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끈해서 대번에 반박하는 댓글을 달았는데, 그러고 나서 신기하게도 조금 있다가 마음이 가라앉았다. 괜히 발끈했나 싶어 머쓱하기도 하고, '혹시 반찬가게 사장님이세요?' 하는 엉뚱한 생각도 들었다. ^^ 예전 같으면 이 정도 사건에 하루는 족히 화를 내었을 텐데.
어릴 때부터 내 감정을 들여다본 적이 없었다. 감정이란 게 중요하다고도 생각하지 않았다. 언제나 have to, 그 날 내가 해내야만 하는 일에만 골몰해 있었다. 어린 밍이, 사춘기의 밍이, 성인이 된 밍이가 느꼈던 온갖 감정은 그 자체로 받아들여지기는커녕 존재조차 무시당했다.
그러다가 가끔씩 안 좋은 일이 생기면 버럭! 하고 화를 내었다. 내가 다혈질이라 그래... 라고 합리화했으나 가끔씩 나의 화는 도를 넘었다. 왜 그렇게 화가 나는지 스스로도 알 수 없었다.
그러다가 '엄마들이 글을 써야 하는 이유'에서 쓴 것처럼, 온라인 코칭 모임을 통해 약 반년 전부터 감정 일지를 쓰기 시작했다. 첫날부터 온갖 부정적인 감정들이 문장을 타고 쏟아져 나왔다. 내 안에 이런 것들이 있었나, 나 자신도 놀랐다.
내가 무시하고 억눌렀던 감정들은, 억누를수록 사라지는 게 아니라 도리어 커져서 나의 심연을 떠돌며 부글거리다가 터질 구멍만 보이면 튀어나왔구나. 도를 넘는 화는 그 순간 벌어진 그 일만이 아니라, 해결되지 않은 이전의 일들이 한꺼번에 연상되어 그 몫까지 더해진 화라는 것을 알아차렸다.
몇 달 동안 감정일지를 쓰면서 일평생 쌓아온 감정을 분출하고 나자 거센 파도 같던 화가 잔잔한 바람 정도로 바뀌었다. 그러고 예전에 비해 훨씬 화를 덜 내는 사람이 되었다.
코치님의 말씀이 맞았다. '감정은 e-motion, 밖으로 나오는 움직임이에요. 나오려는 아이를 모른 척하거나 누르면, 그 애가 어디로 가겠어요? 감정이 대단한 걸 필요로 하는 게 아니에요. 알아차려 주는 것, 그리고 수용해 주는 것, 그게 다입니다.'
https://images.app.goo.gl/gLw55zqdDex5HdSy7
악플에 대한 나의 댓글, 거기에 다시 긴 답글이 달렸다. 눈에 띄는 부분이 있었다. '친정어머니한테서 독립하기 전에 육아나 가사를 어떻게 다루었는지 짐작이 간다. 그게 원래 본인의 일인데...'
육아는 부부의 일, 가사는 가족의 일이지 '나의 일'이 아니고, 내가 어떻게 해서 친정엄마에게 육아와 가사를 맡기게 되었는지 그 유구한 역사를 굳이 설명할 필요는 없지만, 이번에는 일면 이해가 되기도 했다. '내 글이 자기 일을 친정엄마한테 떠넘기고 이제 와서 힘들다고 우는 소리 하는 철없는 워킹맘의 투정으로 읽힐 수도 있겠구나' 싶었다.
어디까지나 취미로 하는 일개 브런치 작가일 뿐이지만 독자를 전제로 한 매체에 글을 쓰고 있으니 나름 컨텐츠 제작자라고 볼 수도 있는데, 근거 있는 악플이라면 돈을 주고도 사야 할 귀한 경험이라는 생각도 든다. 내 발전을 위해서 필요한 부분을 취사선택할 수 있으니. 그런 생각으로 나아갈 수 있는 것도 내 감정을 먼저 충분히 인정해줬기 때문이겠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