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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밍이 Mar 24. 2021

놀이터 죽돌이의 사회성

아이 친구는 만들어 주는 걸까

유치원에 입학한 다섯 살 무렵, 아이는 매일 같이 친구랑 놀고 싶다고 타령을 했다. 하지만 유치원 입학에 맞추어 이사를 했기에 우리는 그 동네의 이방인이었다. "시간 되면 같이 놀래?"라고 부를 만한 친구가 전무했다.


처음에는 '놀이터에 나가면 친구를 사귈 수 있겠지'하고 쉽게 생각했다. 그런데 희한하게도 그 동네 놀이터 아이들은 자기가 아는 친구들하고만 놀았다. 모르는 아이는 아무리 옆에서 기웃거리며 말을 걸어도 끼워주지 않았다. 하필 우리 단지에만 유치원 같은 반 친구가 없어서 놀이터에서 아는 얼굴을 찾아볼 수가 없었다.


한동안은 아이가 어떻게 하는지 팔짱을 끼고 뒤에서 지켜보기만 했다. 아이는 제 나름대로 열심히 머리를 굴려서, 집에 있는 귀한 장난감들을 들고 나와 놀이터 바닥에 늘어놓고 "얘들아, 이리 와 봐! 나 신기한 거 있다!" 하며 소리쳤다.


그때마다 아이들은 잠깐씩 모여들었다가 장난감을 한두 번 만져본 후 이내 가버렸다. 가끔 영악한 아이들은 "나 이거 빌려도 돼?"라고 말한 다음 아이의 장난감을 손에 들고 쌩~하게 뛰어갔다. 빈 손으로 혼자 남겨진 아이가 측은해서 나도 마음이 쓰렸다.


'좀 있으면 사귀겠지. 엄마가 친구까지 만들어주는 건 너무 오버 아니야?'라고 생각했지만 시간이 갈수록 아이는 위축되기만 했다.


가만히 살펴보니 단지 내 같은 유치원 친구가 없어서 그런지 단지 놀이터에서뿐만 아니라 유치원에서도 더 못 끼는 것 같았다. 유치원 끝나고 같은 단지에 사는 친구들이 삼삼오오 모여서 걸어가는 것을 보는 아이는 늘 부러운 표정이었고, 잘 때면 옛날 동네로 돌아가고 싶다며 그리워하기도 했다.


아무래도 안 되겠다. 다섯 살 아이에게 자발적인 사회성을 기대하는 것은 무리인 것 같아. 내가 나서야겠어.


photo by power-lai on unsplash


나는 유치원 같은 반에서 친구를 만들어 주기로 결심하고, 하원을 위해 길고 긴 대기줄을 선 엄마들을 먼저 살펴보기 시작했다. 나와 성향이 맞을 만한 사람들에게 조금씩 말을 걸어 친해지고, 별 볼 일도 없는데 일이 있는 것처럼 꾸며서 하원할 때 그 엄마들이 사는 단지까지 따라다녔다.


속으로는 이렇게까지 해야 하나 싶었지만 별 수 없었다. 다른 사람들은 이미 그 동네에 오래 살아서 서로 친한 것처럼 보였다. 내가 먼저 붙지 않으면 알아서 나를 끼워줄 것을 기대하기는 어려웠다.


그리고 조금 지난 다음에는 엄마와 아이를 집에 초대해서 좀 더 돈독한 관계를 맺는데 집중했다. 한 번에 여러 명을 초대하면 이미 친해진 아이들끼리만 놀 것 같아서, 잘 모르는 엄마와 두세 시간을 독대하는 괴로움(?)을 참고 견디며 한 번에 한 아이만 초대했다. 이왕 이렇게 된 거 나도 마음을 열고 내 친구를 사귀어 보자는 태도로 대했더니 의외로 쉽게 친해질 수 있었다.


그리고 결국 마음 맞는 엄마들끼리 방과 후 공동육아그룹을 결성하기에 이르렀다. 매일 유치원이 끝난 후 함께 텃밭으로, 개천으로 다니며 아이들을 놀게 했다. 아이는 그 시간을 좋아했다. 자연에 딱히 흥미가 있지는 않았지만 친구들과 노는 것이 행복한 듯했다. 그 그룹은 여름방학이 지날 때까지 이어졌다.


2학기는 비교적 수월했다. 다섯 살 아이는 하루가 다르게 부쩍 크더니, 2학기 때에는 같은 반에서 스스로 친구를 사귀었다. 성격과 취향이 비슷한 친구였다. 그래서 1학기 때에는 공동육아모임을 중심으로 누구든 가리지 않고 최대한 많이 만나게 했다면, 2학기 때에는 아이가 친하고 놀고 싶어 하는 친구들을 위주로 약속을 잡고 만났다.


아이가 여섯 살이 되자 나는 다시 직장에 복직을 하는 바람에 예전처럼 평일에 아이 친구 엄마들과 만날 수가 없었다. 약속은 주말에 몰아서 잡고, 평일에는 아이를 돌봐주시는 친정엄마에게 최대한 놀이터에 많이 데리고 나가 달라고 부탁드렸다. 일 년 동안 유치원을 다니며 친구들도 제법 생겼고, 그 무렵 동네 태권도 학원을 다니면서 아는 얼굴들도 많아져서 이제는 놀이터에 나가도 같이 놀 친구들이 많이 생겼기에 굳이 누군가와 약속을 잡지 않아도 괜찮았다.


