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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밍이 Mar 29. 2021

인스타 친구 -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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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s://brunch.co.kr/@mychoi103/79



며칠 뒤, 종종 받던 '좋아요' 대신 댓글이 달렸다.

- 피드가 참 좋네요. 소통해요.


피드는 뭐고 소통은 뭐지. 검색해 보고 사용자들이 올리는 게시물을 피드라고 한다는 것과 '소통해요'가 인스타그램의 유행어라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댓글을 단 사람은 차현을 팔로우하기도 했다.


그 사람의 계정을 찾아가 보니 풀메이크업을 하고 환한 웃음을 짓고 있는 여자의 사진이 나왔다. '안녕하세요. 레이나입니다. ^^'라고 쓴 소개글도 보였다. 교포인가?

  

게시물을 보니 차현과 비슷한 또래의 여자였다. 그녀의 피드는 주로 다이어트 얘기가 많았는데, 그중 단연 눈에 띄는 것은 '비포 & 애프터' 사진이었다. 비포를 올리다니! 차현은 그녀의 용감함에 감탄했다. 나는 할 수만 있다면 학창 시절 졸업앨범을 싸그리 모아서 불태우고 싶은데.  


사진 밑 설명을 읽어보니 거의 20kg를 감량한 듯했다. 우와, 어떻게 한 거지. 차현은 저도 모르게 자신의 뱃살을 꼬집었다.


친구와 핫플을 다니던 솔로 시절에는 쭉 빠진 각선미는 아니었어도 나름대로 미니스커트에 스키니 진도 소화했지만, 임신하면서 찐 살은 애를 낳고도 빠지지 않았다. 출산하면 바로 원래 몸무게로 돌아가는 줄 알았건만, 출산 후 며칠 있다가 체중을 재보니 아기와 양수 무게를 합쳐 고작 4kg 정도만 내려갔을 뿐 나머지는 그대로 남았다.


여차저차 애를 써서 조금 더 뺐지만 결국은 임신 전에서 8kg 불어난 채로 몸무게는 고정되었다. '더 빼야 하는데...' 생각하면서도 현실은 애 재우고 맥주 한 캔이 유일한 낙이었다.


아이 옆에 누워서 같이 잠들지 않으려고 애쓰면서 자장가도 틀어주고 머리카락도 쓸어주다가, 드디어 아이가 잠들면 이불을 덮어주고 살그머니 방을 나왔다. 냉장고 문을 열어 한 손으로 차가운 클라우드 한 캔을 꺼내 들고, 낮에 아이가 먹다 남긴 초코송이나 꼬깔콘이 담긴 글라스락을 다른 손으로 집어 들어 거실 티비 앞에 자리를 잡고 앉을 때면 고된 하루도 끝났다는 안도감이 들었다. 맥주를 마시면서 아무 생각 없이 예능프로를 보고 낄낄거려야 그날치 시름이 털어내졌고 편안히 잠자리에 들 수 있었는데 그런 상황에서 다이어트는 무슨.  


러면서도 미련을 버리지 못하고 결혼 전에 입던 옷들을 이사철마다 끌어안고 다니던 중이었다. 언젠간 꼭 다시 입고 말리라. 하지만 얼마 전에 서촌 나들이를 하면서 시도해본 바로는 안타깝게도 여간해선 그 옷들을 다시 입을 수 있을 것 같지가 않았다.


나랑 비슷한 또래인 거 같은데, 애 둘 엄마인 거 같은데 이 여자 대단하네. 어떻게 뺐지? 차현은 대번 그녀의 계정을 맞팔하고, 먼저 최근 게시물에 '선팔 감사합니다. 맞팔했어요. ^^'라고 댓글을 단 뒤 게시물을 하나씩 샅샅이 훑기 시작했다.


그녀의 최초 게시물을 보니 차현과 마찬가지로 인스타그램을 시작한 지 일주일 정도밖에 안 되었고 팔로우 수도 두 자릿수 정도였지만, 수십 개의 게시물이 있었다. 그 짧은 시간에 어쩜 그리도 방대한 양의 게시물을 올렸는지 놀라웠다.


