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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문용대 Oct 22. 2020

소중한 것

  애지중지하던 물건을 잃어버리면 그 값이 비싸건 싸건 간에 누구나 속상해한다. 자주 쓰던 물건을 잃어버렸다면 그때 겪는 불편함은 간단하지 않다. 누구든 물건을 잃어버린 경험이 있을 것이다. 어디다 두고 깜빡할 수도 있고, 재난이나 도난을 당해 잃을 수 있다.


  나는 몇 주 전 열쇠 꾸러미를 잃어버리고 하룻밤 잠을 설쳤다. 전에도 그런 적이 있는데 같은 실수를 또 했다. 사무실 열쇠, 자동차 리모컨 키와 일반 키, 은행 OTP(일회용 비밀번호 생성기)와 USB 두 개가 달려 있다. 당장 일을 할 수가 없다. 차를 운전해 집에 갈 수 없다는 것보다도 이런저런 자료가 들어있는 USB에 더 신경이 쓰인다. 내 개인 것뿐만 아니라 내가 속한 수백 명 단체의 몇 년간 자료가 들어 있기 때문이다. 백업을 해 두었지만 최근 자료도 많다. 남의 손에 넘어가면 안 되는 자료도 있다. 차를 멀리 두고 집에 와서도 무얼 해야 할지 허둥지둥한다. 행동이 이상한 걸 눈치챈 아내가 묻는 말에 “분명히 손가방 안에 넣고 간 열쇠 꾸러미가 없어졌다.”라고 하자 “가방이 뚫어졌느냐, 열쇠 꾸러미에 발이라도 달렸느냐.”는 핀잔만 듣는다. 잠자리에 누워, 아침에 집을 나설 때부터 하루 종일 오간 곳의 기억을 더듬는다. 의심되는 곳은 집중해서 곰곰이 생각해 본다. 경기도 의정부 세미나에 참석한 것이 의심스럽다.


  밤잠을 설치고 나서 밥을 먹은 둥 만 둥 서둘러 출근을 해 아홉 시가 되기를 기다렸다. 세미나 장소였던 의정부 예술의 전당에 전화를 걸었다. 사연을 말하고 기다린 지 십여 분만에 열쇠 꾸러미를 찾았다는 연락이 왔다. 얼마나 반갑고 기쁜지 춤이라도 추고 싶다. 안도의 한숨이 나오더니 힘이 쫙 빠졌다. 손가방을 탁자 서랍에 넣고 나서 가방 속에 있는 책을 꺼낼 때 바닥에 떨어졌던 모양이다. 의정부 예술의 전당엘 가려면 전철을 네 번이나 타야 된다. 5호선과 7호선, 다시 1호선과 의정부경전철을 이용해 의정부 시청역으로 가야 된다. 전철역에서도 15분 정도 걸어야 예술의 전당에 갈 수 있다. 가는 데만 한 시간 반이 걸린다. 그렇지만 잃어버렸던 가족을 찾기라도 한 냥 발걸음은 가볍기만 하다.




  40여 년 전 일이 생각난다. 경남 창원의 내가 다니던 회사는 단체 여름 피서지로 마산 진동 해수욕장을 정했다. 짐을 챙겨 집결지인 회사 정문까지 가는 택시 뒤 자석에 따로 들고 갔던 텐트 가방을 두고 내렸다. 해수욕장으로 가는 회사 버스를 타려다 텐트 가방이 없음을 알았다. 하는 수 없이 그날 돌아올 동료 직원의 텐트를 빌려 쓸 요량으로 해수욕장엘 갔다. 찜찜한 기분으로 며칠간의 일정을 마치고 돌아왔다. 이게 웬일인가! 택시에 두고 내렸던 내 텐트 가방이 수위실 안내대 위에 있는 게 아닌가. 택시기사가 다시 수위실에 찾아와 텐트 가방을 되돌려 주고 갔다. 그 고마운 택시기사가 지금도 잊히지 않는다.


  내가 잘못한 것도 아닌데 물건을 잃은 적도 있다. 오래전 1960년대 말쯤 있었던 일이다. 처음 사서 한 번 입어보지도 못한 양복을 직장동료가 빌려 주라고 했다. 부탁을 뿌리치지 못하고 빌려줬더니 그걸 입고 도망을 갔다. 그의 집이 동두천 가기 전 ㅇㅅ동이라 들었지만 찾을 길이 없었다.


  이십여 년 전에는 집을 새로 이사 간 지 한 달 만에 도둑을 맞았다. 범인은 외벽 도시가스관을 타고 창문을 넘어 들어왔다. 아내의 귀고리, 목걸이, 반지 등 귀금속 모두를 훔쳐갔다. 두어 달 뒤 청량리경찰서 경찰관에게서 범인을 잡았다고 들었지만 물건은 되돌려 받지 못했다. 그리 비싼 것은 아니었지만 아내는 무척 속상해했다.

  의정부 예술의 전당 직원이나 창원 택시기사 덕분에 내 것을 찾은 것처럼 나도 남의 물건을 찾게 해 준 적이 있다. 전남 여수에서 살 때 일이다. 집과 상당히 멀리 떨어진 어느 동사무소에서 볼일을 마치고 돌아왔다. 와서 보니 내 차 뒤편 트렁크 위에 신분증과 신용카드 몇 장, 상당액의 돈이 든 여성 지갑이 얹혀 있는 게 아닌가. 표면이 차에 딱 달라붙는 비닐 지갑이었다. 주차해 둔 내 차 위에 잠깐 올려놓고 일을 봤던 모양이다. 신기하게도 동사무소에서 40여분이나 차를 달렸는데 떨어지지 않고 그대로 붙어있었다. 다행히 연락처가 있었다. 전화를 받은 여성은 급히 택시를 타고 찾아와 지갑을 받아 들고 기뻐 어쩔 줄 몰라하던 장면이 눈에 선하다.


  며칠 전에는 어둑어둑한 아침 집 근처 어느 식당 주차장을 걷는데 검은 물체가 보여 주어 보니 지갑이다. 그 속에는 몇 장의 신용카드, 여러 장의 달러화, 위안화와 함께 중국인 여성 여권이 들어 있었다. 그 여성이 근처 경찰파출소에서 지갑을 찾아가면서 얼마나 기뻐했을까를 생각하니 내 기분도 좋아진다.




  이처럼 누구나 물건을 잃었을 때 허탈해한다.

우리는 보이는 물건도 중요하지만 그보다 더 소중한 것을 잃어가고 있는지도 모른다.

쉬지 않고 달리던 길을 잠시 멈추고 뒤돌아보자.

혹시 잃어버렸다는 것도 모른 체, 지금도 계속 잃어가고 있다면 멈추어야겠다.

삶의 의미는 무엇이며 어떻게 사는 것이 잘 사는 것인지, 인간이 본래 지녔던 사랑, 순수함, 꿈 등 소중한 것들을 지금이라도 다시 찾아야겠다.

이런 것이야말로 보이는 물건보다 더 소중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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