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녀가 다이어트 브랜드를 론칭했을 때, 차현은 그다지 놀라지 않았다. 언젠가 그럴 지도 모르겠다고 막연히 느끼고 있었다.
그녀는 이제 만 오천 명이 넘는 팔로워를 보유한 인플루언서가 되어 있었고, 그녀가 올리는 게시물마다 추종자들의 찬양 댓글이 수백 개씩 달렸다. 이런 영향력을 가지고 있다면 나라도 뭔가 해보고 싶은 마음이 들겠다 싶었다.
'출산 후 살이 빠지지 않아서 괴로워하는 엄마들을 돕고 싶다'고 말하던 그녀를 생각하면 약간 고개가 갸우뚱하기는 했지만, 그녀가 인터넷 사이트를 만들고 다이어트 용품을 판다고 해서 그게 잘못된 일은 아니었다. 남을 돕는 것과 수익을 창출하는 것이 양립불가능한 것도 아니니까.
차현은 호기심에 그녀의 인터넷 사이트를 들어가보았다. 검정색 필라테스 레깅스에 핑크색 탱크탑을 받쳐 입고 웃는 그녀의 사진이 제일 먼저 눈에 띄었다. 한 손을 허리춤에 올리고, 다리를 모로 꼬은 폼이 어쩐지 불편해 보였다. 음영이 확실한 섀도우와 사진을 뚫고 나올듯한 인조 속눈썹, 발그레한 핑크빛 볼터치는 신부화장을 연상케 했다. 그마저도 얼굴과 목의 피부색이 미묘하게 달랐다.
누가 필라테스할 때 저런 화장을 한단 말이야. 쯧쯧... 포샵으로 피부색 보정 좀 하지. 속으로 혀를 차던 차현은 이상하게 심사가 불편한 자신이 의아했다.
내가 혹시 질투를 하는 걸까? 하지만 차현이 그녀 대신 저 화면속에 들어가고 싶은 건 아니었으므로, 아무리 봐도 질투라고 할만한 감정은 아니었다. 화면 속의 그녀는 멋져보여야 하는데, 이유를 알 수 없게 서글펐다. 피로해 보이기도 했다.
판매하는 물건들을 살펴보다가 차현은 깜짝 놀랐다.
'다이어트의 여왕, 레이나가 추천하는 필수템!'이라는 배너를 클릭하고 들어갔는데 제일 먼저 커피믹스가 눈에 띄었다. '무료하고 지치는 다이어트의 친구'라는 문구 옆에는 '칼로리 제로! 오후의 커피 한 잔으로 에너지를 충전하세요.'라고 씌여 있었다. 분명히 카페인은 수분 흡수를 방해하니까 가급적이면 아메리카노도 마시지 말라고 했는데.
그 다음 물건은 '살 안 찌는 견과류 믹스'였다. 하루견과와 비슷했는데 가격은 그보다 1.5배 이상 비쌌다. '감량 기간에 허기지시죠? 살 안 찌는 믹스 한 봉으로 허기도 달래고, 하루에 필요한 영양소도 모두 채워보세요.'라고 씌여 있었다. 식사와 식사 시간에는 가급적 공복을 유지하라고 했는데.
게다가 게르마늄 팔찌니 릴랙스 베개 같이 다이어트에 관련 없는 물건들도 팔았다. 상품설명에는 어떻게든 다이어트와 관련된 내용이 들어갔다. 이래도 되는 건가? 그 때부터 차현의 머릿속에서 계속 작은 물음표가 깜빡거렸다. 자신이 파는 것도 아니면서 차현은 내내 찜찜했다.
그보다 더, 차현은 예전처럼 그녀와 소통이 되지 않는 것이 아쉬웠다. 다이어트 계속 하기 힘들 때마다 댓글 남기라고, 응원해 주겠다고 해서 거의 매일같이 댓글을 달았는데, 처음에는 꼬박꼬박 정성스러운 답글이 달렸지만, 언젠가부터 '힘내세요!', '잘하셨어요.'라는 멘트만 있다가 요새는 그마저도 없이 묵묵부답이었다.
다이어트 주제글이 아니라 맛집이나 아이 사진에 댓글을 달아도 거기에 답글이 달리는 일은 더 이상 없었다. 팔로워가 만 오천 명인데 그럴 만도 하지. 이해하려고 애썼지만 저도 모르게 자꾸만 스마트폰에서 인스타 어플을 새로고침을 하면서 댓글이 달렸나 확인하고 있는 자신의 모습이 싫었다.
차현은 다이어트만을 목적으로 그녀에게 연락하는 것이 아니었다. 그녀는 차현의 첫 인스타 친구였다. 사실 유일한 친구이기도 했다. 다른 사람들과는 그처럼 소통한 적이 없었다.
