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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문용대 Oct 26. 2020

하모니카 여인

  어느 강좌에서 여성 수필가가 20년 전에 자신이 쓴 글을 소개했다. 40세 때 자동차 운전면허시험을 보러 다녔다 한다. 필기시험에 68점으로 늘 2점이 모자라 떨어지는 바람에 도전한 지 8년이 됐을 때 ‘꽃집 아저씨’와의 이야기이다. 처음 본 40대의 키 작은 남자가 커피를 뽑아 들고 와 말을 걸어온 것부터다. 시시껄렁한 질문을 해 와 마뜩잖은 대답을 했다지만, 코스시험을 보는 자동차 안에 그가 보이지 않으면 기다려지다가도 눈이 마주치면 재빨리 외면했다 하니 예사롭지 않게 느껴진다.   


  시험에 떨어져 울고 있을 때 풋밤을 따다주며 달래주고, 운전연습을 끝내고 같은 버스를 타고 오다가 몇 정거장 전에 내린 그 남자는 버스 밖에서 하루도 빼지 않고 손을 흔들어 주었단다. 시험 잘 치라고 청심환을 사다주느라 자기 시험시간 10분이 늦어 시험을 못 친 일도 있다 한다. 그 미안함이 섞여 있을 것 같은 고마움을 지금도 잊지 못하는 모양이다. 운전면허증을 딴 이후로는 20년 동안 단 한 번도 만나지 않았다고 한다. 그 남성이 어떤 계산이나 대가를 바라지 않는다는 걸 잘 알았다면서 말이다. ‘꽃집 아저씨’가 그를 얼마나 좋아했으면 그랬을까! 같은 남성으로서 이해가 되면서 질투심이 들기도 한다. 오래전에 쓴 사소하지만 소박한 글을 주제로 삼으며 그를 아직도 잊지 못하는 이유는 과연 무엇일까? 20년이 지난 지금이라도 만나기를 권하고 싶다. 이어지는 아름다운 이야기가 더 듣고 싶다.


  나와 가까운 명 아무개 씨 이야기다. 어느 모임에 표정 밝고 인상만 좋은 게 아니라 노래도 잘하는 여성회원을 눈여겨보게 되었다. 안부 문자나 좋은 문구, 사진을 주고받는 몇 사람 중 한 사람이 되었다. 그가 보내는 문구는 깔끔하면서 간결한 명문장이다. 맞춤법도 정확하다. 문학소녀로 학창 시절을 보냈으리라는 생각이 든다. 그래서 그가 더 끌렸나 보다. 거의 매일 문자를 보냈다. 먼저 보내는 것은 늘 명 씨 쪽이다. 봐주지 않거나 답이 없으면 궁금할 뿐만 아니라 일이 손에 잡히지 않을 정도다. 나중에야 그 사람이 혼자 지낸다는 걸 알게 되었다. 


  명 씨가 좋은 감정을 가졌던 사람이 또 있다. 카카오스토리를 통해 알게 된 어느 성당 시니어클럽에서 하모니카를 가르치는 여성이다. 하모니카뿐 아니라 하모니카를 불면서 기타를 친다. 자기 집인 듯싶은 곳의 동영상 속에 아코디언도 보이고 입으로 부는 악기도 보인다. 아마 여러 가지 악기를 다루는 듯하다. 그 ‘하모니카 여인’이 무던히도 좋았던 모양이다. 쪽지를 보내면 즉시 답이 온다. 그러다가 끈질긴 노력 끝에 연락처를 알아냈다. 저장을 했더니 카카오 창이 뜬다. 문자를 보냈다. 번호를 어떻게 알았느냐며 소스라치게 놀라는 기색이다. 차 한 잔 하자고 했으나 통하지 않자, 다니는 성당 앞에 불쑥 나타날 수도 있다며 협박도 해 본다. 기겁을 한다. 그 ‘하모니카 여인’은 명 씨가 쓴 여러 편의 글을 읽어서 아무 조건 없이 좋아한다는 걸 잘 알고 있었을 것이다. 그는 독실한 가톨릭 신자인 것 같다. 그가 한 말, ‘그런 감정은 젊다는 증거입니다. 다 지나갈 것입니다.’ 맞다. 젊다는 증거이고, 세월이 지나면 다 잊힐 것이다. 


  ‘하모니카 여인’이 얼마나 멋있어 보였으면 그가 하모니카 지도하는 걸 보고 자기도 배우기 위해 어느 하모니카 강좌에서 한 달간 배웠다. 두 달째는 인터넷에서 등록이 안 돼 쉬는 동안에 설상가상으로 다리를 다치는 바람에 여러 달을 보내고 결국 지금까지 다시 시작하지 못하고 있다. 언젠가는 다시 시작할 거란다. 감정은 전보다 무디어졌겠지만 여전히 공개된 스토리나 쪽지, 카카오 톡으로 좋은 글귀를 주고받거나 안부를 묻는다. 댓글을 달기도 하고 ‘좋아요’도 날린다. 그도 자녀들 이야기뿐 가족에 대해 올리는 게 없는 걸 보니 혼자 지내는 듯하다. 몇 해가 지난 지금까지 만난 적은 물론 목소리조차 들어본 적이 없다. 아름다운 추억으로만 간직하고 싶어서일까.  사람을 좋아해 본 경험이 누구나 있을 것이다. 맘에 끌리는 사람에게 좋은 감정을 갖는 것은 인지상정이라 하겠다. 감정이 살아있기에 가능한 일이다. 들은 말이 생각난다. ‘그런 감정은 젊다는 증거이다. 다 지나갈 것이다.’ 다 지나갈지언정 아무 대가 없이도 상대에게 호감을 갖는다는 것은 좋은 일이다. 아름답기까지 하다. 그로 인해 생활의 활력소가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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