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밍이 Jan 20. 2021

아이와 한바탕 한 후

나를 위한 치유의 시간

오후 2시 반.

아이를 학원 차에 태워 보내고 동네 카페에 가서 카페라떼를 주문했다. 커피 드립이 취미이지만, 내가 내려놓고 다 못 마시는 커피가 처치곤란이지만, 가끔은 남이 만들어 주는 커피를 먹고 싶을 때가 있다. 그럴 때 종종 가는, 내게는 참새방앗간 같은 카페. 이름도 무슨무슨 방앗간이다.


항상 하던 대로 "라떼에 우유 많이 넣어주세요."라고 말했다. 위가 안 좋은 나에게 사실 커피는 독이나 마찬가지지만, 온종일 직장일과 육아에 시달리는 날이면 카페인 없는 인생이 상상이 가지 않는다.


대신 우유를 많이 많이 넣어달라고 부탁드리고 야무지게 쿠폰을 내밀어 도장도 받아 챙겼다. 쇼케이스에 있는 미니 초코파이가 눈에 띈다. 단 것은 자제하려고 애쓰는 중이지만 오늘 같은 날은 먹어줘야지.


아이를 학원 차에 태우기 전에 결국 화를 내고야 말았다. 항상 시간 맞춰 준비하는 법이 없는 아이와 시간에 늦는 것을 유독 싫어하는 나는 아이를 학교에, 학원에 보내기에 앞서서 늘 실랑이를 한다.


아이들이 그렇지 뭐... 라고 남의 아이에게는 잘도 생각할 수 있는 상황이지만 내 아이라면 얘기가 다르지. 이 닦아라, 옷 입어라, 가방 챙겨라, 숙제했니.. 언제나 끝없이 이어지는 체크리스트와 매 항목마다 일일이 늑장을 부리는 아이 덕분에 진이 빠진다.


이럴 때 육아전문가들은 입을 모아 말하겠지. 평소에 엄마와 아이의 관계를 돈독하게 하라고. 아이가 엄마를 좋아하면 자연스럽게 말을 잘 듣게 된다고.


나도 안다, 알아. 하지만 그게 쉽니. 꼭두새벽에 일어나 남들 출근도 하지 않은 시간에 부랴부랴 사무실에 나가서 할 일을 마쳐놓고, 후다닥 집에 와서 아이를 돌보고, 짬짬이 밥을 하고, 집안일을 하고. 내가 몸이 열 개라도 부족하다고. 워킹맘이 죄인이냐. 아이와의 시간은 다시 오지 않는다는 거, 나도 알아. 그래서 지금 남의 손에 맡기지도 않고, 학원 뺑뺑이도 돌리지 않고 이렇게 노력하는 중인걸.


누구에게랄 것도 없는 푸념을 하면서 글을 쓰고 커피를 마신다. 지금이 치유의 시간이다.


얼마 전부터 꽃배송을 받아보기 시작했다. 오직 나를 위해. 아이와 남편을 챙기면서 가끔 딸과 며느리의 도리도 해 가며 살다 보면 나는 누가 챙겨주나. 별 수 없이 내가 챙길 수밖에.


고소한 커피 향 한 번 맡고, 초코파이 한 입 베어 물고 혀 끝에서 느껴지는 단맛에 집중한다. 우물우물 씹다가 라떼 한 모금과 함께 꿀꺽 삼키면서 카네이션과 폼폼, 그 밖의 이름 모를 꽃들을 바라본다. 오감이 충족되는 시간. 삶의 미학이 이런 거지.


다시 마음속에서 평안함이 솟아나 온몸으로 퍼져나간다. 남은 하루는 더 평온하게 마무리할 수 있을 것 같은데.


어이쿠! 좀 있으면 아이가 돌아올 시간이네. 오면 미안하다고 말하면서 웃어줘야겠다.



이전 08화 나를 위한 공간 찾기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