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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밍이 Mar 15. 2021

브런치북이 뭐길래

며칠 전 저녁, 나의 첫 브런치북을 발간했다.

https://brunch.co.kr/brunchbook/mychoi-1


고심해서 제목을 고르고, '아무래도 존댓말로 하는 게 해 보이겠지'라고 생각하며 책 설명을 써넣고, 목차를 이리저리 바꿔보기도 하고, 핸드폰 사진첩을 뒤져서 표지에 넣을 사진을 찾고(예쁜 일러스트 넣는 분들은 어디서 구하시는 건가요? ㅠㅠ), 마지막으로 잠시 망설이다가 발행! 버튼을 눌렀다.


그리고 두근거리는 마음을 안고 무언가 일어나기를 기다렸다.


조금 있다가 지지~ 하는 브런치 특유의 이단 진동 알람이 울렸다. 시샘님의 라이킷이었다(알라뷰~).

기쁘고 감사한 마음을 진정시키며, 다시 무언가 일어나기를 기다렸다.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한동안 가만히 있다가, 문득 내 브런치가 독자들에게 어떤 식으로 공개되는 건가 궁금해졌다. 메뉴를 이리저리 찾아보다가 '브런치 책방'을 발견하고 가 보았지만 거긴 없었다. 출간된 책만 등록되는 모양이었다.


'찾기' 버튼을 눌러서 내 책의 제목을 넣어보았다. 그리고 직감했다.

내 브런치북은, 이대로 사장되겠구나.


글을 못 써서가 아니었다. 아마추어 냄새가 풀풀 풍기지만, 모든 글이 마음에 쏙 드는 것은 아니지만, 신명 나게 써 내려간 글들이었다. 나름대로 재미가 있거나, 메시지가 있거나, 가끔은 둘 다 있다고 자부하는 작품들도 있었다.


그런데 너무 많았다. '자기를 사랑하고, 일상에서 행복을 찾는 감성 에세이'. 너무 많더라. 내가 마흔이 넘어서야 간신히 깨달았던 메시지들을, 그래서 사람들에게 복음처럼 전하고 싶었던 그것들을 어쩜 다들 먼저 알고 있으시던지.


'나를 사랑하는 여행'이라는 제목은 너무 흔해 빠져서 그와 비슷한 책을 수백 개도 더 찾을 수 있을 것 같았다.


잠시 동안 제목을 더 자극적인 것으로 바꿔볼까(이를테면 '인생, 의무에서 축제가 되다! 어떻게?' 요렇게 쓰면 궁금하겠지. 껄껄) 고민했지만, 내 브런치북의 정체성을 가장 잘 나타내는 제목을 굳이 다른 것을 바꾸고 싶지 않았다. 그건 '나'가 아닌 것 같았다.


실망했다. 동시에 실망하는 나 자신에게 놀랐다. 그동안 브런치에서 '쓰기'를 주제로 한 글을 올릴 때마다, '팔리는 글보다 진정성 있는 글을 쓰고 싶다'라고(고작 브런치 작가입니다만,), '쓰면서 내가 위로받고, 읽으면서 당신이 위로받으면 그만이다'라고(지인들만 보는 브런치도 소용 있나) 말해왔다. 그런데 너는 왜 실망하는 거지?


여전히 그런 마음인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글을 쓰는 시간과 노력이 쌓일수록 자꾸만 더 큰 꿈을 꾸게 되는 나를 발견한다. 내 속에 있는 것을 최대한 다듬고 정제해서 완성된 작품으로 만들고 싶은 욕구.


그리고 그 결과물이 책이라는 형태로, 이왕이면 예쁜 일러스트 표지에 싸여서 서점 신간 코너에 전시되었으면 하는 것이다(일러스트 집착 중). 그러니 출판사에서 출간제의를 받기는커녕 투고를 해봤자 제대로 읽힐 것 같지도 않다는 생각이 드니 아쉬운 것이겠지.


글을 쓸 때마다 '취미에 불과하다, 작가를 꿈꾸는 것도 아니다'라는 말을 남발해 왔는데, 그것은 사실 나 자신에게 한 말이었나 보다. 점점 커져가는 욕구를 깨달은 무의식이, 그저 재미있어서 쓰기 시작한 때의 초심을 잃지 말라고 경고하는 것이었나 보다.


자아, 이제 나는 어떻게 해야 할까?

뭐, 별 수 있나. 계속 쓰는 수밖에. 늘 그렇듯 내 맘에 드는 글, 내가 쓰고 싶은 글을.


외부에서 인정받고 싶은 욕구가 들수록 본질은 나 자신임을 잊지 말아야 한다. 바깥으로 향하는 시선을 내 안으로 돌리고, 밑바닥부터 단단히 뿌리를 다지고 있는지 살펴야 한다. 그다음에 내가 쓰고 싶은 것과 사람들이 읽고 싶은 것의 접점을 찾는 것. 그 결과가 출간이든 아니든 그것은 내 영역을 떠난 것일 테다(물론 독립출판이라는 것도 있지만 그것은 나중에 생각하련다).


그 날 저녁 읽었던 무라카미 하루키의 <직업으로서의 소설가>라는 책도 내 생각이 맞다는 것을 다시 한번 확인시켜 주었다.


만일 당신이 뭔가 자유롭게 표현하기를 원한다면
'나는 무엇을 추구하는가'라는 것보다 오히려
'뭔가를 추구하지 않는 나 자신은 원래 어떤 것인가'를, 그런 본모습을,
머릿속에 그려보는 게 좋을지도 모릅니다.

'나는 무엇을 추구하는가'라는 문제를
정면에서 곧이곧대로 파고들면
얘기는 불가피하게 무거워집니다.
그리고 많은 경우, 이야기가 무거우면 무거울수록
자유로움은 멀어져 가고 풋워크는 둔해집니다.
풋워크가 둔해지면 문장은 힘을 잃어버립니다.
힘이 없는 문장은 사람을-혹은 자기 자신까지도- 끌어들일 수 없습니다.


인정받고 싶다, 인기를 끌고 싶다, 출간을 하고 싶다, 이런 생각들로 나의 문장에 족쇄를 채우지 말고, 언제나 그렇듯 가벼운 풋워크로 하고 싶은 이야기를 하자. 그러면 적어도 나 자신은 즐거울 테니.


언젠가 서점에서 자기 책을 발견하는 날이 오기를 고대하는 동료 작가님들께 행운을 빈다.



ps.  다행히 내 브런치북은 사장되지 않았다. 발행한 지 사흘 정도 되었는데 누적 조회수가 몇천 회에 달했다. 브런치에서 틈틈이 내 책을 홍보해 준 탓일까?(얼마나 자주, 오래 해 주는 건지는 알 수 없지만, 이왕이면 오래가길 빈다). 어쩌면 표지에 있는 맥주 사진이 주효했는지도 모른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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