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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밍이 Feb 28. 2021

무한한 자유의 그림자

아이에게 규율을


아이는 모든 것이 풍부했다. 외동인 데다 친가에서는 장손, 외가에서는 첫 손주의 지위를 점한 아이는 원하는 것이 있을 때마다 힘들이지 않고 손에 넣을 수 있었다. 엄마에게 장난감을 사달라고 했다가 거절당하면 "그래? 그럼 할아버지한테 사달래야 지."라고 말하곤 했다.


아이가 무한하다고 생각하는 것은 자원뿐만이 아니었다. 자고 싶을 때 자고, 깨고 싶을 때 깼다. 그러니 '시간이 없다'는 말이 무엇인지 몰랐다. 학교 갈 시간, 학원 갈 시간이 다 되도록 좋아하는 만화책이나 동영상을 붙들고 있었다.


이렇게 된 데에는 엄마인 내 책임이 컸다. 어릴 때에는 자유로운 게 좋다고, 너무 많은 제약을 두면 안 된다고, 학교에 들어가면 시간관념 같은 건 저절로 생길 거라고 믿었다.


그 이면에는 훈육을 귀찮아하는 내가 있었다. 일 년의 육아휴직 기간을 제외하면 나는 항상 워킹맘이었고, 늘 밤늦게 퇴근했다. 피곤에 절어 친정엄마에게 아이를 맡기고 잘 살펴보지도 않았다. 나를 지극정성으로 길러낸 친정엄마가 아이도 어련히 잘 키우시겠거니 싶었다.


아이의 초등학교 1학년 입학을 앞두고 육아 독립을 선언하며 친정엄마를 보내드렸다. 단축근무를 신청한 건 아이의 학교생활을 보좌하기 위한 것이지 생활습관을 잡으려는 목적이 있었던 건 아니었다. 아이를 축구교실에 라이딩하고, 그 앞에서 엄마들과 티타임을 갖는 모습을 상상했다.


아마도 코로나 때문에 집 안에 틀어박히게 되지 않았더라면, 뭐가 문제인지도 모른 채 애를 이리저리 실어 나르고, 의미도 없는 관계에 힘을 쏟을 뻔했다.


오직 아이만 보게 되자 정신이 번쩍 들었다. 초등학교 1학년이라고 보기엔 매사 너무 어리고, 서툴렀다. 크면 저절로 잡힐 거라 믿었던 생활습관들은, 이미 충분히 큰 것 같은데 하나도 되어 있지 않았다. 마치 '대학 가면 살 빠진다'는 것처럼 허황된 믿음이었다. 살이 저절로 빠지는 게 아니라 빼야 되는 것처럼, 생활습관이란 크면 저절로 생기는 게 아니라, 더 커서 머리가 굵어지기 전에 잡아줘야 하는 것이었다.


무엇보다도 아이가 행복해 보이지 않았다. 풍족하고 자유로운 어린 시절을 허락하면, 넉넉하고 여유로운 사람으로 클 줄 알았더니 실상은 그렇지 않았다.


키즈카페에서 친구들이 2시간을 놀 때 아이에게는 3시간을 허락했더니 곧바로 4시간을 놀지 못한다고 아쉬워했고, 친구들은 거의 가지고 있지 않은 브롤스타즈 레온 캐릭터 모자를 사 주었더니, 곧이어 다른 버전의 모자가 나왔다며 갖고 싶어 했다.


마치 선악과를 제외한 동산의 모든 실과를 허락받고도, 왜 선악과를 주지 않냐며 따지는 아담과 하와를 보는 게 이런 심정일까 싶었다.  


photo by luca-upper on unsplash


어느 토요일, 먼 곳에 사는 아이 친구네 가족을 초대한 날이었다. 오후에 와서 3시간 머물다 가기로 했다.


나는 아침부터 땀을 흘리며 청소를 하고, 식사와 간식을 준비하고 있는데, 아이는 계속 뒤를 따라다니며 "엄마, 심심해. 친구 언제 와?" 노래를 불렀다.


