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문용대 Nov 03. 2020

한국 그리고 일본

한 집안에서 아버지와 어머니의 관계가 소원하면 자식들도 덩달아 불편하다. 하물며 문화와 이념, 가치를 달리하는 나라끼리라면 더 말할 것이 없다. 갓 세 돌이 지난 외손녀가 우리 집에서 지냈다. 짓궂은 질문을 던져 본다. “할아버지가 좋아, 할머니가 좋아?” 나만 있고 할머니가 없을 때는 “할아버지가 좋아!”라 하고 할머니만 있을 때는 “할머니가!”라고 대답한다. 나와 할머니 둘이 같이 있을 때는 대답을 잠시 머뭇거리다가 “엄마가 좋아!”라고 한다. 대답하기가 쉽지 않았을 것이다. 그래서 생각 끝에 묻지도 않은 엄마가 ‘좋은 사람’이 됐다.   


한국인과 일본인 사이에서 태어난 자녀들 입장이 그럴 것이다. 그 가족은 한국 편을 들 수도, 일본 편을 들 수도 없는 처지다. 피겨스케이팅 김연아 선수를 응원할 수도 없고 아사다 마오 선수를 응원할 수도 없었을 것이다. 그들뿐 아니다. 한국에 사는 일본인이나 일본에 사는 한국인의 심기가 불편하다. 나도 그들만큼은 아니지만 한‧일 관계가 소원해지면 맘이 그리 편하지 않다. 나는 오래전부터 일본에 대한 관심이 많아 20대에 일본어를 공부하기도 했다. 내가 세 번 가 본 유일한 외국이 일본이다. 내 주위에는 일본인이 많다. 처남이 일본 나고야 근처에 살고 있기도 하다.


대법원의 일제 강제징용 피해자 배상 판결과 위안부 문제로 한‧일 관계는 서로 꼬일 대로 꼬였다. 일본 정부는 한국인 징용 피해자 배상 문제나 위안부 문제는 1965년 한일 청구권 협정 등 국가 간 합의가 끝난 것인데 한국이 억지를 부린다고 강경한 자세다. 일본과는 작년 제주 국제관함식 때 자국의 군함에 ‘욱일기’ 게양 문제. 일본 초계기의 저공 위협과 레이더 갈등 사태 등 사사건건 맞서더니 TV, 반도체, 디스플레이 패널 등 첨단제품의 핵심소재와 반도체 제조용 장비의 대한(對韓) 수출 규제를 강화하면서 보복에 나섰다.  


관계가 최악의 상태로 치닫다 보니 한‧일간 거래를 하는 기업인, 투자를 했거나 하려는 기업인도 좌불안석(坐不安席) 일 게다. 심기가 불편한 정도로 그치는 게 아니다. 나라 경제에 큰 타격이 올게 불을 보듯 뻔하다.


아사히신문 등 대부분의 일본 언론은 무역을 정치화하는 것은 자유무역 원칙에 위배된다고 하며 한국에 대한 수출규제, 보복을 즉시 중단하라고 한다. 일본의 3대 경영자단체 중 하나인 ‘경제동우회’도 보복에 대해 큰 우려를 표한다. 하지만 일본 정부는 꼼짝도 안 하는 모양이다. 비판의 소리에는 귀를 닫고 오히려 ‘언론이 잘못 보도하고 있다’고 한다. 세계 무역기구(WTO)에 제소한다는 말이 나오자, 한국이 약속을 안 지켜 우대조치를 철회했을 뿐 WTO 규정에 반한 게 아니라고 한다.


부총리는 송금 제한, 비자발급 요건 강화를 거론했고, 앞으로 꺼낼 보복 카드가 190여 개에 달한다고 한다. 실제 대상품목은 수백 개가 될 수 있다고 한다. 소식통에 의하면 정부는 물론 민간은행까지 제재에 동원될 수 있다고 했다.  


일본 일반기업의 반한(反韓) 정서가 심각하다. 한국에 투자할 경우 전범기업으로 몰려 소송당할 수 있다면서 한국에의 투자를 줄이고 그 대신 대만 투자를 늘리고 있다. 한국이 일본에 무슨 염치로 투자를 바라느냐고 비판하는 소리도 들린다. 지자체나 경제단체는 경제교류행사마저 줄줄이 취소했다.


우리가 세계시장 1위를 차지하고 있는 TV, 스마트폰용 OLED 등은 일본 기업 없이는 제조 자체가 불가하다고 한다. 제재가 현실이 될 경우 업계는 소재 재고 3개월, 완제품 재고 한 달을 합쳐 버틸 수 있는 최대 기간은 길어야 4개월이라고 한다. 우리 정부는 내년부터 1조 원을 투자하겠다고 하지만 결실을 볼 때까지는 두 손을 놓고 기다려야 할 처지다.


일본보다 우리 쪽 피해가 더 클 거라고 한다. 대응방법 중 하나인 WTO에 제소해 이긴다 해도 2~3년 뒤란다. 주변에 있는 중국은 무서워하고 북한에는 저자세를 보이면서 유독 일본에는 그렇지 않은 이유가 뭔지 이해할 수 없다는 말이 나온다.  


반도체 공정에 들어가는 재료의 국산화율은 40%남짓이라고 한다. 거꾸로 전 세계 디스플레이 패널의 30%를 우리나라 삼성, LG에서 생산한다. 특히 일본 캐논이나 니콘 등 강자에게 수출하고 있다. 이는 어느 쪽도 갑을관계가 아닌 협력관계임을 부인할 수 없다.  


양국 지도자들의 현명한 판단과 용기로 조금씩 양보해서 하루빨리 상생의 관계가 유지되었으면 좋겠다. 일본과 관련된 많은 이들에게 고래싸움에 새우등 터지는 일이 없기를 기대해 본다.

이전 09화 누비처네, 사기 등잔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