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타입이 아니어도 재밌을 수 있다는 것
아바나에 온 지 며칠 되었지만 아바나의 관광중심이라는 오비스포거리를 제대로 둘러보기는 오늘이 처음이다. 첫째 날 M과 함께 한번 왕복하며 분위기만 본 게 다였다. 오늘 같은 둘러보기가 가능한 것은 열흘 간 아바나에 머물고 다른 지역에 갔다가 되돌아온 K형이 있었기에 가능했다.
K형은 마치 가이드인 것처럼 우리들을 안내해줬다. 쿠바는, 아바나는 그렇다. 대부분의 여행자가 아바나로 시작해서 아바나로 끝난다. 처음 와서 아무것도 모를 때 다른 여행자들에게 전해 들었던 정보들은 여행이 끝나갈 때쯤 쿠바를 알고 아바나를 알게 된 이후 다른 여행자들에게 전파된다. 그렇다. 쿠바에서 여행정보는 구전된다. 인터넷의 활용도가 매우 떨어지기 때문에 더욱 그럴 것이다.
먼저 헤밍웨이의 다이끼리로 유명한 La Floridita. 사람이 너무 많다. 앉을 곳도 겨우 마련할 수 있었다. 이 비좁은 와중에도 구석에선 밴드가 연주를 하고 있고 끝나니 CD를 팔러 돌아다닌다. 아무튼 이곳에서 먹는 다이끼리는 살얼음 동동 뜬 시원한 맛 말고는 딱히 더 마실 이유를 찾을 수 없었다. 가격은 두 배나 비싸면서 말이다. 유명세는 쿠바라고 해서 다를 게 없다.
그리고 비에하 광장에서 맥주를 마신다. 양조맥주로 유명한 Factoria Plaza Vieja. 쿠바에서 흔치 않은 생맥주를 마실 수 있는 곳이다. 오전부터 맥주를 들이켜니 취기가 금세 오른다. 같이 주문한 꼬치로 달래 본다. 안주류의 맛은 괜찮은데 가격이 전혀 착하지 않다. 맥주를 마시는 동안 바로 옆에서 밴드가 노래와 연주를 곁들인다. 맥주가 동이 났다. 얼마 안 마신 것 같은데. 우리나라처럼 양을 속이는 것은 아닐까 하는 소용없는 의심을 해봤다.
그리고 초콜릿뮤지엄. 뮤지엄이라기보다는 초콜릿 가게다. 초콜릿을 안 좋아하는 나는 혼자라면 건너뛰었겠지만 일행과 함께이기에, 유명하다기에 들어가 본다.
까사 정보 북에도 맛집이라고 여러 번 소개된 O'rielly 306에서 아바나스페셜 한 잔 하고 La Bodegita에서 모히또를 마셔본다. 이곳은 헤밍웨이가 즐겨 모히또를 마시던 곳으로 유명한데 맛도 별로거니와 만드는 모습도 완전 대량생산으로 대충, 위생상태도 대충이었다. 헤밍웨이빨로 아직 장사를 하고 있는 것은 La Floridta와 별반 다를 게 없었다.
대충 이런 유명한 가게들이 있다. 사실 이런 맛집들을 찾아다니는 것이 내 스타일의 여행은 아니다. 하지만 오늘은 즐거웠다. K형의 배경 설명과 지난 경험이 덧붙여지면서 장소는 의미를 갖기 시작했다. 솔직히 쿠바에 먹을만한 음식이 많이 있는 것은 아니기에 알아두었다가 다른 사람에게 알려주는 내 모습도 기대됐다. 더불어 하나하나 찾아다니면서 겪게 되는 일들 역시 재밌었다. 더운 날씨에 눈에 보이니 그냥 사 먹었던 코코넛아이스크림, 쉬고 있던 쿠바 청년의 기타를 연주해 보았던 일, 야구를 하던 꼬마들과 얘기를 하며 그래, 쿠바 하면 야구지 생각했던 일, 수많은 택시 삐끼들의 영업을 거부하던 일, 계속 수다 떨며 거리를 활보할 수 있었다는 것이 더 기억에 남는다. 내세우기에는 애매하지만 작고 소중한 일이 있어 여행할 맛이 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