슬슬 부아가 치밀어 오르는 것을 참고, 친구는 오후에 와서 3시간 있다 갈 거라고 말했더니 아이는 갑자기 화를 냈다. "그게 뭐야! 겨우 3시간밖에 못 놀잖아! 얼마나 기대했는데!"


이건 정말 아니지. 내가 너를 잘못 키웠구나. 나 자신이 한심해서 눈물이 나올 뻔했으나, 괜찮다고 토닥여줬다. 누구나 실수는 할 수 있어. 게다가 엄마는 처음이잖아. 나는 그저 아이의 행복을 바랐을 뿐인걸.


친구가 왔다 가고 나서 아이를 앉혔다. 평소와 다른 엄마의 모습에 아이도 슬며시 정자세를 하고 앉았다.


"소망아, 엄마가 잘못한 게 있어. 엄마는 소망이가 원하는 대로 해주면 소망이가 행복할 줄 알았어. 하지만 그렇지 않네. 주말에 친구를 집에 초대하는 것도, 장난감을 사는 것도, 보고 싶은 동영상을 보는 것도, 뭐 하나 당연한 건 없어. 그런데 소망이는 여태 그걸 당연하게 생각하고 누려왔으니, 조금만 모자라도 화가 나고 속상한 거야. 엄마가 미처 가르쳐주지 못해서 미안해. 앞으로는 기준을 세우고, 절제하는 법을 알려줄 거야."


"그럼 이제 맘대로 친구 못 불러? 장난감도 많이 못 사? 동영상은? 영어 동영상도 안 돼?"라고 묻던 아이가 단호한 내 표정을 보더니 울기 시작했다. 울면서 "제발 옛날처럼 해 주세요." 하고 싹싹 빌었다.


안 쓰던 존댓말까지 쓰고, 급했구나 짜식. 하지만 이제는 안 돼. 그게 너를 위하는 길이야.


마음이 아프기도 하고, 한편 웃기기도 한 기분으로 아이를 보고 있으니, 아이의 울음이 잦아들었다. 그 끝에 나직하게 "소망이가 놀부처럼 욕심을 부렸다가 모두 잃었어."라고 속삭이는 것을 보고 나도 모르게 웃음이 빵 터졌다.


그래, 너도 이제 받아들일 마음의 준비가 되었나 보다. 다행이야, 더 늦지 않아서.


아이를 불행하게 만드는 가장 확실한 방법이 무엇인지 알고 있는가?
그것은 아이가 모든 것을 가지는 데 익숙해지게 만드는 것이다....
거절에 익숙하지 않은 아이는 그가 원하는 것을 얻지 못하는 것보다
이런 거절에 더 큰 고통을 느낄 것이다.
-장 자크 루소-
<9시 취침의 기적>에서 인용함

자식을 망치고 싶어 하는 부모는 없다. 우리가 하는 대부분의 실수들은, 사실은 너무 사랑해서 저지른 것일 때가 많다. 사랑해서, 행복하게 해 주고 싶어서, 그게 좋아 보여서.


하지만 사랑하는 마음만으로는 부족하다. 제대로 사랑하는 법을 끊임없이 배워야 한다. 잘못된 길로 가고 있는지 계속 성찰하고, 돌이키는 것이 필요하다.


육아서에서는 입을 모아 '일관된 부모가 돼라'라고 말한다. 그러나 일관되게 잘못하느니 이리저리 흔들리면서 옳은 길을 찾는 편이 낫다.


아이를 하나의 인격으로 대하고, 우리가 아이와 성장의 과정을 함께 한다는 마음을 가지면, 아이에게 내 잘못을 인정하고 사과하는 것, 아이가 이해 가도록 충분히 설명하고, 함께 좋은 방향을 모색하는 것이 가능하다.


나는 그런 방식으로 아이에게 드리워진 무한한 자유의 그림자를 거두기로 했다.



[참고서적]

9시 취침의 기적(김연수)






https://brunch.co.kr/brunchbook/mychoi-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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