봉준호 감독이 만든 '기생충(寄生蟲)'이라는 영화가 제92회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최우수작품 등 4개 분야 상을 탔다. 기생충이란, 사람이나 생물의 영양분을 빨아먹는 동물을 말한다. 요즘은 이 기생충을 스스로 노력하지 않고 남에게 의존하여 사는 사람에 빗대 비난조로 더 많이 사용된다. 영화 기생충에서도 그랬다. 기생충에는 이, 벼룩, 빈대, 모기, 쇠파리, 거머리, 진드기, 바퀴벌레 등 몸 밖에 붙어사는 기생충이 있는가 하면, 회충, 요충, 촌충, 편충, 십이지장충, 디스토마 등 몸 안에 사는 기생충도 있다.
어릴 적 이와 같은 기생충 한 가지 한 가지에 얽힌 사연이 많다. 5~60년대 학교에서 구충제를 나눠주던 적이 있었다. 그 전에는 무슨 과학적인 근거라도 있었는지는 몰라도 회충약 대신 휘발유를 마시기도 했다. 이, 벼룩, 빈대도 많았다. 생각만 해도 끔찍하다. 하얀 밀가루 같은 디디티(DDT)라는 살충제가 있다. 당시 디디티만큼 요긴한 살충제도 없었던 듯하다.
풀 먹인 무명 속옷, 특히 팬티 고무줄 주름 사이사이에 이가 많았다. 양손 엄지손가락 손톱에 피가 뻘겋게 묻히도록 이를 잡기도 하지만, 옷을 입은 채로 허리춤에 디디티를 마구 뿌렸다. 머릿속에도 색이 검은 이가 많았다. 머릿속 이는 참빗질을 한다. 참빗은 대나무를 얇고 가늘게 쪼게 살을 나란히 묶어 만든다. 빗질은 머리를 가지런히 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촘촘한 빗살로 이나 이 알을 긁어내리기 위해서다. 그래도 안 될 때는 머릿속에 디디티를 뿌린다. 방구석구석에도 빈대나 벼룩을 없애기 위해 하얗게 디디티를 뿌리기도 했다. 소(牛) 몸에는 피를 빨아먹는 쇠파리가 많이 달라붙고 진드기도 많았다. 진드기를 보이는 대로 잡아 주고 긁어내 줘도 하룻밤을 지나고 나면 피를 얼마나 많이 빨아먹고 자랐는지 꼭 피마자(일명 아주까리) 열매만큼 통통해진다. 더 커지면 살짝 건드리기만 해도 소 몸에서 떨어진다. 그것도 디디티를 뿌려주면 한결 덜하다. 벌레 없애는 데는 디디티만 한 살충제가 없었다. 심지어 볏논 메뚜기를 없애기 위해 삼배 주머니에 디디티를 넣어 막대기로 털어 약을 뿌리기도 했다.
디디티는 1939년 스위스의 화학자 파울 뮐러가 발견하고 해충을 죽이는데 효과가 뛰어나다는 걸 알아냈다. 당시 북아프리카와 동남아시아에 무서운 전염병을 옮기는 모기를 없애자 말라리아 전염병 환자 수가 엄청나게 줄었다. 모기뿐만 아니라 농사에 해를 입히는 벌레도 죽였고 사람 몸에 사는 이도 없어지게 했다. 기적의 살충제로 널리 쓰이게 되어 그 공로로 1948년 노벨 생리의학상을 받기도 했다. 이렇게 디디티로 인해 많은 사람의 생명을 구했지만, 나중에 암을 일으킬 수 있다는 증거를 찾아냈다. 자연생태계를 파괴하는 위험도 가지고 있어 결국 미국에서 1972년 디디티의 생산과 사용을 금지하는 법을 만들었고 다른 나라에서도 이 법을 따랐으며, 우리나라는 디디티가 발암물질이면서 맹독성 물질이라고 판단하고 뒤늦게 1979년 사용이 금지돼 지금은 생산하지 않는다.
모기에 얽힌 일도 많다. 밤이면 마당 평상에 둘러앉아 텃밭에서 맨 잡풀을 모아 모깃불을 피워 놓고 더위를 이겨냈다. 모깃불에다가 물을 자주 뿌려주어야 오래 타고 연기가 많이 난다. 눈은 매워도 모기한테 뜯기는 것보다는 낫다. 우리나라에서는 모기가 잠을 설치게 하거나 가렵게 하는 정도에 그칠 뿐, 말라리아 등 다른 병을 옮기는 것은 흔하지 않아 그래도 다행이다. 모내기철이면 거머리가 다리에 언제 붙었는지 모르게 붙어 피를 빤다. 거머리를 떼어 낸 자리에 피가 줄줄 흐르는 장면이 눈에 선하다.
1970년대 말까지 발암물질이면서 맹독성 물질인 디디티 농약을 몸과 머리에 바르고 코로 마시며 살았다는 것을 생각하면 상상조차 할 수 없는 일이다. 바퀴벌레도 빼놓을 수 없다. 나는 6~7년 동안 제과점을 운영한 적이 있다. 바퀴벌레는 설탕과 밀가루를 아주 좋아한다. 그러니 바퀴벌레에게는 제과점만큼 좋은 데가 없다. 이를 없애기 위해 제과점 주방 안에 연막탄을 피웠다가 불이 난 줄 알고 주변에서 소방서에 신고를 하는 바람에 119 소방대가 출동해 곤욕을 치른 적이 있다. 연막탄을 피워도 연기가 들어가지 않는 틈새에 있는 바퀴벌레에게는 아무 소용이 없다. 다른 비법으로 약국에서 파는 붕산과 설탕을 1:1로 섞어 구석구석에 뿌렸더니 대단한 효과를 볼 수 있었다.
그렇다면, 기생충은 없어져야만 할 존재인가, 이로운 점은 없을까? 모기의 예를 들어보고자 한다. 모기도 생태계에 꼭 필요한 데가 있다. 한 종(種)의 동물을 전멸시키면 먹이사슬의 균형이 깨져 대체먹이를 찾지 못해 많은 생물들이 굶어 죽을 수 있다고 한다. 인간이 단순한 생각으로 한 생물을 해충이라고 멸종을 시도하려다가는 더 많은 타격을 받고 인류도 덩달아 피해를 겪을 것이라고 경고한다. 1920년대 플레밍이 페니실린을 개발하기 전까지는 매독 등 불치병으로 여기던 병이 많았다. 오스트리아 의사 율리우스 바그너 야우레크는 매독에 걸린 환자에게 말라리아를 주입해 치료하는 방법을 개발했다. 그 업적으로 1927년 뒤늦게 노벨상 의학상을 받기도 했다.
기생충도 조물주가 만든 피조물임에 틀림없다. 조물주가 아무 작에도 쓸데없는 것을 지은 것이 아니라 그 이유가 분명히 있을 거라는 생각이 든다. 기생충을 박멸의 대상으로만 여길 것이 아니라 인간과 공생할 수 있는 때가 오기를 기대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