아이는 여섯 살, 일곱 살 동안 내내 유치원이 끝나면 놀이터에 나가서 신나게 놀았고, 주위 사람들에게서 '놀이터 죽돌이'라는 별명을 얻었다.


지금 아이는 어디에 가서 누구를 만나든 처음 보는 사람들과 잘 어울린다. 먼저 다가가서 말을 걸고 금세 친해진다. 혼자 뒤처진 친구나 동생들도 잘 챙겨서 주위에 사람이 많이 모인다. 그래서 이사 온 동네의 엄마들로부터 '놀이터 젠틀맨'이라는 별명도 얻었다. 나는 지금 적어도 아이의 사회성이나 교우관계에 관해서는 고민하지 않는다.




여기까지 쓰고 나면 '내가 이렇게 열심히 해서 아이의 사회성이 좋아졌다'라고 결론을 내려야 할 것 같지만, 사실 잘 모르겠다.


물론 나는 죽어라 노력했다. 아이 친구 엄마들이랑 친해지려고 애쓰고, 매일 같이 공동육아를 했으며, 거의 일주일에 한 번은 집에 아이 친구를 초대해서 시중을 들었다.


하지만 내가 그렇게 하지 않았어도 아이는 시간이 지나면서 점차 유치원에 적응하고, 제 나름대로 친구를 사귀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도 든다.


'사회성 좋은 것은 타고난 성격이 아닐까, 오히려 아이에게 친구를 만들어 주려는 노력을 하다가 번아웃되기 전에 그 노력을 그저 내 아이를 보는 데에만 쏟는 것이 더 낫지 않았을까' 하는 후회도 가끔은 하곤 했다.


다만 내가 자신 있게 말할 수 있는 것은, 매 순간 아이가 무엇을 원하는지 살펴 보고, 가장 좋은 방법이 무엇인지 고민하면서 최선을 다했다는 것이다.


가만히 두었어도 결국 좋아졌을지는 몰라도, 아이가 친구를 원하면서 스스로 사귀지 못해서 힘들어하는 순간에 많은 친구들과 놀 수 있는 기회를 마련해 준 것이 아이에게 유익하게 작용했음은 틀림없다.


복직한 후에는 괜히 학원 뺑뺑이를 돌리지 않고 아이가 원하는 대로 최대한 놀이터에서 자유롭게 친구들과 어울릴 수 있도록 배려했다(물론 헌신적인 친정엄마가 계시기에 가능했지만).


가끔 내게 "소망이는 어쩜 그렇게 사회성이 좋아요?"라고 부러워하며 비결이 뭐냐고 묻는 사람들이 있다. 그리고 내가 어떤 노력을 했는지 아는 지인들은 가끔 내게 "저도 친구를 만들어 주어야 할까요?"라고 질문하기도 한다.


결국 그 대답은 아이가 무엇을 원하는지에 달려 있는 듯하다. 계속 애정을 가지고 지켜보면서, 엄마가 어떻게 도와주기를 원하는지 묻고 서로 소통하는 것. 그러면 아이가 원하는 것을 얻게 되든 아니든 그 자체만으로 아이에게 위로와 힘이 되지 않을까.


그리고 아이 친구를 만들어주기 위해 무리하면서까지 싫은 사람을 참을 필요는 없다. 나는 아이 유치원 3년 동안 정말 다양한 엄마들을 만났고 그중에는 아이들끼리의 관계에 상관없이 평생 함께 할 내 친구가 된 사람들도 있지만, 정말이지 두 번 다시는 마주치고 싶지 않은 사람들도 존재했다. 아마도 그냥 두었더라면 나와 큰 관계를 맺지 않고 스쳐 지나갈 사람들이었는데 괜히 친해지려고 애쓰는 바람에 반작용으로 더욱 싫어진 것이겠지.


혹시 그런 사람들 중에서 내 아이의 베프 엄마라서 매사 어쩔 수 없이 엮여야 하는 사람이 있다면 쿨하게 '비즈니스 관계'라고 생각하면 마음이 편하다. 줄 것 주고, 받을 것 받고, 필요한 경우 서로 협조하는 정도만 기대하는 것.


오늘도 아이의 건강이며, 학업에 대인관계까지 신경 쓰는 동료 엄마들에게 건투를 빈다.



ps. 요렇게만 마무리하면 아쉬우므로, '아이가 친구가 없는 것 같아 걱정될 때' 어떻게 하면 좋은지에 관하여 내 생각을 간단히 적어본다.


- 먼저 아이가 친구 없는 것을 힘들어 하는지 살펴본다. 힘들어하지 않는다면 그냥 냅둔다. 이 경우 사교성이 좋았으면 하는 것은 부모의 바램이지 아이의 희망이 아니다.


- 힘들어 할 경우, 아이에게 친구가 한 명도 없는지 본다. 이 경우 아이가 친구한테 접근하는 것을 어려워 한다면 집으로 한 명만! 초대해서 같이 놀린다.


- 한 두 명의 친한 친구가 있는데 더 많은 친구를 원한다면, 이것은 '인기인'이 되고 싶은 욕구에 가깝다. 먼저 아이에게 '세상 모든 사람들한테 사랑받을 필요는 없고, 지금 그대로도 너는 충분히 매력적인 사람이다'고 말해준다(그래도 아이가 아쉬워 할 경우에는, 친구들에게 인기를 끌 만한 특기가 있다면 계발할 수 있는 기회를 주는 것도 좋다).


- 같은 학교나 유치원 친구들이 많이 모이는 학원에 보내는 것은 도움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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