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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밍이 Mar 24. 2021

나도 편집자가 있었으면 좋겠다

며칠 전 처음으로 초단편소설을 썼다.

https://brunch.co.kr/@mychoi103/61

https://brunch.co.kr/@mychoi103/64


다 쓴 다음, 글쓰기에 관심 있는 사람들이 모인 단톡방에 올리고 의견을 물었다.

"처음으로 소설 써 봤는데 어떤가요? 어떤 의견이든 환영합니다. ^o^"


모두들 입을 모아 한 목소리로 말했다.

"소설 같지 않아요."


히익!!!

물론 내 경험을 주된 소재로 쓴 것이지만, 군데군데 각색을 하고 허구의 부분을 집어넣었으니(어디일까요? ^^) 이것을 에세이라 하기는 어렵다. 굳이 작가의 의도를 밝히자면 자전적 소설이랄까.


소설처럼 보이지 않는 가장 큰 이유는 묘사가 부족하다는 것이었다.

사실 나도 알고 있었다. 그래서 묘사를 넣어보려고 했지만 잘 되지 않았다. 물론 내 필력이 딸리는 것이 가장 큰 이유지만, 사실은 묘사를 하고 싶지 않았다. 왜?


나는 그 소설을 내가 '글내림'이라고 부르는 상태에서 썼다. 첫 문장부터 끝 문장까지 거의 쉬지 않고 내달리면서 짜릿한 기쁨을 맛보았다. 완성된 글은 (객관적으로 잘 썼는지와 상관없이) 내 맘에 쏙 들어서 한 군데도 고치고 싶지 않았다. 같은 날 다른 소설도 시도했는데, 그것은 쓰다 멈추고, 쓰다 멈추면서 고심한 것과 비교되었다. 


그러니 '아무래도 소설로서의 묘사가 부족한데'라고 자각하고 덧붙이려고 해 봤자 잘 되지 않는 것이다. 대치동의 노후된 아파트가 어떤 모습인지 묘사하려고 해도 '대치 은마 썩음썩음한 거 다 알지 않나.' 하면서 심드렁. 내 재미는 이미 완성되었기에. 


또 하나는, 굳이 소설의 형식을 차용하는 글쓰기를 시도하는 이유가 지인들을 보호하기 위해서이기 때문이다. 나에 대한 글을 쓰다 보면 의도치 않게 내 주변의 사람이 등장하게 되는 경우들이 왕왕 있다.


가능하면 그들이 누구인지 드러나지 않게 하기 위해서 그들의 특징을 이리 비틀고, 저리 비틀고, 잘게 나누었다가 다시 합치는 작업을 하면 더 이상 실존인물이라고 부르기 어렵기 때문에 할 수 없이(?) 픽션이 되어 버리는데, 거기에 묘사를 자세히 붙이면 그 의도가 실종된다. 내가 살았던 숲세권 아파트를 자세히 묘사하면 어느 동네인지 특정되어 버리니 두루뭉술하게. 그렇다고 다른 동네로 취재를 나갈만한 열정이 있는 것도 아니고.


뭐, 결국 나는 아직까지 '나를 위한 글쓰기'의 단계에 머물러 있는 것이다. 단톡방의 어느 현자님 말씀처럼 '글쓰기가 취미를 넘어서려면, 내가 재미없어도 독자에게 필요한 글을 엉덩이 붙이고 써야' 하는데 그게 안 되는 것. 그냥 주어를 '나'에서 '그녀'로 바꾸는 것만으로는 한참 멀었다는 말씀.


암튼 사람들의 애정 어리면서도 냉철한 조언을 받으니 정신이 번뜩 나면서 나의 현재를 깨닫게 되니 참 좋다.


그리고 엉뚱하게도 '내게도 (매일같이 이런 쓴소리를 해 줄) 편집자가 있었으며 좋겠다'는 바람이 든다. 조용한 카페에서 커피잔을 사이에 두고 마주 앉아, 내 A4 원고에 빨간펜으로 x표를 좍좍 그리며 "여기부터 여기까지는 엉망이에요. 다시!"라고 말하는 호랑이 같은 편집자. 그 앞에서 공손히 머리를 조아리며 원고를 받아 드는, 양처럼 순한 신인 작가인 나.


언젠가 그런 날이 오려나? ^^



ps. 문득 떠오르는 과거 일 하나. 

예전에 일 년 정도 시험공부를 한 일이 있다. 

그 분야에 관해 알고 싶어서 시작한 공부라 시험을 주된 목적으로 하고 싶지 않았다. 순수하게 앎의 기쁨을 누리고 싶었다. 하지만 그렇다고 당락에 초연한 것은 아니었다. 꼭 붙고 싶었고, 그래야 했다.


그래서 나는 일 년 중 처음 9개월은 내가 공부하고 싶은 부분을 내 맘 내키는 대로 공부했다. 어디까지나 나의 즐거움을 위해. 그리고 뒤의 3개월은 철저하게 출제자의 의도에 맞추어 공부했다. 내가 출제자라면 뭘 알기를 원할까, 어느 부분에서 무슨 문제를 낼까 상상하면서. 그 결과 재밌게 공부하면서 시험에도 합격했다.


이것이 글쓰기에도 통용될까? 나의 즐거움, 너의 즐거움, 우리의 즐거움을 위해.


photo by avel-chuklanov on unsplas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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