게다가 하나하나 정성을 들여 자신이 한 다이어트법을 소개하고 있었다. 차현은 그녀의 피드를 보면서 과거에 무식하게 굶거나 원푸드 다이어트를 하고, 야밤에 죽어라 운동장을 뛴 자신의 무지함을 한탄했다.


식사를 규칙적으로 하고, 식사 사이에는 공복을 두어야 하는구나(조금씩 나눠서 자주 먹는 게 좋은 줄 알았는데). 카페인은 수분 흡수를 방해해서 좋지 않구나(아메리카노는 다이어트 음식인 줄 알았는데).  


그녀의 방법을 따르면 이번에는 꼭 목표 체중을 달성할 수 있을 것 같았다. 다시 한번 해볼까? 저어기 밑바닥에서 잠자고 있던 의지가 슬며시 고개를 들었다.



징징~

인스타그램 알람이 울렸다.

- 어머, 여기 저도 좋아하는 식당이에요. 지난 주에도 다녀왔어요. ^^


제대로 다이어트를 시작하기 전에 최후의 만찬을 즐기고 싶어서 어제 남편, 아이와 함께 오래간만에 동네 파스타집에 갔다. 마늘과 올리브 오일로 볶은 면 위에 구운 우럭 한 마리가 통째로 올려져 나오는 오일 파스타는 그녀가 가장 좋아하는 메뉴여서, 가끔 특별한 날에 먹으러 오곤 했다.


서버는 항상 테이블 위에 파스타 접시를 올려준 뒤 "사진 찍으시겠습니까?"라고 물었다. 필요 없다고 말하면 큰 집게로 우럭 살을 부숴서 파스타면과 잘 섞어주었다. 그 위에 잘게 썬 할라피뇨를 뿌리고 포크로 부서진 우럭 살, 파스타면까지 돌돌 감아 먹는 것이 묘미였다.


올 때마다 사진은 필요 없다고 말했지만 이번에는 달랐다. 인스타에 올릴 거리가 생겨서 신이 났다. 호방한 우럭 파스타의 자태를 여러 각도에서 찍은 뒤 #우럭파스타 #최후의만찬 이라는 해시태그를 달아 올렸는데, 그것을 그녀가 보고 '좋아요'를 누른 것이었다.


반가운 마음에 답을 했다.

- 레이나 님은 어떤 메뉴 좋아하세요?

- 저도 우럭 파스타 좋아해요.

반가운 한편 신기했다. 동네 맛집이라 그닥 잘 알려지지는 않은 곳인데 그녀가 어떻게 알지? 혹시 우리 동네 사람인가?


- 원래 오일 파스타 좋아하세요? 전 주로 크림이나 토마토소스만 먹는데 여기 우럭 파스타는 넘 맛있어서 >.<

- 저도요! 파스타는 역시 크림이죠. 오일은 저도 우럭 파스타만 먹어요.

- 어머 정말요? 근데 어쩜 그렇게 날씬하세요! 유지를 잘하시네요.

- 안 굶고 빼서 그래요. 차현 님도 충분히 하실 수 있으세요.


이어서 댓글로 다이어트가 얼마나 힘든지, 그럼에도 성공하면 인생이 얼마나 달라지는지, 특히 아무 옷가게나 들어가 아무 옷을 골라 입어도 척척 맞는다는 것이 얼마나 기쁜 일인지 서로 한참 떠들었다. 이게 말 그대로 '소통'인가 보네. 뿌듯하면서 그녀와 한 뼘 더 가까워진 기분이 들었다.


그녀가 피드도 별로 없고 인기도 없는 차현의 계정에 방문해 주는 것도 고마웠다. 그녀는 팔로우한 다음부터 차현이 피드를 올릴 때마다 바로 '좋아요'를 눌러주고, 종종 댓글도 달고 있었다. 용기 내어 올린 아이 사진에도 '아이가 너무 귀여워요! >. <'라고 말해주어서 얼마나 기뻤던지. 알고 보니 동갑내기를 키우고 있어서 한참을 또 주거니 받거니 댓글로 이야기꽃을 피웠더랬지.


