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날 아침 대문 밖에 드링크 상자가 놓여 있다. 옆집, 아랫집, 윗집 할 것 없이 여덟 세대 전체에 놓여 있다. 상자에 컴퓨터로 예쁘게 작성된 메모 편지가 붙어 있다. 옆 건물 정수 빌라에 사는 젊은 부부가 이사를 간단다. 메모지에 “5월 10일 이사하게 되어 8시부터 약 2시간 동안 소음이 발생할 수 있고 사다리차 사용으로 인해 불편을 드릴 수 있어서 미리 양해의 말씀 올립니다. 최대한 피해가 안 가도록 하겠습니다.”라는 문구가 쓰여 있다. 실제 그날 그 시간에 이사를 갔는지조차 알 수 없을 정도로 아무 피해본 일이 없었다. 이사 가는 집 건물도 아니고 동떨어진 이웃 건물 집에서 이사 가면서 이렇게까지 해야 될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요즘 이런 젊은이가 있구나.’라는 생각을 하면서 좋은 이웃이 떠나게 되어 아쉽기까지 하다.
그 일이 있고 얼마 지나지 않아 내가 일하는 아파트 단지 9층 세대에서 내부 보수공사를 하게 됐다. 호두과자 선물세트에 손으로 쓴 편지를 붙여 같은 라인 집집마다 돌렸다. 물론 관리사무소와 경비실 미화원 근무자 몫까지 준비했다. 편지에 “코로나로 인해 힘든 시기에 소음과 불편을 끼치게 되어 죄송한 마음을 담아 (선물을) 준비했습니다.”라고 쓰여 있다. ‘한 분 한 분 찾아뵙고 양해 말씀드려야 하지만 비대면(非對面)으로 하는 게 좋을 것 같아 문 앞에 두고 간다.’며 양해를 구하기까지 했다. 그 집에서도 부모보다 젊은 딸이 나서서 편지를 쓰고 선물을 준비하게 했다고 한다.
어제는 같은 아파트 단지 한 세대가 이사를 갔다. 이곳에서 18년 간 거주했다는데 나와는 5년 동안 대하던 사람들이다. 그분들은 누구나가 좋아했던 사람들이다. 나 보다 너덧 살 위인 안주인은 내게 가톨릭 교회에서 나오는 신문을 자주 갖다 주기도 하고 카카오 톡으로 좋은 동영상을 주고받는 사이다. 이렇게유달리 나와 잘 지내던 사람들이 떠나게 되어 많이 아쉽다.
집을 사 새로 이사 올 사람은 젊은 부부다. 약 한 달간 보수공사를 할 예정이란다. 간단한 보수가 아니라 내부를 다 교체하는 공사라 이웃집에 폐 끼치게 될 일이 걱정되었던 모양이다. 한 달 전부터 공사업체를 시켜 공사안내문을 붙였다. 전에 살던 사람이 떠나자마자 그들 젊은 부부가 관리사무소를 찾아왔다. 이번에도 종이 쇼핑백에 과자를 담아 관리사무소와 경비실, 미화 근무자에게 주기 위해서다.
오늘 출근을 했는데 책상 위에 말랑말랑한 떡이 싸져 있다. 내가 퇴근한 뒤 어제 이사 간 집에서 전하고 갔단다. 아니, 이사를 오는 집이 아니라 떠난 집에서 떡을 준비해 다시 찾아오다니……. 보통은 떠날 때 뒤도 돌아보지 않을 수 있는데 말이다. 그 맘씨에 감동이 돼 전화로 고마움과 건강을 기원하는 덕담을 전했다.
이와 같이 공사를 하거나 이사를 오갈 때 이웃에게 배려하는 훈훈한 모습이 참 좋아 보인다. 한 집 한 집의 사연 모두가 내게 감동을 준다. 요즘 젊은이들이 저렇게 생각이 깊다니 하는 생각이 든다. 아름다운 이웃을 둔 것이 얼마나 다행인가.이런 분들이 사는 세상이라면 서로 얼굴 붉힐 일이 생기지 않을 것이다. 이 같은아름다운 이웃 때문에 아름다운 사회, 아름다운 나라가 만들어질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