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수리 생활, 이대로 괜찮은가
나는 지금 기묘한 생활을 하고 있다.
코로나 시국에 아이 방학을 맞이하여, (사람을 고용하지도 못하고, 시댁이나 친정에 자주 맡기기도 못한 채) 재택근무에 연가까지 끌어모아 최대한 집에 있으려고 노력하는 중이다.
그런데 우리 회사는 집에서 회사 전산망에 접속이 되지 않는다. 다행히 육아기에 있는 직원들을 대상으로 한 가상 pc를 사용할 수 있지만 이것은 야근용이다. 말 그대로 야근하거나 주말출근을 해야 할 일이 있을 때 쓰라는 것이라, 정규 근무시간에는 접속이 안된다(야근용 pc를 제공하는 회사라니, 무시무시하지 않은가!). 고로 내가 일할 수 있는 시간은 아침 9시 전과 오후 6시 이후. 그래서 나는 재택근무를 하는 날이면 아침, 저녁에 눈코 뜰 새 없이 바쁘고, 낮에는 강제 휴식행이다.
휴식이 주어졌다고 즐겁냐 하면 그것도 아니다. 아이와 있는 시간에는 쉴 새 없이 아이의 부름에 응해야 하고, 아이가 학원 간 시간에나 겨우 쉴 수 있는데, 학원 수업이 끽해야 한 시간이라 픽업 시간을 고려하면 한 번에 주어지는 자유는 고작 50분 정도. 코로나 때문에 학원을 많이 보내기도 그렇고, 그게 아니더라도 우리 집 귀한 아들내미는 애초에 학원 뺑뺑이 따위는 온몸으로 거부하시는지라 그 자유의 시간도 하루에 얼마 되지 않는다.
그래도 얼마 전까지는 괜찮았다. 아이가 푹 잠자는 밤늦게나 새벽시간에는 내 일에 집중할 수 있었으니까. 하지만 초등학교 2학년이 되도록 생활습관이 영 잡히지 않은 아이가 걱정되어 최근에 육아 코칭을 신청했는데, 코치님이 내게 주신 처방에 따르면 저녁에는 가족끼리 신나게 논 다음, 아이를 일찍 재우고 일찍 깨우라는 것이었다. 방학이라고 늘어지지 말고. 나는 아이를 재우다 잠들기 일쑤여서 오전에 아이가 늦잠 잘 때 주로 내 볼일을 보는데, 코치님 처방에 따르면 온전히 아이와 함께 잠들고 눈뜨는 생활을 해야 했다.
그런 고로 나는 지금 한 시간 단위로 파편화된 하루를 보내고 있다. 일할 시간이 부족한 것은 이전에 해 놓은 일이 많아서 적당히 커버가 되지만, 이렇게 끊임없이 쪼개진 시간 단위의 생활을 하다 보니 머리가 어질 하다. 내가 뭘 하고 있는지 모르겠다.
엊그제 아침에는 아이가 친구와 놀이터에서 만나기로 했다길래 데려다주는데 "**(친구) 엄마도 안 왔으니까 엄마도 가도 돼!"라고 은혜롭게 말씀하시는 바람에 한 시간의 여유가 생겼다. 덩실덩실 춤을 추며 돌아오다가 잠깐 슈퍼마켓에서 장을 봤는데, 장 봐온 식재료를 잠깐 손질한다는 것이 한 시간이 훌쩍 넘어버렸다. 아우, 아까워라. ㅠㅠ
그래도 뭐... 어쩌겠어. 코로나는 지나갈 것이고, 아이도 훌쩍 클 것이다. 입사 이래 처음 맞이하는 재택근무도 은혜라면 은혜인 걸(이전에는 아무리 일이 많아도 사무실에서 온전히 처리해야만 했다). 훗날 돌아보면 '그래도 그때는 집에서 일할 수 있었지. 아이와 하루 종일 부비부비 할 수 있었지.' 하며 아쉬워질지도 모르지. 파편화된 생활의 스트레스는 ('아이와 한바탕 한 후'에서 쓴 대로) 꽃과 커피와 디저트로 날려버리며, 오늘도 달린다, 무수리!
* 정신없는 하루에 적응하는 나만의 노하우
시간 단위의 삶을 살 때의 스트레스는, 한 번에 집중할 수 있는 시간이 짧은 것도 있지만, 그 시간에 뭘 하지?를 생각하는 것만으로도 많은 에너지가 소비되는 데다가 그 생각을 하고 있으면 이내 시간이 지나가 버려서 아무것도 할 수 없게 되는 것이다.
그래서 할 일 목록을 중요도 순으로 적어두고, 시간이 비면 그 목록을 기계적으로 처리한다.
쓰고 보니 딱히 노하우라 할 만한 것도 아니네. ^^; 뭐... 실천이 중요하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