차현과 다르게 왕성한 활동을 하는 그녀는 다이어트에 관한 자세한 정보와 친절한 댓글 상담, 그리고 무엇보다도 예의 '비포 & 애프터' 사진으로 이미 거의 이천 명에 가까운 팔로워를 보유하고 있었고, 그중에는 열렬한 추종자들도 상당수 있었다. 차현은 마치 반에서 가장 인기 있는 아이의 친구가 된 것마냥 흐뭇했다.




차현은 본격적으로 다이어트를 시작하면서 그녀의 게시물을 다시 한번 정독하다가 재차 탄복했다. 엄청 꼼꼼하고 자세하구나. 뭐 하는 사람인데 이렇게 열정이 대단하지?


그녀의 개인정보에 관해서는 차현과 비슷한 나이이고, 두 아이의 엄마라는 사실 외에 더 알 수 있는 것은 없었다. '레이나'라는 이름을 쓰는지라 실명조차 알 수 없었다.


주기적으로 올라오는 비포 & 애프터 사진 밑에는 '아이 낳고 살이 빠지지 않아서 상심하는 엄마들에게 자신의 노하우를 전수해 주고 싶다'라고 쓰여있었다. 비포 사진에서는 포동포동 둥근 얼굴의 아줌마가 사람 좋은 웃음을 짓고 있었다. 착한 사람이네. 이렇게 남들 도와주려고 애쓰다니. 나도 성공하면 그래야겠다.


읽다 보니 궁금한 게 생겨서 댓글을 달았다.

- 물은 꼭 하루에 2리터 마시는 게 좋은가요?

바로 답이 달렸다.

- 가능하면 그러는 게 좋지만 사람마다 체질이 달라서요. 위장 약한 분들은 많이 드시면 해로울 거예요. 가능한 차가운 것보다는 실온의 물이나 따뜻한 물을 드세요.

- 아메리카노도 안 마시는 게 좋은 거죠?

- 네. 칼로리는 없지만 수분을 빼앗아가거든요. 혹시 드시게 되면 같은 양의 물을 더 마셔 주세요.

- 끼니 사이에 오이나 파프리카, 삶은 계란 같은 건 간식으로 먹어도 되나요?

- 가급적이면 아무것도 드시지 말아 주세요. 위장이 쉬는 시간이 필요해요.

- 견과류도요? ㅠㅠ


조금 있다가 답이 달렸다.

- 궁금한 게 많으신 거 같은데 제 개인 카톡 알려드릴까요?


어머나, 그래도 되나? 생면부지의 사람인데? 넙죽 감사히 받고는 친구 등록을 한 다음 이것저것 물어보았다. 매 질문마다 그녀는 황송할 정도로 상세하게 답해주었다.


아아, 세상에 이렇게 천사 같은 사람이 있다니. 감격했다. 다이어트라는 고된 싸움을 이끌어 줄 코치가 생긴 것마냥 든든했다.


그녀의 말대로 하자마자 열흘만 체중계 앞자리 수가 바뀌었다. 얏호! 신이 난 차현은 바로 그녀의 최근 게시물 밑에 댓글을 달았다.

- 레이나 님! 저 열흘만에 벌써 3키로가 빠졌어요!!

- 정말요? 역시 차현님 대단하세요! 하실 수 있다고 말씀드렸잖아요.

- 아니에요. 레이나 님 덕분이에요. ^^


다른 팔로워들이 차현의 댓글에 줄줄이 답을 했다.

- 정말로 열흘만에 3키로 빼신 거에요? *.*

- 축하드려요. 저도 얼른 시작해야겠어요.

- 레이나 님도, 차현 님도 대단하세요. 완전 부럽 ㅠ.ㅠ


뒤이어 그녀의 답글이 달렸다.

- 차현님, 이제부터 정체기가 올테니 다이어트 계속 하기 힘드실 수 있어요. 언제든 저한테 댓글로 남겨주세요. 제가 지켜보면서 응원해드릴게요.


그때부터 차현은 거의 매일같이 그녀와 인스타 댓글로 다이어트 얘기뿐만 아니라 맛집이나 아이 얘기로 이야기꽃을 피웠다. 어쩜 서로 그렇게 취향이 잘 맞는지 신기방기했다. 차현은 귀인을 만난 기분이었다.




title photo by alexander-shatov on unsplash

photo by mgg-vitchakorn on unsplas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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