, 내 지인들만 본다고 실망할 게 무어냐. (추세경 작가님의 프로필 문구처럼) 나를 위한 글이 당신에게도 위로가 되면 그보다 만족스러운 일이 어디 있다고. 쓰면서 내가 위로받고, 읽으면서 당신이 위로받으면 그걸로 충분하다. 내가 힘들었던 일을 보며 당신이 '나와 같은 사람이 또 있구나'라고 안도하고, 내가 잘 해낸 이야기를 보며 당신이 '나도 한 번 해볼까' 하는 마음을 먹게 되면 정말 기쁘겠구나. 


나는 늘 하나님의 축복의 통로로 사용되기를 바랐다. 그러면서 막연히 기대했던 이미지는 뭔가 대단한 인물이 되어 남들 눈에 띄는 큰 성과를 내는 것이었다. 그것이 선한 영향력이라고 믿었다. 그러나 물컵에 물이 꽉 차면 흘러넘치듯이, 넘친 물이 가장 먼저 컵 주위를 적시듯이, 은혜는 나를 꽉 채우고 넘친 다음 내 주변 사람들에게 제일 먼저 흘러가는 것이로구나. 



ps. 나는 어릴 때부터 뭔가 목표를 정하고 그것을 이루는 삶을 당연하게 여기며 살아왔고, 그러면서 많은 성취를 했으나 과정을 즐기는 법을 깨우치지 못했다. 글쓰기는 내게 잃어버린 즐거움을 깨닫게 해 주는 도구이기도 하다. 매일 나 자신에게 '오늘은 글을 쓰고 싶은지' 묻고, 쓰고 싶을 때 쓰고 싶은 만큼 쓰면서 즐기고, 남에게 보이고 싶은 것만 발행하고, 그다음 조횟수나 구독자수에는 신경 쓰지 않는 것. 마지막 단계가 영 힘들단 말이야. ^^;

  

ps 2. 이 글을 쓰는 시점에 구독자수가 70명 이상으로 늘었다. 절반 이상은 모르는 분들. 브런치라는 거대한 글 바닷속에서 나의 글을 건져주신 그분들께 매우 감사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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