'소통해요'라는 댓글이 달려서 가보면 99.9프로 장사꾼이었다. 감귤농장에 이태리 식당에 미용실까지, 왜 그렇게 다들 나한테 뭔가 팔아보려고 아우성인지. 언젠가부터 차현에게는 '소통해요'라는 말이 '사 주세요'라는 말로 들려서 피로했다.
차현은 친구와 핫플을 다니던 솔로 시절에 네이버 블로그를 한 적이 있었다. 예쁜 음식 사진을 올려서 감상하고, 나름대로 맛집 정보를 정리하고픈 순수한 의도였다. 그 무렵에는 그렇게 블로그를 운영하는 사람이 많아서 서로 이웃을 맺으며 왕래를 하기도 했다.
현실 세계의 친구들과의 관계도 만족스러웠지만, 온라인에서 만난 사람들은 비슷한 관심사를 나눌 수 있는 것이 좋았다. 맛집에 가면 친구가 식당과 음식을 배경 삼아 자기 셀카를 수십 장 찍느라 바쁠 동안 차현은 음식 사진을 공들여 촬영했고, 사진과 함께 맛집 평가를 상세하게 블로그에 올리면 친구는 신기하다는 듯이 "야, 너 진짜 정성이다. 시간이 남아도는구나."라고 말하곤 했다.
"맨날 똑같은 니 얼굴 셀카를 그렇게 찍는 게 더 이해 안 가거든."이라고 농담 삼아 응수했지만, 관심사가 서로 달라서 나눌 수 없는 게 가끔은 아쉬웠다. 이 케이크 가게의 생크림이 얼마나 부드러운지, 저 홍차카페는 항상 프랑프랑의 티팟을 따뜻하게 예열해서 내오는 것이 얼마나 정성스러운지, 현실 세계의 인간한테는 말하기 쉽지 않았지만 온라인에서 만난 관심사 비슷한 친구들은 이해하고 같이 열광해주었다.
그런데 언젠가부터 광고쟁이들이 따라붙기 시작했다. 결혼하고 나서는 바빠서 블로그도 손을 놓았는데, 관리 안 되는 블로그인 게 눈에 뻔히 보였는데, 방명록이나 쪽지로 블로그 홍보 부업이나 대여 제안이 끊임없이 들어왔다.
도대체 내 블로그를 왜 사려는 거야. 의아해 하던 차에 한 광고쟁이가 보낸 쪽지가 눈에 들어왔다. '귀하의 블로그는 2015년 전에 개설되었기 때문에 검색 시 상위에 노출될 확률이 높습니다'라는 것이었다. 아아, 이런 이유였구나.
뒤이어 따라붙은 제안은 그녀가 만약 돈이 필요한 상태였더라면 혹할 만했다. 아무것도 안 하고 대여만 해주어도 200만 원에서 360만 원까지 준다고. 차현은 이런 제안에 넘어가 블로그를 팔아치운 사람들이 얼마나 많을까 싶었다.
이웃들 중에도 있을지 몰라. 내가 여태 '베이킹에 관심 있는 30대 후반 워킹맘'으로 알고 있던 블로그 이웃이 사실은 애도 낳아본 적 없는 사십 대 중반의 홍보회사 남자 직원일지도 모르지.
그 생각을 하니 소름이 돋아서 블로그를 완전히 접었지만, 취미를 즐길 수 있는 공간을 잃은 것이 늘 아쉬웠다. 그 참에 인스타라는 신세계를 발견했는데 여기도 결국 광고쟁이들이라니.
그녀와 예전처럼 맛집이나 아이 얘기를 나누던 때가 그리웠다. 얼굴을 알고 카톡으로 대화도 나눈, 비록 온라인 상에서밖에 보지 못했지만 엄연한 실체가 있는 그녀.
그나마 그녀가 차현의 피드에 여전히 첫 번째로 '좋아요'를 눌러주고 있는 것을 통해 서로 여전히 연결된 느낌을 맛볼 수 있었다. 새로 사업한다고 많이 바쁠 텐데 그 와중에 잊지 않고 챙겨주긴 하는구나. 그래도 서로 인스타 처음 시작할 무렵에 만난 사이라 의미가 있긴 있는 걸까? 차현은 그것으로 위안을 삼았다.
어라?
이상했다. 새로운 팔로워가 있다는 알림을 보고 갔는데 그녀였다. 우리는 오래 전에 이미 맞팔한 사이인데. 그녀가 왜 나를 또 팔로우했지? 뭔가 시스템 오류인가?
이와 비슷한 일이 전에도 있었던 일이 생각났다. 남양주시에서 네일아트샵을 운영하는 여자가 주기적으로 팔로우 신청을 했다가, (아마도 언팔을 하고) 다시 팔로우를 신청하고 있었다. 아마도 차현이 올린 게시물 중 #네일아트 가 있어서 그런 듯 했다.
