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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문용대 Sep 27. 2020

친구야, 이제 일 그만 좀 해라!

  우리 동네 뒷동산 아차산은 앞동산 어린이대공원과 함께 틈만 나면 오르는 곳이다. 어릴 때 고향 뒷동산을 떠올리며 자주 가는 곳이다. 주말을 맞아 고향 친구와 아차산엘 갔다. “친구야, 이제 일 그만 좀 해라.” 친구가 내게 했던 말이다. 나더러 직장에 다니지 말고 쉬란다. 그 말에, “이 사람아, 사지가 멀쩡하고 할 수 있으면 일을 해야지 왜 쉬어? 쉬면 뭘 하나.”


  ‘직업인’,‘직장’, '일'이런 단어가 쉬지 않고 지내 온 나를 잠시 뒤돌아보게 한다. 거기에는 할 말이 많다. 나는 일하는 것이 참 좋다. 그래서 지금도 하고 있다. 어릴 적부 터지 금까지 두 달 넘게 쉬어 본 적이 없다. 노후준비를 그리 잘해 두지는 않았더라도 꼭 돈 때문에 일하는 것만은 아니다. 할 일이 없으면 찾거나 만들어서라도 해야 편하다. 인쇄소, 종합 금속 제조회사, 건설회사, 건물 관리 등 다양하게 오래도 했다. 앞으로도 건강이 허락하는 한계 속 할 것이다. 그러고 보니이 미 반백년을 훨씬 넘겼다.


  친구들이 “자네는 시작하기도(취업) 잘하고 끝내기도(퇴직) 참 잘하네. 능력 있는 사람은 역시 달라!”라고 말할 때, 그 말이 덕담인지 아닌지는 몰라도 싫지 않다. 누구나 일을 해야 보람과 성취감을 느끼고 떳떳하다. 내가 아는 젊은이중에아예일 할 생각조차 하지 않고 몇 년째 캥거루족으로 지내는 이가 있다. 성경에도‘일하기 싫으면 먹지도 말라’ 고했는데 말이다. 지금은 일하고 싶어도 일할 자리가 없어 못하는 실정이니 안타까울 뿐이다.


  나는 직장의 부도로인 해갑 자기 일터를 잃었을 때 눈높이를 낮추고 일자리를 찾아냈던 경험이 있다. 소위 3D 직종에서도 일해 보았다. 그런 곳에서 흘린 땀방울은 더없이 뿌듯함을 준다. 사나이는 자기를 알아주고 믿어주는 사람에게 목숨을 바친다고 했던가. 막노동판에서 열심히 일했더니 일용잡부에게도 상을 주더라. 그곳에서 일한 것이 계기가 되어 중견 전문건설업체에 입사해서 8년 4개월을 일할 수 있었다. 일하는 동안 노동 관련 학술연구단체로부터 근로평화상으로 거액의 상금도 받았다.


내가 젊었을 적에 어느 기업체에 제출한 자기소개서 내용이 생각난다. “공(公)과 사(私)를 잘 구분하고, 옳고 그름을 판단해 신중하게 처신합니다.”, “‘법이 아니면 말하지 말고, 길이 아니면 가지 말라’는 글귀가 맘에 들어 늘 생각하며 실천하고자 노력합니다.”, “저를 선택하신 것을 결코 후회하지 않으시리라 확신합니다. 오히려 선택하지 않으면 후회하실 겁니다.”

 그 업체로부터 지금까지도 합격통지를 받지 못했다. 나는 “나를 채용하는 사업주는 행운을 얻는 것이다.”라는 자부심을 지금도 갖고 있다.

  20대 때의 일이다. 청파 문학회를 창립한 유광렬(柳光烈) 시인이 밤낮을 가리지 않고 눈만 뜨면 일하는 나에게 했던 말이 생각난다. “자네는 남이 하루 사는 동안 이틀을 살고 있는 거야. 남 보다 두배를 살고 있다는 말일세!”

  일흔이 넘은 지금도 일하고 있으니 새삼스레 모두가 고맙다. 나에게 주어 진환 경과 건강, 건강을 지켜주고 늘 힘이 돼주는 가족이 그렇다. 내 조국이 고맙고, 나와 인연 맺고 살아준 모든 사람이 고맙다. 나는 직장일에 최선을 다하면서 틈만 나면 봉사활동이 나 자기 계발에게 으르지 않으려고 노력한다. 그거 배워서 어디다 써먹을 거냐고 말하는 이도 있지만, 돈 되는 것이 아니라도 일하고 배우고 하는 것이 재미있고 행복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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