'나 서울 사람이고, 남양주는 평생 갈 일 없으니까 애쓰지 마요'라고 댓글이라도 남겨주고 싶었다. 그 때랑 비슷하네.
갑자기 머릿속에 날카롭고 서늘한 바람이 불었다. 차현은 얼어붙은 듯 잠시 동안 그 자리에 가만히 있었다. 그녀의 팔로워 숫자는 이제 삼만 명을 넘어섰다. 그럼에도 그녀는 매번 차현이 올리는 피드에 일 분도 안 되어 '좋아요'를 누르고 있었다. 댓글에는 답을 안 하면서.
그날 밤 새벽 세 시쯤, 세상 모두가 자고 있을 것 같은 시간대에 차현은 피드를 올렸다. 거실 마룻바닥을 아무렇게나 찍은 것이었다. 어떠한 의미도 없는, 누가 봐도 좋다고 말할 수 없는 것을, 해시태그 하나 없이.
십오 초쯤 지나서 '좋아요'가 달렸다. 역시 그녀였다. 그녀의 피드에 의하면 그녀는 새벽기상을 위해 세상 없어도 11시 전에는 자는 사람이었는데.
여태 내 피드를 읽어준 사람은 그녀가 아니었구나. '좋아요'를 눌러주는 무슨 자동 프로그램 같은 걸 사용하고 있었구나. 팔로워를 늘리고 유지하기 위해서. 나랑 소통하고 싶은 게 아니었구나.
언제부터였지? 기억을 거슬러보니 거의 처음부터였다. 딱히 뭔가 찍어 올릴 거리가 없는 차현의 일상인지라 어쩌다 동네 엄마들과 커피 한 잔 할 때 카페 사진 같은 걸 드문드문 올리곤 했는데 그 불규칙한 피드에 항상 제일 먼저 '좋아요'를 눌러주었지. 그래서 차현에게는 그녀가 각별했고.
그래, 드물게 부지런한 사람이라고 생각했어. 사람이 하루 종일 인스타만 들여다보고 있지 않는 한 그렇게 내내 '좋아요'를 눌러댈 수가 없는 건데. 처음부터 자동 프로그램을 쓰고, 필요할 때만 댓글을 달았구나.
그녀가 달았던 댓글 내용을 다시 한번 생각해 보니 확실해졌다.
- 어머, 여기 저도 좋아하는 식당이에요. 지난 주에도 다녀왔어요. ^^
- 저도 우럭 파스타 좋아해요.
- 저도요! 파스타는 역시 크림이죠. 오일은 저도 우럭 파스타만 먹어요.
- 아이가 너무 귀여워요! >. <
거의 차현에게 동조하는 내용이었다. 아무런 정보가 없어도, 아무 것도 공유하지 않아도 누구나 달 수 있는 그런 의미 없는 댓글. 나는 그것을 관심이니 소통이라고 여기며 좋아했었구나. 완전 바보 됐네.
마음 한 편에 슬픔이 차오르는 것을 느꼈지만 애써 꾹꾹 눌렀다. 슬프다는 사실을 인정하면 스스로 더 바보처럼 느껴질 것 같았다.
다음 날 오전, 차현은 그녀와 나누었던 카톡들을 다시 살펴보았다. 그리다가 그만 충동적으로 메시지를 보내버렸다.
- 잘 지내세요? 요새 많이 바쁘시죠? 인스타에서 뵙기 어렵네요. ^^
답은 하루가 다 지나고 밤이 되어야 왔다.
- 네. 앞으로는 제 사이트 게시판에서 소통해요.
그리고는 끝이었다. 차현의 마음속에서 무언가 우지끈 부러지는 소리가 났다.
그녀의 사이트 게시판은 회원가입을 하고 물품을 구매한 사람만이 글을 쓸 수 있게 되어 있었다. 그러니까 그녀의 대답은 '나랑 이야기 하고 싶으면 우리 사이트에서 물건 사야 돼. 안 그러면 이제 말 걸지 마.'라는 뜻이었다. 그 뒤로 '나는 처음부터 장사하려고 너한테 접근한 거야. 소통 같은 거 하려고 한 게 아니라.'라는 말이 생략된 것처럼 들렸다.
웃기시네. 게르마늄 팔찌 너나 차라지. 확 요요나 와 버려랏!
그리고 레이나는 무슨 얼어죽을. 너 혹시 김춘자나 박말순 아니니?
차현은 조용히 카톡방을 나간 다음 인스타에 접속해서 그녀의 계정을 언팔했다. 그리고 아이 방으로 들어갔다. 이불을 반쯤 걷어찬 채 쌔근쌔근 숨소리를 내며 세상 모르게 자고 있는 아이의 얼굴을 한 번 어루만졌다. 온라인이 아니라 현실에 존재하는 그녀의 가족을 느껴보려는 듯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